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 건축물 ③ 충남도청 구청사를 산책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CULTURE

한국의 근대 건축물 ③ 충남도청 구청사를 산책하다

대전시 중구 선화동.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으로 재탄생할 충남도청 구청사로 떠난 한나절의 산책.

이경진 BY 이경진 2023.01.09
 

충남도청 구청사 

근대 관공서 건축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충남도청 구청사.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근대 관공서 건축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충남도청 구청사.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좌우가 대칭인 긴 건물. 평면도로 보면 거대한 E자형. 국내에서 원형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근대 도청 건물 중 하나인 충남도청 구청사(현 대전근현대사전시관)다. 올해 90세가 된 이곳은 대전에 남아 있는 근대 관청 건물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과거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온 시기가 1932년. 다시 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된 때가 2012년이다. ‘80년 도청 시대’를 마친 건물의 이야기는 10년째 멈춰 있다. 그 사이 전시나 영화상영회를 열거나 영화 〈변호인〉의 무대가 되는 등 크고 작은 문화 행사의 조연이자 배경이 돼온 건축물은 얼마 전 새로운 운명과 맞닥뜨렸다.
 
당시 유행처럼 즐겨 사용된 스크래치 타일의 외벽. 충남도청 구청사 본관은 30~40년대의 근대 도시가 지닌 활력과 경쾌함, ‘모던’ 대전의 상징이다.

당시 유행처럼 즐겨 사용된 스크래치 타일의 외벽. 충남도청 구청사 본관은 30~40년대의 근대 도시가 지닌 활력과 경쾌함, ‘모던’ 대전의 상징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전관 유치.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은 재임과 함께 대전관 설립에 대한 야심 찬 계획을 알렸다. 대전관은 연내 설계를 마치고 2023년 착공, 2025년에 준공될 계획이다. 대다수의 공간이 비어 있는 건물은 평온하고 고풍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반질반질하다 못해 오목하게 패인 돌 층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았을까. 1931년 6월에 착공해 14개월이라는 단시간에 완공됐다는 건축물은 웅장하고 위풍당당하다. 일제강점기의 관급 공사는 모두 총독부 소속 건축가들이 맡았다. 충남도청 구청사는 이와스키 센지와 사사 게이이치가 설계했다. 이와스키 센지는 옛 서울시청과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을 설계하기도 했다.
 
원형을 보존한 후면의 창은 수직으로 긴 형태의 격자창이다.

원형을 보존한 후면의 창은 수직으로 긴 형태의 격자창이다.

충남도청 구청사에는 1930년대 모더니즘 양식이 충실히 반영됐다. 안팎을 살피면 20~30년대 관공서 건축양식의 변화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의 도청은 경사 지붕이 많았고, 중앙에 탑을 세우거나 벽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창과 벽체의 수직성을 강조하는 등 웅장함을 갖춘 외관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1930년대에 접어들어 국제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평지붕이 많아지고 장식은 단순해진다.
 
건물의 전면부와 측면부 외벽을 장식한 황색의 스크래치 타일.

건물의 전면부와 측면부 외벽을 장식한 황색의 스크래치 타일.

변칙적인 벽돌 쌓기를 활용한 장식과 외벽의 스크래치 타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의 건물에 멋을 더한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에는 스크래치 타일이 유행처럼 사용된 곳이 많다. 현관에 들어서면 홀이 등장한다. 홀 내부에는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진한 대리석을 격자형으로 붙여 모자이크 효과를 냈다. 중앙 로비로 통하는 자리에는  커다란 아치형 문이 달렸는데,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이중 경첩이 눈에 띈다.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의 좌우 난간은 모두 인조석 물 갈기로 마감했다. 구조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기둥. 원형이 유지된 후면의 창은 창문의 개방 정도를 조정하고 그 상태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든 하단부의 고정장치가 흥미롭다. 문을 180˚로 열 수 있도록 하는 이중 경첩과 문틀에 낸 경첩 모양의 홈.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층 로비에서 2층으로 오르는 중앙 계단의 좌우 난간은 모두 인조석 물 갈기로 마감했다. 구조적인 형태가 돋보이는 기둥. 원형이 유지된 후면의 창은 창문의 개방 정도를 조정하고 그 상태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든 하단부의 고정장치가 흥미롭다. 문을 180˚로 열 수 있도록 하는 이중 경첩과 문틀에 낸 경첩 모양의 홈.

180° 앞뒤로 젖혀지도록 문틀에 경첩 모양의 홈을 판 것이 흥미롭다. 중앙 로비 그리고 2층으로 이어지는 중앙 계단은 이 건물에서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독특한 몰딩으로 감싼 아치, 아치를 떠받치고 있는 독립된 두 개의 기둥과 벽주들은 오랜 세월의 더께를 입었음에도 잘 관리돼 유려한 원형이 보존된 모습이다. 로비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두 개의 기둥은 좌우 벽체에 묻어 잘 보이지 않게 했다. 대신 하중을 고려해 폭이 긴 아치를 만들어 넣었다. 세그멘털 아치. 추력에 저항할 수 있는 강한 아치다. 화려한 천장과 웅장한 기둥에 호흡을 맞춰, 로비 바닥은 작은 모자이크 타일을 붙였다. 중앙 계단은 근대 병원, 관공서 등의 실내 바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재료인 인조석 물 갈기를 한 대리석을 덧대 발판을 만들었다. 중앙 계단을 올라오면 1층 로비와 같은 면적의 2층 중앙 로비가 있고 그 정면에 바로 도지사실이 자리한다. 집무실 테라스 너머로 대전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1층 로비와 같은 면적의 2층 중앙 로비를 지나면 도지사실이다. 평면상 도지사실 일부를 외부로 돌출시켜 중심성을 높였다.

1층 로비와 같은 면적의 2층 중앙 로비를 지나면 도지사실이다. 평면상 도지사실 일부를 외부로 돌출시켜 중심성을 높였다.

3층에 이르는 건물 곳곳을 거닐며 마주하는 수많은 창은 건축적 산책에 잔잔한 리듬을 더한다. 1932년 건축 당시 전후면의 창은 모두 같은 형식이었으나 현재는 후면 복도창만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후면 창에는 황동 손잡이가 달린 양쪽 여닫이문이 적용됐다.
 
중앙 계단의 난간대를 지지하는 1층 바닥의 엄지 기둥에도 띠를 둘러 장식했다.

중앙 계단의 난간대를 지지하는 1층 바닥의 엄지 기둥에도 띠를 둘러 장식했다.

어둠이 서서히 내릴 때쯤, 오래된 건물의 실내는 더욱 깊고 넓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드리우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충남도청사는 대전역 광장과 마주보는 도로, 중앙로 끝에 자리한다. 위치가 절묘하다. 대전은 근대 이전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다. 일제강점기에 기차역이 생기며 식민 도시로 역사에 등장한다. 철도 특수에 의해 규모가 커졌고, 도청사 이전이 이뤄지면서 충청남도의 중심이 됐다. 부지 6000평은 공주 갑부로 유명했던 친일파 김갑순이 기부했다. 총 공사비는 17만65원. 지금으로 치면 대략 70~80억 원 정도 든 것으로 전해진다.
 
장식적인 아치형 천장에서 시작되는 긴 복도.

장식적인 아치형 천장에서 시작되는 긴 복도.

미 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주요 사건의 역사적 현장이 되기도 했던 옛 건물은 그야말로 거대한 근대 도시의 탄성과 굴곡을 오롯이 지켜봐온 시대의 얼굴이었다. 구석구석 내딛는 발걸음마다 지난 세월이 배어 나오는 듯한 건물은 이제 전대의 화려함도, 시간이 멈췄던 시절도, 모두 벗고 그만의 새 역사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도지사실의 테라스 창 일부에는 색면 유리로 장식적 요소를 적용됐다.

도지사실의 테라스 창 일부에는 색면 유리로 장식적 요소를 적용됐다.

 
변칙적인 벽돌 쌓기로 멋을 낸 건물 입구. 황색 스크래치 타일로 이뤄졌다.

변칙적인 벽돌 쌓기로 멋을 낸 건물 입구. 황색 스크래치 타일로 이뤄졌다.

 
1932년 준공 당시에는 2층의 평지붕 구조였다. 세월이 흘러 필요에 따라 3층과 지붕이 증축됐다.

1932년 준공 당시에는 2층의 평지붕 구조였다. 세월이 흘러 필요에 따라 3층과 지붕이 증축됐다.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