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WITH LOVE

〈신신예식장〉, 클 펴냄.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이 독특한 공간을 기록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신예식장의 웨딩홀은 단 하나뿐, 사진에세이로 엮어내기에는 또 공간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낙삼 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직업인’의 면모를 봤다. 말과 표정에 가득한 자부심, ‘주인 백낙삼’이라고 당당하게 쓰여진 명함. 자신의 일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본 적 없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인의 역사는 사회와 동떨어질 수는 없다. 백낙삼 사장은 한국전쟁을 겪고 고도압축성장의 시기를 지나 IMF 때에도, 90세가 넘는 지금까지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노인이 지닌 경험과 지혜가 평가받지 못하는 지금, 91세가 된 지금까지도 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여전히 활동하는 한 어른의 이야기, 이 공간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는 하나의 추억 앨범 같은 책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 때 들었다.

직업인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백낙삼 사장의 필체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 놀랍게도 방문할 때마다 거의 대부분 사진 촬영이나 결혼 예식이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80대 부부의 결혼이다. 고령의 신랑은 청력이 약해 소리를 잘 듣지 못했는데,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이사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웨딩 홀이 울리듯 고함을 치며 대화를 이어갔다.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싸운다고 착각할 법한 광경. 고령의 네 사람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신신예식장의 유일한 웨딩 홀 ‘홍실’.
사무실 입구에 있는, 백낙삼 사장의 부재를 알리는 글귀도 무척 재미있다. 사람이 없어도 문을 열어놓는 예식장은 백낙삼 사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는 때를 대비해, 전화를 달라는 말과 함께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식장까지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흔히 시간을 끊은 5분, 10분 단위가 아니라 3분 혹은 8분만에 돌아오겠노라 써놓은 것에서, 백낙삼 사장의 성격이 짐작되지 않나?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과 어디 있든 금방 달려오겠노라는 문구가 따뜻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책에는 아무래도 백낙삼 주인의 이야기가 많지만 함께 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부인, 최필순 이사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최필순 여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잘 퍼주는 분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나를 절대 빈 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는 분. 한번은 우연이었는지, 일부러 챙기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생선을 많이 사셨다며 크게 한 박스를 챙겨주신 적도 있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사진이 필요해 촬영 요청을 드리면, 늘 옷을 갈아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오시는 모습을 보며 ‘참 귀여우시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평소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말해도, 늙고 못나게 나오면 누가 책을 사겠냐며 꼭 꾸미고 하셨다. 무엇보다도,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분이다. 일흔이 넘은 신랑신부도 최필순 이사의 예쁘고 멋있다는 칭찬에 수줍게 입꼬리가 올라가던 모습은 취재를 하며 정말 흐뭇하게 지켜본 광경 중 하나다.

최필순 여사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웨딩드레스 컬렉션
책을 펴낸 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피드백은 무엇일까 출간된 책을 받자마자 백낙삼 사장으롭터 전화를 받았다. 책이 너무너무 예쁘게 잘 나왔다며 기뻐하고 고마워하시는 모습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문득 두 분이 신신예식장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셨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다. 혹시 세상을 떠나면, 예식장을 박물관처럼 만들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 맡겨 운영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래도 100살까지는 직접 운영할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모습. 그러면서 살아온 인생을 정리해 자서전을 내는 게 바람이라고 했는데 이 책이 그런 결과물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닐까 싶어 기뻤다. 실존하는 개인의 삶을 관찰자의 눈으로 엮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의미 있게 사용되는 공간에 세월과 함께 쌓여가는 역사의 의미를 발견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그것을 기록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런 공간과 연계된 사람 이야기를 또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5년쯤 뒤에 신신예식장의 다음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진촬영 중인 백낙삼 사장과 최필순 여사. 결혼이라는 보편의 제도를 통해 한 시대를 살아낸 성실한 부부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