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회사 마이코워크스(Mycoworks)는 곰팡이의 식물성 부분인 균사체를 채취할 수 있는 혁신적 방법을 발견했다. 압축된 균사체인 기존의 비건 가죽과는 달리 마이코워크스가 개발한 소재는 균사체가 자라는 동안 만들어진 연결 세포 구조로 인해 뛰어난 내구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뿐 아니라 강도와 질감 면에서 다양한 설계를 할 수 있어 더 넓은 범주의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그런가 하면 샤넬의 지원을 받아 실크 기반의 섬유화학을 만들어내는 생명공학 회사 이볼브드 바이 네이처(Evolved by Nature)는 실크 프로틴을 활용해 직물을 보호, 보수, 강화하는 지속 가능 분자를 만든다. 가죽을 실크 베이스로 마감하면 성능이 강화되고 소재도 재활용할 수 있는 것.
지난해 3월에 발표된 닐슨(Nielsen)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인 여섯 명 중 네 명은 이미 대부분의 제품을 리필하는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으며, 브랜드에 상관없이 호환 가능한 공용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화장품 리필 매장은 원래 국가 자격을 취득한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가 매장에 상주하는 게 원칙이었으나, 식약처에서 지난해 9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금은 매장 직원이 관련 교육과 훈련을 이수하면 리필스테이션 운영이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덕분에 대기업 중심으로 선보였던 리필 매장이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서 운영하는 곳은 리필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공병을 업사이클링한 인테리어 디자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는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은 화장품뿐 아니라 각종 차와 크래커 등도 리필할 수 있어 재미있고, GS25 편의점도 건국점에 특정 브랜드의 세탁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업사이클링은 패키지에만 국한된 이야기라고? 시세이도사에서 론칭한 메이크업 브랜드 와소(Waso)는 낙과한 사과에서 즙을 내 화장품 성분에 사용하고, 네덜란드 브랜드 어니스틀리 잇츠(Honestly It’s)는 커피 찌꺼기로 만든 각질 제거 크림을 출시했다. 앞서 소개한 희녹도 가지치기로 버려진 편백나무를 주성분으로 사용하지 않던가. 단지 패키지에 그치지 않고 성분 면에서도 버려진 것의 가치를 되찾아 재활용하는 움직임인 셈.
국내에서 ‘뷰티 앱’이라면 십중팔구 성분 분석 앱 정도를 떠올리지만, 프랑스의 경우 화장품과 환경과의 연관성을 알려주는 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식품과 화장품을 다루는 유카(Yuka)와 국내에서는 아벤느가 속한 그룹으로 알려진 피에르 파브르(Pierre Fabre)는 자사 앱을 통해 환경 영향 지수를 바탕으로 한 제품 보증 시스템을 도입했고, 키사코(Kisaco)라는 앱은 각 제품의 포장 재질과 성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알려준다. 에디터가 직접 다운로드해 사용해 보니, 제품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카메라로 제품을 비추면 바코드를 인식해 결과를 알려줘 ‘신기방기’! 화장품은 패키지만 봐서는 그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어려운데, 이렇듯 앱을 열고 카메라에 비추는 것만으로 환경적 영향을 알려주다니, 국내에도 이런 똑똑한 앱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은 전 세계 화장품 업계에서 두 번째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화장품이 동물실험을 거쳐야 하는데, 지난해 5월 이후 샴푸와 보디 워시, 블러셔, 마스카라 등 일반 화장품은 동물실험이 면제됐다. 비록 자외선차단제와 헤어 염색제, 아동용품 같은 특수 용도의 화장품은 여전히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는 맹점이 있으나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천천히,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중국시장 문을 두드려야 할 듯하다.
2018년 영국패션협회가 모든 패션쇼에서 동물 모피를 금지시킨 이후 베르사체와 마이클 코어스, 구찌 등 많은 브랜드가 모피 반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공장식 축산 방식은 차치하더라도 동물을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대기·토지 오염, 부패를 막기 위해 독성 강한 화학물질 사용을 멈추기 위함이다. 대안으로 프랑스 기업 에코펠(Ecopel)은 동물 모피 반대를 약속한 300여 개 브랜드와 협력하고 있다. 페타(Peta)의 이본느 테일러는 세계 최초로 얻은 인조 모피인 에코펠의 코바(Koba)야말로 현재 가장 주목해야 할 소재라고 강조했다. 바이오 연료 산업 분야에서 얻은 옥수수를 결합한 섬유는 전통적인 모피 제작방식보다 에너지 사용은 30%, 온실가스 배출은 63%나 감소시킬 수 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의 80% 이상이 디자인 설계 단계에서 정해진다는 사실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재활용 소재와 클린 에너지 사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선순환이 가능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떠오를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홍콩의 리드레스 디자인 어워드, 호주의 패션 로리엇 어워즈 등 다양한 어워드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리얼리얼(RealReal), 베스티에르 켈렉티브(Vestiaire Collective)와 디팝(Depop) 같은 중고 쇼핑 사이트 덕분에 리세일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럭셔리 리세일 운동은 꾸준히 증가 추세로, 리얼리얼의 경우 신규 가입 회원 수가 지난해만 해도 600만 명에 이른다고. 하우스 브랜드도 순환적인 패션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구찌는 리얼리얼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버버리는 렌털 및 리세일 플랫폼인 마이 워드로브(My Wardrobe)와 협업을 발표하는가 하면, 알렉산더 매퀸은 지난 시즌 제품을 팔고 싶은 고객으로부터 제품을 검수·매입하고 현재 컬렉션에 대한 상품권을 제공하는 ‘브랜드 승인(Brand Approved)’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장 폴 고티에는 고객들이 옷을 빌려 입을 수 있는 ‘아카이브 렌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빈티지 제품을 판매하는 리세일 카테고리를 신설하기도 했다. 한편 발렌티노는 바우처를 제공해 전 세계 주요 매장에 발렌티노 빈티지 제품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발렌티노 빈티지’ 프로그램으로 럭셔리 브랜드의 리세일 흐름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