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고? 노부부의 사랑 넘치는 무료 예식장 #신신예식장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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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고? 노부부의 사랑 넘치는 무료 예식장 #신신예식장

1967년에 문을 연 신신예식장. 개관 54년만에 그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 풍경을 담은 한승일 작가는 이렇게 회고한다.

ELLE BY ELLE 2021.05.19

 LIFE WITH LOVE

〈신신예식장〉, 클 펴냄.

〈신신예식장〉, 클 펴냄.

신신예식장과의 첫 만남 사진을 찍고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마산에 50년 넘게 무료로 운영해 온 예식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들은 이후 흥미를 느꼈다. 이후 예식장이 소개된 여러 방송을 찾아봤는데, 무료 예식과 금실 좋은 노부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더라.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예식장 공간 자체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였다. 방송에서 미처 주목하지 않은 매력적인 면이 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작은 호기심에서 책 작업이 시작됐다.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이 독특한 공간을 기록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신예식장의 웨딩홀은 단 하나뿐, 사진에세이로 엮어내기에는 또 공간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낙삼 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직업인’의 면모를 봤다. 말과 표정에 가득한 자부심, ‘주인 백낙삼’이라고 당당하게 쓰여진 명함. 자신의 일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 없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인의 역사는 사회와 동떨어질 수는 없다. 백낙삼 사장은 한국전쟁을 겪고 고도압축성장의 시기를 지나 IMF 때에도, 90세가 넘는 지금까지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노인이 지닌 경험과 지혜가 평가받지 못하는 지금, 91세가 된 지금까지도 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여전히 활동하는 한 어른의 이야기, 이 공간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는 하나의 추억 앨범 같은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직업인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백낙삼 사장의 필체

직업인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백낙삼 사장의 필체

마산에 사는 노부부를 2년 가까이 지켜보며 받은 개인적 영향은 내가 얼마나 노인 세대를 몰랐는지 깨달았다. 책 작업을 통해 얻은 뜻깊은 배움이기도 했다 . 은퇴했어도 한참 전에 했을 나이라고 생각했던 백낙삼 사장의 성실한 일과를 보며 진지하게 내 노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경험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달까.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이사는 방송에서 보여줬듯이 사이좋은 부부였다. ‘졸혼’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과 대비되는, “당신은 좀 쉬어요. 이건 내가 할게요”라는 말을 자주 건네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저렇게 마음 맞는 짝꿍과 사이좋게 늙어가는 노년도 멋지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 놀랍게도 방문할 때마다 거의 대부분 사진 촬영이나 결혼 예식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80대 부부의 결혼이다. 고령의 신랑은 청력이 약해 소리를 잘 듣지 못했는데,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이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웨딩 홀이 울리듯 고함을 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싸운다고 착각할 법한 광경. 고령의 네 사람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신신예식장의 유일한 웨딩 홀 ‘홍실’.

신신예식장의 유일한 웨딩 홀 ‘홍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 공간은 사무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땅콩카라멜’이 떠오른다. 호기심에 오가며 하나둘 까먹고 나면 다음 방문 때는 다시 채워져 있었다. 노부부가 정성스럽게 이 공간을 가꾸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또 하나는 신부 대기실. 한때는 정말 여느 예식장처럼 신부가 예식 전에 대기하며 손님을 맞는 장소였을 이 공간은 예식이 간소화되며 상징처럼 남은 공간이 됐는데, 그 공간 자체가 묘하게 신신예식장의 모습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무실 입구에 있는, 백낙삼 사장의 부재를 알리는 글귀도 무척 재미있다. 사람이 없어도 문을 열어놓는 예식장은 백낙삼 사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는 때를 대비해, 전화를 달라는 말과 함께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식장까지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흔히 시간을 끊은 5분, 10분 단위가 아니라 3분 혹은 8분만에 돌아오겠노라 써놓은 것에서, 백낙삼 사장의 성격이 짐작되지 않나?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어디 있든 금방 달려오겠노라는 문구가 따뜻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책에는 아무래도 백낙삼 주인의 이야기가 많지만 함께 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인, 최필순 이사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최필순 여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잘 퍼주는 분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나를 절대 빈 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는 분. 한번은 우연이었는지, 일부러 챙기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생선을 많이 사셨다며 크게 한 박스를 챙겨주신 적도 있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사진이 필요해 촬영 요청을 드리면, 늘 옷을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오시는 모습을 보며 ‘참 귀여우시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평소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말해도, 늙고 못나게 나오면 누가 책을 사겠냐며 꼭 꾸미고 하셨다. 무엇보다도,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분이다. 일흔이 넘은 신랑신부도 최필순 이사의 예쁘고 멋있다는 칭찬에 수줍게 입꼬리가 올라가던 모습은 취재를 하며 정말 흐뭇하게 지켜본 광경 중 하나다. 
 
최필순 여사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웨딩드레스 컬렉션

최필순 여사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웨딩드레스 컬렉션

흔히 비판받는 한국식 예식 문화에서 그럼에도 ‘예식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형식의 중요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1만4000쌍의 커플이 다녀갈 정도로 평생 반복해 온 일임에도 예식과 사진 촬영이 있을 때면 그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세심하게 준비하는 백낙삼 사장의 모습은 이게 그들에게 일생일대의 이벤트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진심 어린 마음이 오늘의 신신예식장을 있게 한 것 아닐까.   
 
책을 펴낸 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피드백은 무엇일까 출간된 책을 받자마자 백낙삼 사장으롭터 전화를 받았다. 책이 너무너무 예쁘게 잘 나왔다며 기뻐하고 고마워하시는 모습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문득 두 분이 신신예식장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셨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다. 혹시 세상을 떠나면, 예식장을 박물관처럼 만들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 맡겨 운영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래도 100살까지는 직접 운영할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모습. 그러면서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 자서전을 내는 게 바람이라고 했는데 이 책이 그런 결과물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닐까 싶어 기뻤다. 실존하는 개인의 삶을 관찰자의 눈으로 엮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의미 있게 사용되는 공간에 세월과 함께 쌓여가는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그것을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런 공간과 연계된 사람 이야기를 또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5년쯤 뒤에 신신예식장의 다음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진촬영 중인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여사. 결혼이라는 보편의 제도를 통해 한 시대를 살아낸 성실한 부부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사진촬영 중인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여사. 결혼이라는 보편의 제도를 통해 한 시대를 살아낸 성실한 부부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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