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개버랜드’라 부른다죠(웃음). 유기견 쉼터에서 만나려다 폭우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됐어요
파보 같은 전염병에 걸린 친구는 쉼터에 있지 못하고, 입원마저 힘들 때 봉사자의 집에 잠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 경우를 위해 만든 공간이에요. 제2의 놀이터나 휴식처 같은 곳이랄까요. 물론 여기서 임시보호를 길게 할 순 없어요. 또 다른 다친 유기견이 오고, 서로 감염 우려도 있으니까요.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여전히 대형견을 산책시킬 때 눈치 보이고 아침 일찍 혹은 밤늦게 산책하는 상황이 미안하기도 해서 겸사겸사 마당 있는 집을 구한 건데, 이제 모두의 놀이터가 된 거죠(웃음).
가족이 됐거나 임시보호 중인 개들을 소개해 본다면요
하얀 털의 ‘달리’는 임시보호하다 입양한 친구고요. 그 옆에 누런 털의 ‘영혼’이는 제가 처음으로 개 농장에서 구조한 친구예요. 사람으로 비유하면 자폐 증상이 있는데, 가족과 진지한 논의 끝에 정식으로 입양했죠. 털이 긴 ‘편숙’이는 해외입양을 보내려고 한림쉼터에서 데려왔는데, 그동안 바베시아 감염증이 발견됐고 치료해도 해외입양은 어렵다는 조언을 받았어요. 편숙이는 근처 ‘정거장’에 머물러요. 입양 갈 만한 개들을 쉼터에서 한 마리씩 데려와 건강검진도 하고, 임시보호도 하는 곳이죠. 임시보호처를 구하기 쉽지 않으니 차라리 공동으로 보호하자 싶어서 빈 식당을 개조해 만들었거든요. 봉사자들이 산책시키고 사회화도 하고, 잠만 개들끼리 자는 공간이에요. 편숙이는 정거장에서 산책하면 꼭 저를 따라 여기까지 와요. 자기 집에 안 가고 친구 집에서 자고, 게임하는 그런 친구처럼요.
‘개버랜드’라 불리는 고인숙의 제2의 집. 마당에서 반려견 영혼이, 유기견 편숙이와 함께.
어제도 공항에서 개들을 해외로 입양 보냈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일이기에 매번 해도 익숙할 것 같지 않아요
시간 켄넬 안에서 비행해야 하는 개들이 안쓰럽죠. 대화라도 되면 “조금만 참으면 네 ‘집’으로 가게 될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데 못 하니까요(웃음). 이제 눈물은 안 나요. 가고 싶은 데 못 가고, 안락사되는 개도 많거든요. 그래서 그냥 웃으면서 잘 보내줘요. “야, 너는 복받았다. 이 녀석아!”
임시보호라는 건 뭘까요. 구조견을 사회화시키고 더 좋은 환경에 적응하도록 애정을 쏟지만,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는 힘든 과정이에요
첫 번째가 가장 힘들어요. 또 버려진다고 인식할까 봐 미안하고, 보내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개들은 새로운 가정에 가면 정말 뒤돌아보지 않고 잘 살아요. 한번 가정에 적응했던 개들은 충분한 안정화로 어디서든 금방 적응하거든요. 잘 지내는 걸 보면 ‘이 녀석이 나를 잊었나’ 하고 서운할 정도죠. 하지만 사회화가 잘됐기에 그런 것이니 또 용기 내 한 마리, 두 마리 하고 나면 베테랑이 됩니다(웃음).
이동봉사자들을 구하고 개들을 공항으로 보내다가 〈캐나다 체크인〉을 통해 직접 캐나다까지 이동봉사를 했어요. 어떤 경험이었을지
제가 두 마리, 제주에서 함께 봉사하며 인연이 된 (이)효리가 두 마리를 데려갔어요. 이왕 캐나다로 가게 된 일, 이동봉사까지 하자 싶어서 항공권 예매할 때부터 가능한 비행편으로 알아보려 대한항공에 전화했는데 두 마리만 된다고 해서 효리가 해당 비행편으로, 저는 다행히 같은 날 출국하는 에어캐나다 편을 찾았어요. 제작진도 동참하는 바람에 추가로 이동봉사를 할 수 있었죠. 다행히 제가 탄 에어캐나다 편에 세 마리 자리가 남아 있어서 도합 일곱 마리를 보내게 됐습니다(웃음).
“해외로 입양 보낸 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보고 싶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이 여정이 시작됐어요
여행 갈 겸 어떻게 지내는지 볼 겸 가벼운 마음으로 입양자들에게 연락하고 계획을 짰어요. 짐도 대충 싸고, 옷도 거기서 샀죠. 그저 일상을 보내는 것처럼 촬영 내내 부담이 없었어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소나 눈썹이의 임시보호자들도 아이들이 보고 싶고 궁금했을 텐데, 그들을 대표해 다녀오는 거라 미안하기도 했어요. 영상으로나마 보면서 행복해하더라고요.
편숙이는 낯가림이 심하지만 유독 고인숙을 잘 따른다.
산이와 공손이, 눈썹이와 미소 등 실제로 구조하고 임시보호했던 개들이 타국에서 제2의 삶을 사는 걸 들여다보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제가 구조한 ‘공손’이는 아픈 손가락이었어요. 입양처를 구할 때도 제가 보호해서 그런지 더 급한 애들을 먼저 보내며 순서를 미루게 되더라고요. 늘 미안했는데 원래 그곳에 살던 것처럼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다른 개들도 제주에서 함께하던 친구들이 아니라 ‘남의 집 귀한 자식’ 보러 가는 느낌이라 이상했고, 또 고마웠어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기억하니 만감이 교차했어요.
해외로 입양 간 모든 개가 잘 지낼까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지
캐나다로 간 50여 마리 중 10마리 정도만 봤고, 모든 개를 보지 못했지만 그중 ‘빼꼼’이가 유일하게 임시보호를 거치지 않고 갔어요. 100여 마리가 있던 개 농장 뜬장에서 구조했는데, 쉼터와 또 다른 보호시설에 있다가 입양 간 경우거든요. 워낙 성격 좋고 사람을 잘 따르던 친구라 걱정 없었는데, 트러블도 있었고 의외로 제일 소심해져 있더라고요. 임시보호를 통한 사회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죠.
출신과 품종에 상관없이 한데 뛰어놀면 즐거운 영혼, 편숙, 달리.
입양자들이 ‘우리가 잘 돌보고 있는데 왜 보러 올까?’ 생각할까 봐 걱정했어요. 하지만 캐나다 입양 가족들은 자신의 반려견이 구조견이고, 누군가 임시보호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이해하더라고요.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고, 생명을 살려준 이를 기억하는 것도 가족으로서 소중하고 뜻깊은 일이라고 말해주더군요.
팬데믹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도 해외입양과 이동봉사자를 구하는 게 어려운가요
팬데믹 때는 입양률은 높았지만 비행편이 없으니 봉사자를 구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방송 이후로 문의가 엄청 들어와요. 이 정도로 해외입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동봉사에 파급력을 미칠지 몰랐죠. 오히려 데려가고 싶어도 아쉬운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비행기 크기에 따라 작게는 두 마리, 많게는 다섯 마리까지 동승할 수 있는 개체 수가 정해져 있어서 사전에 항공사에 예약이 다 찼는지 확인해 봐야 해요.
제주 개들 얘기를 해볼까요. 제주도는 인구 1만 명당 유기동물 발생 수가 전국 1위를 기록하고, 반면 입양률은 전국 평균 27.6%의 절반입니다. 이들은 어떤 경우로 버려지고, 구조되고 있나요
육지에서도 시골에 가면 묶어놓고 키우는 개가 많고, 중성화되지 않은 경우도 대부분일 텐데 제주도 마찬가지예요. 가임기가 되면 집을 나가거나 길에서 임신하고 돌아오는 경우, 심지어 길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들은 야생화되고, 2~3세대가 연이어 흩어지며 개체 수가 무한대로 늘어나요. 시에서도 중성화 사업을 3~4년째 실시하고 있지만, 주인인 노인들이 병원에 직접 데려가 수술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또 제주의 진도 믹스들은 귀소 본능이 강해서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도 곧잘 집에 찾아오는데, 관광객들은 신고 자체도 구조라고 생각하니 돌아다니는 개들을 신고하고, 민원은 응대할 수밖에 없으니 센터나 보호소로 포획하죠. 목줄 있는 마당 개들도 칩이 없어 유기견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집에서는 며칠이면 돌아올 거라 생각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거죠. 공고 기간을 거치면 안락사지만 노인들이 센터나 ‘포인핸드’에 문의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다른 구조견들이 들어오기에 이미 포화 상태예요. 국가 직영 보호소는 한 곳이고, 10~13일 정도의 공고 기간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순차적으로 안락사하죠. 즉 300마리 수용 공간에 10마리가 새로 오면 먼저 온 10마리는 안락사해요. 보호소에서 해외에 입양 보낼 수 있는 애들을 한두 마리씩 데려와 사회화하는데, 이 경우는 정말 적고 대부분 매일 죽어가요.
비 오는 창밖을 유유히 바라보는 영혼. 곁에는 늘 고인숙이 함께다.
성화 사업이죠. 전문가들도 ‘중성화 버스’ 같은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아요. 병원 방문이 어려운 마을에 수의사와 봉사자들이 버스 형태로 방문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대책이겠지만 불법이죠. 개복술은 허가받은 병원에서만 할 수 있거든요. 제주는 특별자치도라 법 조항을 일부 수정하면 가능하지만 쉽지 않아요. 교수와 수의사들이 쉼터에서 중성화 수술 봉사를 끊임없이 해도 늘어가는 숫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요.
개들을 구조하고, 보호하고 또 해외로 보내며 힘들었던 순간과 즐거웠던 순간을 꼽아본다면
해외입양은 간혹이고 쉼터에서 봉사하는 게 일과의 대부분이에요. 청소하고 산책시키고 봉사자들의 연락을 받거나 인원을 배치해 주기도 해요. 봉사 경력이 있으면 ‘하드코어’ 쉼터로(웃음), 초보자라면 쉬운 곳으로 보내죠. 시설 보완이 필요할 땐 함께 짓기도 하는데요. 사실 즐거운 일보다 마음 아픈 일이 훨씬 많죠. 옆 견사와 싸워서 팔이 뜯긴 애들, 다음날 아파서 죽어 있는 애들을 보면 늘 안쓰러워요. 그래도 열심히 훈련하고 입양 가는 걸 볼 땐 이제 ‘도련님’이 되겠다며 웃어요.
기쁨과 슬픔 속에서도 유기견 보호를 계속하는 동력은
뭘 모를 때 강아지를 키웠어요. 결혼하고 누가 봐도 예쁜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고, ‘순자’와 ‘유리’라는 친구를 입양했죠. 하지만 저는 무지했고 내 잘못으로 예정된 수명보다 일찍 그들을 보내고 나서 잘못을 깨달았어요. 그때 충격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이 개를 키웠다는 죄책감에 남편과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이들이 개를 키우고 싶다고 해도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어. 강아지는 장난감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가 성장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했죠. 쉼터에는 가끔 후원만 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봉사자가 한 명 오지 못하게 돼 하루만 부탁한다고 급히 연락이 왔어요. 너무 겁났지만 엉겁결에 쉼터에 도착한 순간, 등줄기에 전율이 일더라고요. 그곳에 모인 개들을 보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 무지함 때문에 먼저 보낸 순자와 유리를 무지개다리에서 다시 만나도 용서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비 오는 창밖을 유유히 바라보는 영혼. 곁에는 늘 고인숙이 함께다.
유기견 입양이나 길가의 동물을 돌보는 행위를 유난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이러한 시선에 어떻게 대처하고 싶나요
자기만족이라도 그 자체로 지구상의 동물이 도움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도움받는 친구들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든 한 끼 배불리 먹었고 따뜻했을 테니 저는 그 자체로 괜찮은 것 같아요. 뭐든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동안 만났던 모든 강아지들에게 한마디해 준다면
이모가 모두 입양을 보내줄 수는 없지만, 보호받는 동안은 최선을 다할 테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입양을 못 가면 이곳에서라도 다치지 않고 생활했으면 좋겠어.
profile 고인숙 해외로 입양 간 유기견들의 삶을 추적한 〈캐나다 체크인〉에 이효리와 동행하며 얼굴을 알렸지만, 그는 이미 수년째 제주의 유기견들을 구조하고, 봉사하고, 입양 보내며 유기동물과 함께하는 즐거운 삶을 꾸린다. 남편과 세 아들, 네 마리의 입양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