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니트 톱은 Dewe Heart Dewe. 블랙 팬츠는 En Or. 플랫폼 슈즈는 Marni. 진주 네크리스는 Numbering.사진 장한빛, 스타일리스트 오주연, 헤어 스타일리스트 장하준/박수정,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하준/심현섭
결국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드라마 〈알고 있지만〉 2013년 공동연출자로 입봉해 2016년 〈뱀파이어 탐정〉으로 첫 연출을 맡았다. ‘하우스’라고 불리는 공중파가 아닌, 프리랜서로 경력을 쌓은 여성이 드라마 프로듀서가 된 것은 내가 최초라더라.
〈알고 있지만〉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우선 여배우로서 주연을 맡은 한소희의 존재감이 있고, 나를 비롯해 원작자와 작가들, 기획 PD를 포함한 제작사와 스튜디오의 대표 모두 여성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작업 과정에서 연대감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알고 있지만〉은 대사는 물론 스킨십 수위까지 매우 현실적인 20대의 연애를 그렸다
로맨틱 코미디와 치정 멜로, 스릴러 등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시청자들이 허구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느낀 감들을 상기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 단계부터 많이 신경 썼다. 워낙 원작 웹툰의 팬이기도 했고.
전작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도 원작 소설이 있었다. 확실히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는 것이 흐름일까
창작자 입장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또 다른 창작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오는 부담감이 크고, 원작 팬에게 날카로운 비평을 받을 각오도 필요하다. 다만 업계에서 선호하느냐고 물으면 확실히 그렇다. 이미 검증받은 양질의 재료니까.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 지향하는 것이나 지양하는 것은
젠더 감수성이 화두가 된 이후 여성감독인 내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을 모두 궁금해하더라. 균형을 맞추려는 순간부터 오히려 구분 짓게 되는 면도 있었는데 인류애로 접근한 이후로 편해졌다.
당신에게 창작물을 보는 이들은 어떤 고려 대상인가. 로맨스물은 상대적으로 여성 시청자 층이 두꺼울 수밖에 없는데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자 감정인 사랑이라는 테마에 중점을 둘 뿐이다. 실제로 타기팅이 불가능한 시대다. 플랫폼이 다양해졌고, 시청률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이 해석까지 단 편집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특정 장면이 쇼트폼이나 릴스에서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중요한 주제만 잘 지키면 된다는 생각이 커졌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봤던 〈런온〉도 사랑 이야기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좋은 증거 같다.
미디어가 대상의 이미지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내 표현이 특정 대상의 혐오를 유발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원작에 없는 유일한 커플이었던 ‘윤솔(이호정)’과 ‘서지완(윤서아)’을 통해 그런 시도를 해봤고, 실제로 〈알고 있지만〉을 통해 성소수자인 딸을 이해하게 됐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니 창작자들 또한 불안하더라도 안전한 공식만 택하지 말고 용기를 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사람들이 정말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도 하니까.
지난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있었다면 올해는 윤여정 선생님이다. 진짜 아티스트다. 남녀를 구분 짓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단히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여자고 할머니인데 ‘멋있어’라는 인식의 전환이 된다는 것. 지금은 어쩌다 보니 살아남은 특이한 여성감독 중 하나지만 나도 창작자로서 또렷하게 자리매김하고 싶다.
2021년, 여성 창작물의 활약은 정말 충분했을까
예전에는 여자 후배들이 나처럼 되고 싶다는 말조차 스트레스였다. “이 바닥 별로야” “3D 업종이니 하지 마”라며 한껏 ‘쿨’한 척도 했고,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리 천장을 시원하게 깼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그나마 깨어 있다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여전히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