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마케팅에 속아본 적 있나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녹색 마케팅에 속아본 적 있나요?

친환경이 돈이 되는 시대. 그린워싱의 ‘위험한 척’에 관하여.

ELLE BY ELLE 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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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염려하며 에코, 친환경, 그린, 서스테이너블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구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에코라는 말이 붙으면 무엇을 사더라도 의식 있는 소비인 것처럼 느껴졌고, 가격이 비싼 오가닉·친환경 제품을 사면서는 막연히 ‘더 좋겠지’ 치부하며 소비했다. 실제로 2020년 IMB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매자의 57%가 코로나19 이후 환경 문제에 더욱 관심이 커졌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2023 대한상공회의소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더 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소비자는 친환경 제품에 진심이며, 이는 곧 지속 가능한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마켓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같은 바람은 자연스럽게 패션 신에도 돌풍처럼 일어났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에코닐과 리사이클 나일론을 사용하는 것부터 야생 풀로 만든 데님, 물 사용을 최소화하고 탄소 발자국을 줄였다는가 하면 버리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생분해 성분 아이템까지. 수많은 패션 하우스는 근 몇 년간 경쟁하듯 지속 가능한 친환경 패션을 쏟아내고 자랑하기 바빴다. 그리고 에디터 또한 자연스럽게 서스테이너블이라고 친절하게 홍보한 브랜드의 친환경 제품을 더 찾곤 했다. 이왕이면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물은 좀 덜 사용한 데님은 없을까 고민하고, 또 내가 입은 옷을 만든 사람들이 노동 착취를 당하며 만들진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리사이클 제품이라고 해서 구입한 한 패션 브랜드 라인의 일부엔 더 많은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을 사용했다는 뉴스가 들려왔고, ‘서스테이너블’이라고 표시돼 있어 관심 있게 본 청바지는 어디까지 재활용했다는 건지 자세히 알 길이 없었다.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코’라는 단어는 어디든 남발됐고, 식물성 가죽이라고 소개한 코트는 인조인지 모조인지 구별하기조차 힘든 게 다반사였다. 지난해 영국의 비영리단체 체인징 마켓 파운데이션은 글로벌 의류 브랜드 12개의 제품 4000여 개를 평가한 결과 친환경 제품이라고 주장했던 의류의 59%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몇 년간 ‘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야’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달콤한 마케팅에 속고 있었다니. 명확한 증거 대신 모호하고 확인되지 않는 ‘위장 환경주의’에 익숙해지고 있던 것이다. 언뜻 보면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소비를 소개하는 듯하지만, 이면엔 그렇지 못한 ‘그런 척’하는 마케팅 ‘그린워싱’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실적과 긍정적 이미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업의 교묘한 수법을 당해낼 재간이 우리에게 있던가. 영국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린워싱 사례 중 대부분이 고객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발생한 사례가 50% 이상을 차지한다니 결국 기업이 투명해지지 않는 한 개인이 그린워싱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브랜드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도 무리가 있다. 처음 생산부터 고객에게 전달하는 배송까지 수많은 공정 속에서 그린워싱의 덫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기업의 양심적이고 지속적인 노력, 투명하게 보고하고 제재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먼저 그린워싱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영국은 정부가 직접 그린워싱에 대한 친환경 가이드라인 ‘그린 클레임 코드(Green Claims Code)’를 발표했다. 이들은 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친환경 주장이 진실하고 명확할 것’ ‘중요한 정보를 생략하거나 숨기지 말 것’ 등의 여섯 가지 규정을 권고하고 있으며, 패션 브랜드가 이 규정을 위반할 시에는 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벌금까지 물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프랑스에선 허위로 그린 캠페인을 벌일 시 캠페인 비용의 80% 벌금뿐 아니라 명확한 해명 자료까지 제출하도록 정했다. 한국도 이 같은 행보에 동참해 환경부는 최근 발표한 ‘자원순환 기후 변화 업무계획’을 통해 환경성 표시 광고 규정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후 위기 시대의 친환경 판별법에 대해 이야기한 〈그린워싱 주의보〉 저자 이옥수는 그린워싱을 판별하기 위한 소비자의 역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정확한 데이터로 친환경 성과를 제시했는가. 친환경 성과를 만들 때부터 분해될 때까지 생애 주기 관점에서 표기했는가. 마지막으로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부터 친환경 성과를 인증받았는가를 질문해 보는 것이다. 정답을 알고 나니 오히려 친환경 쇼핑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솔직히 이런 걸 누가 따지면서 소비할까?’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조금은 허무한, 하지만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을 법한 바이블 같은 문구가 등장한다.
 
“개인으로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쉽고 확실할 방법은 결국 ‘미니멀리즘’일 것이다.” 의외로 친환경으로 가는 길은 쉽고 간단할지도 모른다.
 
*전 세계 〈엘르〉 에디션은 매년 4월호와 5월호에 걸쳐 그린 이슈를 전하며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진심을 담으려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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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하얀
    참고 <그린워싱 주의보>(이옥수 지음)
    아트 디자인 김민정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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