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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카 VS 다이내믹 카, 당신의 선택은?

완벽하게 다른 두 자동차를 만났다. 믿음직한 이들에게 내 몸을 맡긴 순간에 대한 이야기.

프로필 by 정소진 2024.06.10
가장 모범적인 세단
넓은 그릴과 웅장한 몸집, 2m에 달하는 전폭. 롤스로이스 최초의 순수전기차이자 압도적인 디자인과 크기를 자랑하는 ‘스펙터’의 첫인상은 내 기선을 제압하기에 충분했다. 차량 전면부에 역대 가장 넓은 그릴과 분리형 헤드라이트를 탑재했다. 꽤 위엄 있는 외모다. 양산형 2도어 쿠페 모델 최초로 장착한 23인치 휠 덕에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색상은 고급스러운 자주색과 묘한 연둣빛이 적절한 비율로 조합됐고, 옆면에는 장인이 붓으로 그은 선이 눈에 띄었다. 스펙터는 2023년부터 롤스로이스의 새로운 전동화시대를 이끌어가는 중이다. 기세가 대단한 이 차는 얼마나 모범적인 서비스를 제공할까?

ROLLS-ROYCE 스펙터, 가격 미정, Rolls-Royce.

ROLLS-ROYCE 스펙터, 가격 미정, Rolls-Royce.

몸집이 큰 차는 문을 열고 닫는 행위조차 소모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데, 스펙터의 문은 손잡이 안쪽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승차 후 브레이크 페달을 지그시 누르면 자동으로 닫힌다. 아주 친절한 서비스다. 운전석 바닥에 발을 얹으면 포근하게 감싸주는 보드라운 양털. 시동을 걸자 코치 도어 안쪽에 펼쳐지는 4796개의 스타라이트와 밤하늘을 그대로 옮긴 듯한 5500개 이상의 별무리가 빛나는 실내공간은 경이로울 정도. 또 다른 놀라움은 디지털 계기반. 요즘 차량의 계기반은 대부분 디지털이지만, 스펙터는 비스포크다. 주문자가 컨셉트 기획부터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모든 과정에 관여해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비스포크는 롤스로이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펙터는 첫 번째 전기자동차답게 모든 요소가 미래지향적이다. 액셀러레이터를 천천히 밟는 순간 정확하게 표현되는 강력한 토크. 그렇다고 용맹한 기세로 ‘훅’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부드럽고 우아하게 서서히 속도를 올린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단 4.5초가 걸리는 차지만, 실제 체감 가속은 공격적이지 않다. 엔진 굉음이 없으니 차에서 나는 소리는 고요하고, 롤스로이스가 직접 개발한 스피커에서 흐르는 음악 소리는 내 몸 전체를 감싼 것처럼 실내를 가득 채웠다.

자동차에서 안방 같은 편안함을 느낀 건 처음이다. 마치 나를 공중에 띄운 것 같은 느낌. 길게 늘어진 고속도로를 달릴 때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자마자 급격하게 속도가 줄어들었다. 이내 좁은 굽잇길로 접어들자 돌과 자갈을 밟으며 지날 때 이리저리 튀지 않아 공도를 달릴 때와 다름없는 안정감을 준다. 브레이크 페달을 안 밟아도 알아서 속도를 줄이고, 울퉁불퉁한 노면이나 높은 턱을 지날 때도 안전하게 운전자를 잡아주는 스펙터. 핸들에서 잠깐 손을 떼면 알아서 장애물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도록 핸들을 돌린다. 이렇게 든든하고 ‘젠틀’한 자세는 운전자의 상황과 도로 환경에 맞춰 정확하게 반응하는 플레이너 서스펜션 덕분. 플레이너 시스템은 ‘양탄자’를 탄 것처럼 안정적이고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스펙터는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개발 과정을 거쳤다. 총 250만km를 달리며 400년 이상 분량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40~50℃에 이르는 극한 온도를 견디며 고산지대와 북극의 빙설, 사막, 세계의 대도시를 넘나드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돼 훈련을 거친 후 세상에 나왔다. 롤스로이스는 120년 동안 ‘완벽’이라는 기조를 지켜왔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스펙터가 운전자를 묵묵하고 듬직하게 이끌어주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이 차를 운전하는 내내 차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차가 나를 모시는 인상을 받았다. 이동수단에서 나의 고귀함을 깨달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얼굴의 오프로더
높은 산을 넘어 진흙밭을 지나 절벽처럼 가파른 언덕을 용감하게 타고 내렸다. 주저 없이 강에 들어갔고 유유히 건넜다. 공도에 들어서자 디펜더는 우리가 언제 모험을 즐겼냐는 듯 고급 세단처럼 부드럽게 내달렸다. 이것이 디펜더의 매력이다. 다이내믹한 오프로드에서는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스스로 제어하고 기능을 탈바꿈하면서 안정적으로 이끈다. 운전자가 험한 길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말이다. 정통 오프로더와 고급 SUV의 면모를 갖춘 유일무이한 차. 오지 탐험과 출퇴근, 캠핑, 차박. 그 어떤 환경에도 맞게 활용하기 좋은 차다. 이전 모델보다 더욱 강력해진 성능과 새로운 라인업이 추가된 2024년형 올 뉴 디펜더는 패밀리 해치백 정도의 크기인 90, 보다 더 넓은 110, 8인까지 수용할 수 있는 130 모델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5인승 130 아웃바운드와 110 카운티 에디션이 있다. 강원도 인제로 향한 그날, 나는 130 P400 아웃바운드와 함께했다.

우리 여정은 온로드로 시작됐다. 오프로드 차량을 온로드에서 탈 때는 투박한 느낌이 강하지만, 이 차는 반대였다. 작은 진동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깔끔한 승차감을 선사했다. 2.6톤에 육박하는 차체는 맹렬하고 가볍게 속도를 올릴 줄 알았다. 이는 가벼운 스티어링 휠과 에어 서스펜션을 사용한 섀시, 힘이 좋은 파워 트레인 덕분이라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모노코크 구조도 한몫한다. 꽤 짧은 온로드 주행이 끝나고 본격 오프로드가 시작됐다. 첫 번째 미션은 강 건너기. 디펜더의 가장 큰 재미는 주행 모드를 바꿔가며 험로에 도전하는 것. 강에 들어가기 전 로 레인지 기어 설정 후 주행 모드를 도강 모드로 바꿨다. 갑자기 차체가 높아지면서 화면에는 최고 수심 900mm까지 견딜 수 있다는 문구가 떴다. 화면을 조작해 웨이드 센싱 기능을 실행하자 수심 깊이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강 속에 깔린 바위에 걸릴 때마다 차는 휘청거렸지만 당연하게 중심을 잡았고, 출렁이는 물소리는 실내공간에 그대로 전달됐다. 소리 덕분에 꽤 용기 있는 탐험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물은 점점 차올라 범퍼 높이까지 휘감았지만 끄떡없었다. 차와 나, 우리는 강을 빠져나가 경사가 급한 비포장길로 향했다. 디펜더의 등판 각도는 최대 45°. 대각선에 가까운 급경사를 오르내린다.

급경사를 지날 때 왼쪽 앞바퀴와 오른쪽 뒷바퀴가 공중에 떠도 운전자는 액셀러레이터를 지그시 밟으면 된다.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구동을 배분함으로써 운전자의 별다른 조작 없이도 바퀴는 헛돌지 않고 제대로 착지한다. 진흙길도 마찬가지였다. 주행 모드를 진흙길 모드로 설정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차는 천천히 전진했다. 마지막 험로인 산길에 들어섰다. 산길은 좁고 굽이져서 차체와 길의 폭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큰 궁리 없이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디펜더가 아닌가. 험로를 주행할 때 전방을 깔끔하게 보여주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로 보닛과 앞바퀴에 가려진 지면을 중앙 터치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정통 오프로더를 타려면 자동차 전문 지식을 갖춰야 하고, 운전에도 익숙해야 한다. 하지만 디펜더는 누구나 탐험가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운전자가 자갈이나 강, 언덕, 눈 모양의 버튼만 누르면 모든 기능을 알아서 척척 실행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곤 회사원에서 탐험가로 모드를 바꾸는 것뿐.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일러스트레이터 KASIQ 정우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