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백으로 가득 채운 빈 집
빈틈과 모자람 그리고 일말의 여백이 만든 풍요로움.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정갈하게 빈집의 멋을 보여주는 집. 키친에 둔 4층 찬탁에는 김민호가 공들여 수집한 기물들을 두고 즐긴다.

나이 지긋한 건축주가 86년에 신축한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주인이 바뀌지 않은 건물이라 뼈대가 훌륭했어요. 남편이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해서 ‘로컬’만 아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동네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죠.

피에르 가리시(Pierre Guariche)의 터노(Tonneau) 체어.

부부의 간소한 키친.

지오 폰티의 파이어사이드 체어로 시작되는 집의 풍경.

마리오 벨리니의 조명 에어리어(Area)의 펜던트 램프와 테이블 램프로 장식된 방. 독일판 달 항아리라 할 수 있는 빌헬름 바겐펠트의 화병은 박현아가 가장 아끼는 오브제다.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집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도 많이 배웠습니다.
다면성과 약간의 모순 그리고 생명력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부부가 억지스럽지 않게 이런 요소를 녹인 곳이 지금의 집이다. 정돈된 벽에 반하는 거친 노출 천장, 좁은 집에 비례가 맞지 않는 폭넓은 마루와 블랙 주방 가구…. 대부분은 주변인들이 만류했던 선택지였으나 이는 두 사람의 집이 품은 개성이 됐다. 집 안에는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국적의 물건들이 함께 놓여 있다. 모두 출신은 다르지만, 각각 은밀한 이야기와 의외성을 가지고 있기에 공간적인 ‘위트’로 느껴진다. 주방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튜블러 램프와 고가구인 4층 찬탁이 이웃하고, 방에는 박수근의 따뜻한 판화와 더치 모던 디자인의 일종인 차가운 철제 데이베드가 함께한다. 서로 반하는 듯 어우러지는 조화가 돋보인다. 
네 개의 터노 체어를 둔 다이닝 테이블이 집의 중심이다.
저희는 이런 걸 위트로 느껴요. 누군가 위트는 색채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더군요. 그 말에 공감해요.
김민호는 극심한 맥시멀리스트인 데 반해 박현아에게는 일종의 정리 벽이 있다. 계속해서 무언가 들이고 싶어하는 김민호의 욕구에 대항해 박현아는 그와 작은 계약을 맺었다. 하나를 들이고 싶으면 하나를 비워 내란 것. TV와 컴퓨터는 물론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집에서 이들은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보드 게임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키친의 한쪽 벽에 세워둔 4층 찬탁 위에는 오랜 시간 공들여 모아온 듯한 공예품이 놓여 있다. 하나를 새로 들이면 하나를 비워내야 하는 집에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된 사물일까. 
공간감이 남다른 샤워실.
취향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성장하기도 때론 퇴보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선택하는 물건은 기존 것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간결하고 수더분하면서도 모던한 것, 화려하지 않고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들을 곁에 둡니다. 저렴하고 손이 자주 가는 그릇과 사용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마음이 동하는 사발은 각자의 이유로 정을 주게 돼죠.

박수근의 따뜻한 판화와 더치 모던 디자인의 푸른색 데이베드를 함께 둔 코너의 위트.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 류경윤
- 디자인 김희진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엘르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