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올봄 초등학생이 됐다. ‘파이팅’을 한 번 외친 뒤 복도 끝에 자리한 1학년 1반 교실까지 씩씩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물끄러미 서 있는 부모를 중심으로 컴퍼스가 원을 그리듯 아이는 나날이 자신의 궤도를 넓혀나가고 있었다. 저 아이는 자라서 어디까지 가 닿을까.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잠시 궁금해졌다. 얼마 전 유치원 졸업식 날 행사 이벤트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이 그려진 그림을 들어 올려 흔들어 보였는데, 그림만 보아선 아이의 꿈을 유추할 수 없었다. 그림 뒷면을 짠! 공개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부모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전형적인 꿈들 사이에 나은이의 꿈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의 꿈은 ‘조련사’라고 쓰여 있었다. 나은이는 유기견·유기묘를 보살피는 동물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꿈이 너무 길어서 담임 선생님께서 써주신 꿈이 ‘조련사’였던 것이다. “엄마! 보살피는 사람과 조련하는 사람은 다르잖아요. 나는 수의사도 아니고 동물원 조련사도 아니고 아픈 동물들의 유치원 선생님을 하겠다는 거였는데….” 시무룩한 아이에게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가 새 학기 생활에 좀 더 적응이 되면 대전 유기동물센터에 가서 봉사활동도 같이하고, 혹시 연이 닿을 친구가 있을지 찾아보자고 말이다. 아이는 매우 기뻐했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녀석에게 유기동물 봉사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환경 문제에 대한 민낯을 불쑥 선사하는 것이 이른 건 아닐까 싶었지만, 이젠 애착 육아를 환경 육아로 전환하는 것이 부모로서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생존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루얼리티 프리 라이프’라는 말이 있다. ‘학대(Cruelty)’가 ‘없다(Free)’는 의미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동물성 식품을 함유하지 않은’ 뜻이지만 동물과 지구에 대한 착취를 피하는 삶을 가리키는 말로도 널리 쓰인다. 아이와 함께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름다운 지구의 면면과 경이로운 동물의 세계를 살피다 보니
나은이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며 앞으로 나아갈 궤도, 세상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네 꿈은 동물을 지키는 선생님이구나!” 동물에게 재주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람이 아닌, 동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이. 아이들처럼 우리가 동물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생명에 대한 공정함을 지키고 잔인한 행동이 파생되지 않도록 생활습관을 점검해야 한다. 지구를 구원하기 위한 적기가 지났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상황을 나은 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새롭게 와닿은 깨달음은 동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구매 습관과 식습관 바꾸기 그리고 바를 거리와 입을 거리의 여정을 아이와 생각하고 실천하기. 세계적 환경보호단체에 가입하거나
캠페인에 귀를 기울이고 서명운동, 기부금 전달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부담스럽다면 가입하지 않더라도 소셜 미디어를 팔로해서 환경을 위한 영감 충전도 계속하는 것이 좋겠다. 마트와 시장도 좋은 교육의 장이 된다. 아이와 함께 먹거리를 고르고 바를 거리와 씻을 거리를 고르는 삶은 익숙한 일상이니까. 20년 안에 닥쳐오게 될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이 시대의 여성인 내가 현재 위치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늘 고민한다. 환경을 위한 생활습관 외에도 내가 가장 잘하고 또 해내야 하는 육아에 환경운동을 접목해 보면 어떨까. 나는 오늘도 아이의 입에 고체 치약을 넣어주고,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며 ‘너는 채식을 더 선호하는 아이구나!’ 인정과 격려를 보낸다. 인적 자원이 가장 큰 자원이자 장점인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의 꿈이 단일화되는 건 슬픈 일이다. 나는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은 농업기술대학교를 보내야겠다며, 기후 변화가 가져온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농부로 키워내야겠다고 말했다. 오지 않은 미래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의 이름을 상상해 본다. 환경과 기후 변화로 우리가 지금껏 살아본 적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아이들에게 이렇게 무거운 숙제를 남겨서 면목 없지만, 그래도 나는 도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한다. 부모로부터 한 발자국씩 멀어져 끝내 지구의 반대편에 닿거나 지구 밖 우주로 나가게 될 아이들을 상상해 본다. 동물도 인간도 살릴 히어로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여기며, 나는 오늘도 한 명의 영웅을 길러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가족과 함께 서울을 벗어난 삶을 산다.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전 세계 〈엘르〉 에디션은 매년 4월호와 5월호에 걸쳐 그린 이슈를 전하며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진심을 담으려 애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