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롱프뢰유 패션이 궁금하다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트롱프뢰유 패션이 궁금하다면

오랜 시간 예술을 탐닉해 온 은유적 패션에 다시 현혹될 시간.

김명민 BY 김명민 2023.02.13
 
누구나 한 번쯤 ‘트릭 아트’를 들어본 적이 있을 터. 음영과 굴절 등 시각적 환영 기법을 입체적그림으로 만든 것이다. 마치 그림 속에 동화돼 작품과 현실이 연결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특징. 이렇게 눈속임을 사용해 위트와 신선한 충격을 주는 기법을 트롱프뢰유(Trompe-l’œil)’라 한다. 때때로 몸의 일부를 그려 넣은 레디 투 웨어나 엉뚱한 사진이나 입체적인 실루엣을 더해 궁금증을 유발하는 옷이 있다. 멀리서 보면 긴가민가하다가, 가까이 온 순간 ‘아차!’ 하게 되는 그런 초현실적인 옷 말이다. 이렇게 착시 현상으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패션 신에서 사랑받아온 트롱프뢰유 패션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롱프뢰유 기법을 패션에 처음 도입한 사람은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1930년대 샤넬과 함께 당대 패션계에 반향을 일으켰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정식으로 패션을 배우지 않았지만 평범한 검정 스웨터에 리본 매듭 패턴을 그려 넣은 트롱프뢰유 스웨터를 선보이며 시작부터 성공가도를 걷는다. “옷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내게 직업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녀는 예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 자코메티, 장 콕토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협업을 일삼았다. 특히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와의 인연은 남달랐다.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한 프린팅을 담은 ‘서커스 드레스’와 책상 서랍 모양을 주머니처럼 장착한 ‘서랍 수트’ 등이 그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그 외에 피카소와 함께 제작한 손톱이 달린 장갑, 장 콕토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 재킷 등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회자되곤 한다.
 
스키아파렐리 이후 한동안 트롱프뢰유 패션에 불을 붙인 인물은 관습을 뛰어넘는 컬렉션을 선보이며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악동)’로 불리던 장 폴 고티에였다. 대표작(?) 중 하나인 마돈나의 콘 브라를 보면 알 수 있듯 여성성을 과감하게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가 선보인 트롱프뢰유 패션에는 ‘스킨 딥(Skin Deep)’이라는 단어가 덧붙는다. 그만큼 성과 나체, 에로티시즘 개념을 탐구하는 데 몰두한 그는 인체의 피부에서 수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옷을 제2의 피부로 표현했고, 이는 트롱프뢰유 효과로 발현됐다. 얇은 망사 드레스 위에 글리터 같은 소재로 여성의 몸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튤 소재의 톱에는 문신한 듯한 프린트를 더하기도 했다. 또 뼈나 혈관, 근육을 그려 넣은 옷도 유명한데, 최근 Y/프로젝트 디렉터 글렌 마틴스가 이를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여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런가 하면 장 폴 고티에의 제자인 마르탱 마르지엘라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시그너처 아이템인 타비 슈즈는 굽 위에 맨발을 올려놓은 듯한 착시 현상을 주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마르지엘라가 일본에 방문했을 당시 노동자들이 신고 있던 전통 신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그 외에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탱크톱 같은 미니멀한 아이템에 에스닉 타투 프린트를 그려 넣거나, 옷 위에 다른 옷을 프린트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키아파렐리를 대표하는 트롱프뢰유 작품이 전시돼 있는 모습.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함께한 장 폴 고티에의 쿠튀르 컬렉션에 여성의 몸 일부를 강조한 트롱프뢰유 룩이 등장했다.최근 로타 볼코바와 협업해 여성의 몸을 프린트한 ‘네이키드 컬렉션’을 선보였다.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한 장 폴 고티에의 아카이브 피스를 입은 카디 비의 모습.
그렇다면 이번 S/S 시즌에 깃든 트롱프뢰유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앞서 언급한 스키아파렐리와 장 폴 고티에에게 영감받은 디자이너들이 눈에 띈다. Y/프로젝트의 글렌 마틴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2023 S/S 시즌에도 트롱프뢰유 기법에 매료된 듯 보인다. 글렌 마틴스가 지금껏 선보인 Y/프로젝트의 아이코닉한 제품을 이번 시즌 룩에 다시 프린트한 것. 옷 위에 또 다른 옷을 입은 겹쳐 입은 착시 효과를 더했다. 어웨이크에서 등장한 손톱이 그려진 장갑은 스키아파렐리가 피카소와 협업했던 장갑과 비슷하다. 발망은 몸에 꼭 붙는 세컨드 스킨 드레스 위에 명화를 그려 넣어 고대 조각상을 보는 듯한 시각적 환영을 주었다. JW 앤더슨은 떠오르는 트롱프뢰유 기법의 신흥 강자다. 자신의 브랜드인 JW 앤더슨의 비닐 드레스 위에 물고기를 그려 넣어 마치 어항을 보는 것처럼 꾸몄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로에베에서는 픽셀을 확대한 룩을 선보였다. 마치 깨진 픽셀 모양을 한 후디드를 입고 등장한 모델은 런웨이가 아닌 마인크래프트 속의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이 외에도 가죽 위에 체크 셔츠와 청바지를 그려 넣어 극사실주의를 표현한 보테가 베네타 등 아이디어로 가득 찬 디자이너들의 발상과 트롱프뢰유 기법이 만나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초현실주의 미술 기법에서 시작해 아방가르드를 사랑한 쿠튀르 디자이너들의 주재료로, 독창적인 시도를 즐기는 요즘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 요소로 다시 사랑받고 있는 트롱프뢰유. 예술과 만난 디자이너들의 무궁무진한 발상으로 피어난 컬렉션에 매료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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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명민
    사진 IMAXtree.com/GETTYIMAGESKOREA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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