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국에서 2월14일은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113년 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사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선고 후 한 달 반 정도가 흐른 3월26일 사형이 집행됐고, 의사는 32세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유족들이 유해를 인수하려 했지만, 당시 일본 당국은 의사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요. 의사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골을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광복을 맞거든 고국으로 옮겨 달라고 당부했는데요. 고국이 광복 78주년을 맞은 2023년에도 이 당부는 해결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워낙 역사적인 사건이기에,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가장 유명한 건 창작 뮤지컬 〈영웅〉일텐데요.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아 의사의 후손들 앞에서 초연한 이후 지난해 영화 〈영웅〉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넘버 중 하나인 '누가 죄인인가'는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이토 히로부미 사살이 정당했던 이유를 역설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곡이기도 하죠.
뮤지컬과 영화 〈영웅〉의 주인공인 정성화 등은 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안중근 가문 독립운동 이야기'를 배포했습니다.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부터, 세 동생과 친척들을 비롯해 4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안중근 가문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였죠. 의사가 순국 당일 사형 집행을 알리려 온 일본인 간수에게 써 준 휘호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은 지금도 우리 국군의 표어입니다.
2월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보다 밸런타인 데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상하진 않죠.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됩니다. 32세 안중근과 수많은 항일운동가들의 순국으로 독립된 조국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몫은 '기억'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