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23 마리의 개와 고양이 가족을 찾아보내며 깨닫게 된 것
일러스트레이터 홍조가 확실하게 깨달은 것.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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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or Kay McDonagh
그때부터였다. 구조센터나 보호소를 떠나 진짜 가족을 찾기까지 일시적 거처를 제공하는 임시보호(이하 ‘임보’)를 시작했다. 유기되는 동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래도 봄이, 루피와 함께 살게 된 덕분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동물병원에는 포메라니안 강아지 두 마리가 있었는데, 너무 귀여워 갈 때마다 꿀 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보던 그 강아지들이 누군가 가방에 넣어 병원 앞에 버리는 바람에 이곳에서 지내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게 내가 ‘유기견’에 대해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강아지를 예뻐하면서도 금방 귀찮아해 결국 강아지 돌봄이 엄마 몫이 된 이후 나는 강아지를 키워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기견과 유기견 보호단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급하게 임보처를 구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게시판에 올라오는 걸 보면서 고민했다. 평생 책임질 여건은 안 되더라도 가족을 찾기까지 돌봐주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개를 돌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여섯 마리를 가족을 찾아 보낼 즈음에 만난 시카. 어느덧 나와 9년째 살고 있는 시카는 하루에 몇 번씩 올라오는 글을 확인하면서도 눈길 한 번 준 적 없는 누렁이였다. 아마 은연중에 저런 개는 마당이 있는 집이 있어야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리라로 불렸던 시카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몇 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피부병이 겨우 나은 진도믹스가 있는데 갈 곳이 없다. 흙밭인 보호소로 가면 피부병이 재발할 테니 잠깐 임보하는 게 어떻겠냐’는 봉사자분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었으니까. 놀랍게도 지금은 자그맣고 귀여운 ‘강아지’ 시카가 그때는 털이 빠져 버석버석하니 키만 큰 누렁이로 보였다. 들은 대로 착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예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했던 미안함이 지금까지도 크다).
임보를 시작한 후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의 의미는 희미하게 알게 됐지만, 그때만 해도 ‘어떤 품종의 개가 귀엽다’는 생각이 있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를 보면 어떤 종인지 궁금했고, 그런 선호도는 TV 혹은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 유행에 따라 종종 바뀌었다. 언젠가 개를 키우게 된다면 어느 정도 크기, 어떤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기에 진도믹스들이 임보처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와도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 아닐까. 그러나 시카와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시카의 고유함이 눈에 들어왔다. 덩치와 달리 간식이나 고구마, 고기를 잘게 나눠 한 입씩 줘야 받아먹는 강아지, “예쁘다” 하면 신나서 춤추기도 하고, 고양이 밥을 훔쳐 먹다 야단맞으면 귀를 ‘추욱’ 내리고 발랑 누워 배를 보이기도 하는 강아지, 바닥에 이불 한 장이라도 깔려 있어야 드러눕는 공주님 같은 강아지. 시카는 사람들에게 예쁨받는 걸 좋아했고, 우리 집 고양이들과 눈치껏 잘 어울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기 고양이에게 관대한 면모를 보였는데, 이틀 정도 골목이나 쓰레기장에서 조금씩 위치를 옮겨가며 ‘야옹야옹’ 울던 시푸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데는 시카의 영향이 컸다.
봄이와 루피는 서로에게도 별 관심 없는 고양이들이라 시카와는 같은 집을 공유하는 하우스메이트에 불과했다. 임보로 처음 우리 집을 찾은 시푸는 자신의 장난기를 받아주지 않는 두 어른 고양이보다 시카를 엄마처럼 따랐다. 시카 옆에 몸을 붙인 채로 잠이 들고, 심심할 때는 시카의 귀나 코, 꼬리에 달랑달랑 매달려 놀았다. 침대에서 둘이 잠든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갈 정도로 이 풍경은 내겐 큰 기쁨이었다. 입양을 보내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좋은 분들의 입양 신청이 있었음에도 결국 시푸가 우리 집 막둥이로 남게 된 건 ‘묘연’이라 우기고 싶다. 이후에도 아기 고양이 임보를 네 번 정도 더 했다. 그때마다 시카는 나오지도 않는 젖을 아기 고양이들에게 물리기도 했고, 어느덧 성묘가 된 시푸는 아기들을 살뜰히 챙겼다. 다른 개들에게는 까칠한 면모가 있는 시카, 낯을 많이 가리는 시푸가 쭈뼛쭈뼛 집 한구석을 차지한 친구들에게 결국 곁과 마음을 내주는 모습. 이 귀엽고 다정한 콤비의 활약을 지켜보는 건 감동적인 일이었다. 시카 그리고 시푸와 가족이 되지 않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사실이다.
시카와 살면서 알게 된 것 또 하나. 왜 나는 짧은 줄에 묶여 마당에서 사는 개들을 보며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진도믹스도 다른 개들과 다를 게 없는데. 드물게 중대형견과 함께 갈 수 있는 캠핑장을 시카와 찾으면 종종 방치되듯 묶여 있는 개들을 볼 수 있었다. 도톰한 옷을 입고, 따뜻한 담요를 덮은 채 난로를 피운 텐트 안에서도 시카는 새벽엔 추운지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코를 자신의 꼬리에 넣고 잠들었는데, 텐트 밖으로 나오면 ‘짬밥’이 담긴 밥그릇과 얼어버린 물그릇을 앞에 두고 맨몸으로 묶여 있는 개와 마주할 때도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몇 년 전만 해도 묶여 있는 개를 보면 귀엽다며 다가가 아는 척했는데.
시카를 알게 된 이후 용기를 내게 됐다. 예전에는 주로 10kg이 되지 않는 작은 친구들을 임보했다면, 지금은 시카와 비슷한 친구들을 데려온다. 시카를 닮아 더 마음이 갔던 누렁이 태리, 입 주변이 까맸던 짹짹이, 시카보다 덩치가 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죄다 털이었던 하얀 곰 같은 수머, 수머의 형제 히나, 겁 많고 조심스러운 완이…. 시카 덕분에 만나고 알게 된 이름들이다. 각자 사랑스러웠던 그들은 그 매력을 알아차린 가족들에게 입양됐다. 가정 분양, 펫 숍, 브리더를 통해 동물을 ‘구매’하는 것보다 보호소에서 ‘입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사고까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지만 진도믹스를 비롯해 모든 개가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은 분명 시카의 힘이었다. 최근 제주도 길 위에서 살던 자그마한 개, 알고 보니 임신 중이었던 누렁이에게서 태어난 아기 세 마리를 고민 끝에 육지로 데려왔다. 입 주변이 새까만 아기 강아지 세 마리는 현재 뿔뿔이 흩어져 가족 찾기에 한창이다. 그중 한 마리를 임보하면서 또다시 깨달았다. 길 위에도, 수많은 보호소에도 버려진 강아지들이 가득한데, 그 와중에도 새로운 생명이 끝없이 태어나는데, 어떤 목적을 갖고 교배된 강아지를 사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올해 시카는 열 살, 고양이 봄이와 루피는 각각 열한 살, 열 살이 됐다. 시카처럼 임보로 우리 집에 왔다가 주저앉은 막내 고양이 시푸만 다섯 살, 한창 젊은 나이다. 처음으로 임보를 쉴까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느덧 두 자릿수 나이가 된, 지금까지 함께했던 날보다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적을 시카, 봄이, 루피에게 더 시간을 쓰고 싶어서다. 시카가 좋아하는 바깥바람 쐬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고양이 친구들과 침대 위에서 나른한 게으름을 필 수 있겠지. 그러나 멈추고 싶지 않은 건 진도믹스 친구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기회가 될 때마다 자랑하는 일이다. 나름 임보 경험을 많이 한 터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믹스견들에게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색도, 생김새도, 털도 개성 가득하게 느껴지는 개들에 비하면 평범하게 느껴지겠지만 ‘버리지 마세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이왕이면 진도믹스를 입양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들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왔든 모든 개와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시카와 시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니 내 말을 한번 믿어보시길!
Credit
- 이마루
- 에디터 이마루
- 일러스트레이터 Kay McDonagh
- 아트 디자이너 구판서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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