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메(ORMAIE) 향수의 창립자, 밥티스트(Baptiste Bouygues).

밥티스트와 함께 오르메 향수를 만든 그의 어머니, 마리-리즈(Marie-lise Jonak).
너도밤나무를 일일이 깎아 만든 보틀 캡은 조각가였던 당신의 할아버지를, 아름다운 향의 조합은 꽃을 사랑한 당신의 할머니를 연상시킵니다. 당신 가족의 영혼이 오르메 향수 전반에 어려있는 느낌이에요
저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르메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 역시 이러한 진정성이에요. 이런 마음가짐과 작업 과정이 향수에 영혼을 불어넣었고, 오르메가 다른 향수와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제 감정을 정직하게 그대로 따라 향수를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르 파상(Le Passant)은 제가 기억하는 제 아버지의 향입니다. 그 향을 찾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고, 아버지의 향이 완벽하게 재현될 때까지 저는 그 향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향수를 과연 출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버지께서 항상 아르메니아산(産)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던 게 기억났습니다. 아르메니아산 종이에는 벤조인(Benzoin)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을 조합하자 비로소 아름다운 라벤더 향의 르 파상이 완성되었답니다.

밥티스트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향으로, 고전적 남성의 본질을 연상시키는 섬세함과 강인함이 묻어나는 라벤더 향의 향수. 르 파상, 50ml 21만원, 100ml 30만8000원, ORMAIE.
오르메의 크리에이티브한 SNS계정(@ormaieparis)은 언제나 화제입니다. 오르메 향은 굉장히 시적이고 인문학적인데, SNS 콘텐츠들은 반면 뭔가 너무 젊고 신선해서 그 간극이 오히려 소비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계획된 마케팅 전략이었나요
사실 오르메 SNS 계정에는 아무런 전략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하. 창의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을 뿐이에요. 오르메만의 크리에이티브함의 기반이 되는 것들, 우리가 사랑해 마지 않는 조각, 사진, 문학 등과 우리의 향수 스토리를 접목해서 보여줄 뿐입니다.
꽃에 달린 눈과 입이 꿈뻑꿈뻑, 뻐끔뻐끔대던 그 포스팅은 정말 흥미로웠어요
창작 과정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오르메 향수가 천연 성분으로 만들어진 향수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최고의 천연 성분만을 사용하고 합성 성분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핵심이 있었죠. 우리는 이 점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연이 직접 우리의 향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1970년대 자크 드미(Jacques Demy) 감독의 프랑스 영화 〈당나귀 공주(Peau d’Âne)〉가 떠올랐어요. 이 영화에는 장미가 등장해요. 장미가 왕자에게 말을 걸어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죠. 바로 그 장미에서 힌트를 얻었답니다.

진정한 럭셔리는 오프라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죠. 디지털 플랫폼에서 주목받는 것과 별개로 오르메 향을 직접 체험하는 것 역시 중요할 텐데요
오르메는 모두가 한번쯤 꼭 경험해 보아야 할 향수라고 자부합니다. 12각으로 정교하게 커팅된 유리 보틀부터 수작업으로 탄생한 보틀 캡, 그 안에 담긴 향기까지 이 모든 걸 느끼는 순간 당신의 감성에 자극이 더해질 테니까요. 만약 제가 오르메 향수를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이 향수를 만들게 된 동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꼭 함께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추억이 그들의 개인적인 추억을 일깨워 줄 것이고, 향을 통해 전혀 다른 장소나 시간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향을 맡는 순간 이러한 경험을 하는 걸 지켜볼 때 저는 매우 큰 보람을 느낍니다.
밥티스트와 마리-리즈, 두 분 모두 태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던데요, 오르메를 창조할 때 태국이라는 나라가, 좀더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아시아’라는 대륙이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영감의 매우 큰 부분입니다. 누군가 한 나라에 산다는 건, 그 나라가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의 향기는 물론, 미적 감각과 심미안, 행동 방식, 사고 방식 등 모든 것이 포함되죠. 저는 아시아에 늘 친밀함을 느낍니다. 대륙의 깊은 역사와 장인정신에 대한 존중,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겸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매우 큰 공감을 하죠. 제가 아시안들에게 느낀 친절함 또한 매우 존경하는 부분입니다. 오르메의 디자인은 지극히 프랑스적이지만, 그 안에 분명 아시아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감초 향, 목제 책장에 꽂혀 있는 종이 책의 소설, 학교 교과서와 도서관의 나무 등 사라지지 않는 어릴 적 추억을 담은 편안한 우디 향. 파피에 카르본, 50ml 21만원, 100ml 30만8000원, ORMAIE.

신비로운 향이 어우러진 나무 바닥 위에서 공연을 시작하기 전 행운을 비는 마법의 주문인 '토이 토이 토이'. 나무판자의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무용수의 향을 전하는 토이 토이 토이, 50ml 21만원, 100ml 30만8000원, ORMAIE.
언뜻 사진으로만 봤을 때 원형 보틀인 줄 알았어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꽤 큰 도전이었을 텐데 12각 커팅을 고수한 이유가 있었나요
12는 ‘12시간’을 상기하는 숫자이며 아름다운 향기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12각을 지닌 보틀은 매우 중요했죠.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 때 잠재적인 기술적 문제는 일체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창의성, 감각을 따를 뿐이죠. 훌륭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파트너 장인들이 우리가 그린 시안을 그대로 재현해주길 희망할 뿐입니다. 그들의 장인정신을 늘 높이 평가해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행운입니다.

정교한 커팅이 돋보이는 보틀과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나무 보틀 캡.
보틀 캡 역시 장인들의 손에 의해 탄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각각의 모양이 지닌 의미도 남다르겠죠
저는 늘 브랑쿠시(Brancusi)와 19세기 후반 디자인에 매료되어 있습니다. 오르메 향수 역시 여러분의 생활 공간 안에 아름다운 예술 작품처럼 자연스럽게 자리잡기를 원해요. 때문에 나무로 만든 조각 작품 같은 보틀 캡 역시 꽤 직관적으로, 빨리 생각해낼 수 있었습니다. 향수 뚜껑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안에 들어있는 향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령 ‘뱅트위트 데그레(28°)’ 향수의 하얗고 납작한 타원 캡은 태양의 포근함을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여름 밤에서 영감을 얻은 향이거든요. 프랑스 시인 랭보가 ‘여름의 하얀 태양’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이는 시(詩) 맥락 안에서 여름에 쓰는 흰색 모자로 해석됩니다. 이 보틀 캡도 마찬가지예요.




시그니처 7가지 향에 더해 ‘마크 파쥐(Marque-Page)’라는 향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마크 파쥐만의 특징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네, 7가지 향 출시 후 3년만에 선보인 새로운 향입니다. 마크 파쥐는 ‘책갈피’를 뜻합니다. 역시 저희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서 시작된 향이에요. 늘 가죽으로 만든 책갈피를 가지고 여행을 다니셨거든요. 여행에 대한 이야기, 북아프리카의 어느 시장에서 테라코타를 가지고 놀다 발견한 빛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책갈피 가죽의 향기가 우드(Oud; 아랍의 현악기)를 가지고 노는 이미지를 연상하며 만들었습니다.

사막에서 오는 따뜻한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흰 꽃 사이를 배회하는 테라코타에 닿는 빛의 향기를 표현했다. 향신료와 가죽 향이 매력적인 마크 파쥐, 100ml 40만5000원, ORMAIE.
오르메의 다음 향이 궁금해집니다. 또 어떤 스토리를 담고 있을지 〈엘르〉에 힌트를 준다면
정말 섬세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쿠튀르 드레스의 레이스와 같은 것, 아르 데코(Art Deco)적인 터치가 가미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