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으로 가득 채운 빈 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여백으로 가득 채운 빈 집

빈틈과 모자람 그리고 일말의 여백이 만든 풍요로움.

이경진 BY 이경진 2023.02.04
 
정갈하게 빈집의 멋을 보여주는 집. 키친에 둔 4층 찬탁에는 김민호가 공들여 수집한 기물들을 두고 즐긴다.

정갈하게 빈집의 멋을 보여주는 집. 키친에 둔 4층 찬탁에는 김민호가 공들여 수집한 기물들을 두고 즐긴다.

빈티지 가구와 리빙 제품을 소개하며 좋은 물건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레반다 빌라(Levande Villa)는 박현아 · 김민호 부부가 운영하는 대전의 쇼룸이다. 7년 동안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해온 이들은 올해 초 결혼해 지난봄 함께 레반다 빌라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집에 살고 있다.
 
나이 지긋한 건축주가 86년에 신축한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주인이 바뀌지 않은 건물이라 뼈대가 훌륭했어요. 남편이 나고 자란 동네이기도 해서 ‘로컬’만 아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동네에 대한 애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죠.
 
피에르 가리시(Pierre Guariche)의 터노(Tonneau) 체어.

피에르 가리시(Pierre Guariche)의 터노(Tonneau) 체어.

현관에 들어서면 지오 폰티의 파이어사이드 체어가 반갑게 맞아준다. 자유롭게 착석해 사용하긴 어려운 빈티지 피스다. 그 쓸모 없음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의자를 중심으로 집의 전체적인 공간을 구상했다. “언젠가 조선시대 목가구와 살아보고 싶어요. 서안과 찬탁, 사방탁자들과 함께요. 간결하게 만들어져 비례감이 훌륭한 조선시대 2층 찬장도요. 전 세계 어떤 가구보다 모던함을 지닌 것이 조선시대 목가구라고 생각합니다. 피에르 잔느레의 인도 찬디가르 피스를 뛰어넘는 파티나와 조형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고요. 아마 한국인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조권 사선 제한의 영향을 받아 위로 좁아지는 건물의 꼭대기 층이라 부부는 집을 ‘옥탑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부부의 간소한 키친.

부부의 간소한 키친.

구조적으로 변형을 주기 힘든 투베이 구조. 공간 구획에 있어선 특이사항 없이 몇 가지 악센트를 주기로 했다. 구조 변경은 없지만 방문을 없애고 천장고를 높이기 위해 기존 천장을 철거한 후 의도적으로 깔끔하게 매만지지 않은 채 흰 페인트 칠을 했다. 철근과 단열재를 뜯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천장과 매끈한 벽이 만나 공간의 결이 한층 다채로워졌다. 오래전부터 가구 바잉을 하면서 신혼 가구들을 함께 고르고 모아온 두 사람은 수집 성향이 조금 달랐다.
 
지오 폰티의 파이어사이드 체어로 시작되는 집의 풍경.

지오 폰티의 파이어사이드 체어로 시작되는 집의 풍경.

김민호가 무차별적인 수집과 실험 정신을 가진 편이기에, 옆에서 박현아는 그의 기질을 조금씩 통제하고 편집하는 역할을 하며 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물만으로 지금의 공간을 채웠다.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훑어보기를 좋아해서 그간 쌓아온 취향이 집에 반영되기도 했지만, 조금 더 의식적으로 한국의 사적인 공간을 참고하려고 노력했어요. 서구 것에 대한 오랜 관찰과 동경이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가구들이 더욱 생경하고 새롭게 느껴졌거든요.” 부부는 최순우, 김환기, 이순우, 유홍준의 집 등을 다시 한 번 깊이 관찰하고 되짚어보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을 체감했다.
 
마리오 벨리니의 조명 에어리어(Area)의 펜던트 램프와 테이블 램프로 장식된 방. 독일판 달 항아리라 할 수 있는 빌헬름 바겐펠트의 화병은 박현아가 가장 아끼는 오브제다.

마리오 벨리니의 조명 에어리어(Area)의 펜던트 램프와 테이블 램프로 장식된 방. 독일판 달 항아리라 할 수 있는 빌헬름 바겐펠트의 화병은 박현아가 가장 아끼는 오브제다.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집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도 많이 배웠습니다.
다면성과 약간의 모순 그리고 생명력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부부가 억지스럽지 않게 이런 요소를 녹인 곳이 지금의 집이다. 정돈된 벽에 반하는 거친 노출 천장, 좁은 집에 비례가 맞지 않는 폭넓은 마루와 블랙 주방 가구…. 대부분은 주변인들이 만류했던 선택지였으나 이는 두 사람의 집이 품은 개성이 됐다. 집 안에는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국적의 물건들이 함께 놓여 있다. 모두 출신은 다르지만, 각각 은밀한 이야기와 의외성을 가지고 있기에 공간적인 ‘위트’로 느껴진다. 주방에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튜블러 램프와 고가구인 4층 찬탁이 이웃하고, 방에는 박수근의 따뜻한 판화와 더치 모던 디자인의 일종인 차가운 철제 데이베드가 함께한다. 서로 반하는 듯 어우러지는 조화가 돋보인다.
 
네 개의 터노 체어를 둔 다이닝 테이블이 집의 중심이다.

네 개의 터노 체어를 둔 다이닝 테이블이 집의 중심이다.

저희는 이런 걸 위트로 느껴요. 누군가 위트는 색채로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더군요. 그 말에 공감해요.
김민호는 극심한 맥시멀리스트인 데 반해 박현아에게는 일종의 정리 벽이 있다. 계속해서 무언가 들이고 싶어하는 김민호의 욕구에 대항해 박현아는 그와 작은 계약을 맺었다. 하나를 들이고 싶으면 하나를 비워 내란 것. TV와 컴퓨터는 물론 와이파이도 되지 않는 집에서 이들은 조금도 심심하지 않다. 보드 게임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키친의 한쪽 벽에 세워둔 4층 찬탁 위에는 오랜 시간 공들여 모아온 듯한 공예품이 놓여 있다. 하나를 새로 들이면 하나를 비워내야 하는 집에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된 사물일까.
 
공간감이 남다른 샤워실.

공간감이 남다른 샤워실.

취향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성장하기도 때론 퇴보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라 단정 짓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선택하는 물건은 기존 것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간결하고 수더분하면서도 모던한 것, 화려하지 않고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들을 곁에 둡니다. 저렴하고 손이 자주 가는 그릇과 사용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마음이 동하는 사발은 각자의 이유로 정을 주게 돼죠.
 
박수근의 따뜻한 판화와 더치 모던 디자인의 푸른색 데이베드를 함께 둔 코너의 위트.

박수근의 따뜻한 판화와 더치 모던 디자인의 푸른색 데이베드를 함께 둔 코너의 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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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경진
    사진 류경윤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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