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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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비대면으로 신기술을 발표하는 콘퍼런스를 열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엔비디아의 청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이 콘퍼런스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다.
몇 달 후, 엔비디아는 재밌는 발표를 했다. 4월에 열린 콘퍼런스 동영상에 등장한 젠슨 황이 가짜였다는 것. 즉,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해 가상 세계에서 젠슨 황을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다. 젠슨 황과 배경 모두 진짜 같은 가짜였다. 세상이 감쪽같이 속았다. 엔비디아는 이 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이 메타버스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지 플렉스를 한 것이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인터넷이 되리라 확신하며,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다. 엔비디아뿐만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은 메타버스 앞에서 마치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흥분하고 있다. 도대체 왜 세계는 ‘메타버스’에 열광하는가.
메타버스, 싸이월드와 뭐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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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핵심은 아바타다.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아바타를 활용해 ‘부캐’를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이런 서비스를 아주 활발하게 이용했던 적이 있다. 바로 싸이월드다.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라는 가상의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 서비스였다. 미니홈피는 디지털 세계 속 나의 집이었다. 가구를 사고, 벽지도 사고, 장식품도 사서 집을 꾸밀 수 있었다. 내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도 틀었다. 당연히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도 있다. 또한 ‘도토리’라는 화폐도 있었다.
싸이월드는 메타버스인가? 맞다. 싸이월드는 낮은 단계의 메타버스 서비스였다. 단,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타인과 소통을 하는 친목 기능이 전부였다. 요즘에 뜨는 메타버스는 싸이월드와 뭐가 다를까.
제페토에 들어가봤다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공간에서 도대체 나는 뭘 해야 할까. 행색이 초라해서인지 다른 유저들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저기요...’라고 말을 걸었다. 어떤 사람 대응을 해줬다.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도대체 여기서 뭘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바타는 “하긴 뭘 해?”라고 반말로 대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는 “몇 살이시죠?”라고 물어봤다. 꼰대 같은 질문이었다. 가상세계에서 나이를 묻다니. 그러자 상대는 “11살이야”라고 답했다. 나는 작별 인사를 고하고 조용히 메타버스 세계에서 로그아웃했다.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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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어린 친구들은 광활한 디지털 세계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게 아니다. 메타버스 세계에 들어와서 ‘뭘 할지’ 찾는 거다. 그들에게는 이 가상의 세계가 현실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한다. 그냥 하나의 세계다.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신기술이 아니라 처음부터 주어진 기본 인프라다. 디지털 세계에 대한 거부감이나 위화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유년 시절에 친구에게 “여섯 시에 놀이터에서 만나자”라고 말했지만, 이젠 “여섯 시에 제페토에서 만나자”라고 말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미래
」물론 아직 메타버스가 낯설고,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가상현실보다는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땅이 더 소중하니까. 하지만 이런 메가트렌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나는 그래도 2G폰을 쓰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2G 폰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전기차가 싫어서 가솔린차를 산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미래엔 가솔린차는 생산 자체가 중단된다. 언젠간 우리는 좋든 싫든 메타버스 세계에 자주 접속해야 할 수도 있다. 미리미리 이 새로운 세상과 친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