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한지에 매료된 영국 아티스트

한국 전통 재료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직조하는 아티스트 마리안느 켐프.

프로필 by 이경진 2024.05.31
염색한 말총을 엮어 만든 마리안느 켐프의 작품. 한 마리의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염색한 말총을 엮어 만든 마리안느 켐프의 작품. 한 마리의 새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직조 작품과 함께 선 네덜란드 아티스트 마리안느 켐프.

자신의 직조 작품과 함께 선 네덜란드 아티스트 마리안느 켐프.

한국 방문과 전시 모두 처음이라고 들었어요
24년 전 헤이그 왕립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 예술디자인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 때 룸메이트 중 한 명이 한국인이었어요. 그녀에게 한국 음식도 배우고 한국 공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죠. 지금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그 친구의 권유로 한국 전시를 하게 됐어요. 3일 전에 도착했는데, 첫눈에 무척 아름다운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늬은과 메타포서울, 두 공간으로 나눠 동시에 전시를 열었습니다
두 갤러리의 지역과 공간 특성이 달라서 그에 맞게 크기와 물성이 다른 작품을 배치했고, 여러 곳에서 관람자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전시를 위해 매일 삼청동과 양재천을 산책했던 기억도 오래 남을 듯합니다.
메타포서울에서 선보인 마리안느 켐프의 전시. 직조한 아트워크를 한지에 대고 압착해 만든 텍스처와 형상들. 신현세 장인이 제작한 한지를 사용한 작품은 맑고 순수하다.

메타포서울에서 선보인 마리안느 켐프의 전시. 직조한 아트워크를 한지에 대고 압착해 만든 텍스처와 형상들. 신현세 장인이 제작한 한지를 사용한 작품은 맑고 순수하다.

말총과 말린 나뭇잎, 나무껍질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날것의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 이유가 있나요
면, 리넨 등 깨끗하고 순수한 천연 직물도 좋아합니다. 특히 말총은 내게 특별한 재료예요. 처음 말총을 구하기 위해 네덜란드 동쪽에 있는 말 농장에 갔을 때는 갈색과 검은색, 금색의 말총만 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자연적인 염색 방법을 터득해 좀 더 폭넓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말총은 사람의 머리카락처럼 각기 다른 빛과 특징,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해도 질리지 않아요.
한국에도 말총을 소재로 직조하는 아티스트가 있어요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수상한 정다혜 작가의 기사를 본 적 있습니다. 제주도라는 아름다운 섬에서 자랐고, 유년기의 영향으로 말총을 재료로 공예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음에 한국에 올 때 꼭 만나고 싶어요.
이번 전시에서 관람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한국의 고유하고 특별한 재료를 작업에 도입하고 싶어서 전시 관계자로부터 8개월 전에 순백의 한지와 먹색 한지사를 전달받았어요. 신현세 한지장이 만든 귀한 작품이었죠. 한지의 물성을 파악하고 내 직조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한지라는 재료 자체가 저에게 많은 호기심과 영감을 주었어요.

한지가 특별한 매개체가 되어 국내 관람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절충점이 됐네요
한지 덕분에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제가 짜낸 직조물을 한지에 대고 눌러 각인하고 한지사를 직조 재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정통적 직조 기술이 아니어서 내게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직조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직조는 하나의 그리드와 같습니다. 수직과 수평을 맞춰 매일 새로운 그리드를 조금씩 넓혀나가죠. 말총 길이가 최대 70cm이기 때문에 때로는 길이에 맞춰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작업해 보려고 합니다. 직조에 자수를 더하거나, 도자기에 맞게 위빙하거나, 직조 패턴으로 그래픽 작업을 하는 방식도 좋은 돌파구가 되겠죠.
당신이 매일 작업하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네덜란드 동부 도시 쥣펀(Zutphen)에 살고 있어요. 아침 일찍 가볍게 요가를 하고, 두 아들과 함께 자전거로 등교한 후에 작업실로 갑니다. 옛 학교가 있던 자리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크고 작은 직조기 넉 대로 쉴 틈 없이 작업해요. 작은 직조기는 주로 샘플을 만들고, 큰 직조기는 카펫까지 만들 수 있어요. 집 주변에 작은 강과 숲이 있어서 작업이 끝나면 산책을 합니다.
한국 전시가 끝나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나요
비엔나 호텔에 설치할 작품을 논의하러 갈 예정이에요. 미국 와이오밍에 가서 소속 갤러리와 가을 전시를 준비하는 일정도 예정돼 있어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는 것도 저에게는 즐거운 일입니다. 각 나라의 고유한 컬러와 패턴을 보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거든요. 한국에서 오방색을 처음 봤는데, 원색적이면서 조화로운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오방색에서 영감받은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그럼요. 이번에 한국 요리책의 더치 에디션도 손에 넣었으니 다음 작품에는 한국과 관련된 기운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청윤주
  • 사진가 맹민화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