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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안창림의 올림픽 첫 동메달

태어난 나라 일본에서, 대한민국에게 메달을 안긴 안창림.

BY라효진2021.07.27
선진국들만의 리그, 국가 이념 선전의 장, 엘리트 체육 잔치….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들이 비판을 받는 여러 지점이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회들이 매년 전 세계인들에게 웃음과 눈물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 역시도 분명한 사실이죠.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한 각종 우려를 안고도, 그렇게 2020 도쿄 올림픽은 시작했습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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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선 분한 눈물로 젖은 은메달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유도 남자 73kg 결승에서 일본의 에이스 오노 쇼헤이와 맞붙은 안창림은 다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패배했는데요. 안창림은 시상대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 눈물은, 1등을 못 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안창림이 26일 도쿄 올림픽 유도 남자 73kg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아제르바이잔의 루스탐 오루조프를 꺾고 일본 유도의 성지로 불리는 무도관에 태극기를 올렸습니다. 안창림은 울지 않았습니다. 3년 전 아시안게임보다 충분히 강해진 모습이었죠.
 
 
안창림은 동메달 획득 직후 자신의 정신적 기반이 재일동포 사회에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재일교포 3세, 할아버지가 정착한 교토에서 나고 자라 여섯 살 때부터 유도를 시작한 안창림은 차별의 역사 속에서 살았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닌 안창림이 일본 대표 무도인 유도를 해서만이 아닙니다. 한국인으로도, 일본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날을 안창림은 여러 번 고백해 왔습니다.
 
일본 츠쿠바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는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그 해에만 두 번의 대회에서 1등을 해낸 안창림을 향한 일본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 전일본선발유도체중별선수권대회 같은 큰 대회에는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인이 되지 않으면 그의 앞에는 성취보다 큰 좌절만이 기다릴 뿐이었죠.
 
 
하지만 안창림은 끝까지 한국인으로 남았습니다. 용인대학교에 편입,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국가대표 1군이 됐습니다. 세계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기 시작한 안창림은 2018 아시안 게임의 분패 이후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거머쥐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번 도쿄 올림픽 경기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극도로 길어진 경기 시간에 체력은 소진됐습니다. '숙적' 오노 쇼헤이가 8강까지 치른 경기 시간과 안창림을 비교하면 거의 세 배에 달합니다. 연장전에 연장전을 거치며 8강까지 올라온 그는 준결승에서 다시 골든스코어 승부 끝에 패배했죠. 그렇게 떨어진 체력 속 동메달 결정전을 치른 안창림은 경기 종료 7초를 남겨 둔 순간 업어치기로 절반을 따냈습니다.
 
 
동메달 수상자로서 취재진 앞에 선 안창림은 다른 말 대신 재일교포로서의 자부심을 먼저 꺼냈습니다. "재일교포라는 것이 어려운 입장이지만 재일교포 운동선수들 또는 어린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용기를 내 큰 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게 안창림의 소감입니다.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명을 걸고 국적을 지킨 것을 잊을 수 없다"라며 "일본 귀화를 거절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생애 첫 올림픽 메달까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들이 안창림을 괴롭혔을지언정 그 메달에 깃든 이야기가 진짜 올림픽 정신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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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안창림 인스타그램/올림픽 인스타그램
  • 영상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