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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상식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위 사진에서 윤여정 배우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여우주연상 수상자, 프란시스 맥도맨드입니다. 올해의 작품상을 차지한 〈노매드랜드〉의 주연 배우이자 제작자.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도 한 번 타기 어려운 오스카 트로피를 무려 세 번이나 수상하게 된 영광의 주인공.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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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대표작 〈파고〉.
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인 〈파고〉. 코엔 형제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이 작품에서 맥도맨드는 시골 마을의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을 연기했습니다. 피 튀기는 잔혹한 살인 사건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삭의 평범한 여성. 임신한 몸을 이끌고 눈밭을 헤치며 성실하게 사건을 추적해가는 그녀의 꽉 다문 입술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코엔 형제의 형 조엘 코엔은 맥도맨드의 인생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블러드 심플〉(1984)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영화가 개봉한 해에 바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입양한 아들 페드로와 함께 현재까지 단란한 가족을 유지하고 있죠.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관계의 비결로 “우리는 늘 서로 이야기할 새로운 것들이 많다”라고 밝혔던 맥도맨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바탕으로 한 조엘 코엔 감독의 신작에 그녀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오랜만의 부부 협업이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제작이 중단된 상황. 프로젝트가 다시 진행된다면 우리는 맥도맨드가 연기하는 레이디 맥베스를 보게 됩니다. 야호!

조엘 코엔 감독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강인하고 고독한 여인의 초상
」2014년 HBO에서 방영된 4부작 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는 원작 소설을 읽은 맥도맨드가 직접 판권을 사고 작가와 감독을 고용해 제작까지 맡은 작품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은퇴한 수학선생인 괴팍한 염세주의자 ‘올리브’를 탁월하게 그려내며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욱 ‘독한’ 역할로 변신했으니 바로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 딸을 잃은 아픔과 분노에 휩싸여 세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금세 터질 듯한 시한폭탄 같은 캐릭터를 맥도맨드 아닌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요?

HBO 〈올리브 키터리지〉.

영화 〈쓰리 빌보드〉.

영화 〈노매드랜드〉 촬영장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트로피 여왕의 하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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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 소감 중인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2018년에 열린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역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연출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그녀는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여성 후보들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 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와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중략) 오늘 밤 두 단어만 남기고 가겠습니다. 인클루전 라이더.” (*인클루전 라이더는 우리말로 ‘포용 특약’을 뜻한다. 영화인들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 다양성을 반영해 배우나 제작진을 구성하도록 요구하는 것.)
〈파고〉와 〈쓰리 빌보드〉에 이어 〈노매드랜드〉로 세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도전하는 올해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모아졌던 차.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며 두 차례 무대에 오른 그녀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작품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그녀는 “부디 우리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주세요. 그리고 머지않은 시일 내, 사람들을 데리고 극장으로 가서,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오늘밤 소개된 작품들을 봐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우리의 늑대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라며 큰 소리로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냈지요. 이는 올해 세상을 떠난 〈노매드랜드〉의 음향 스태프 마이클 울프 스나이더를 위한 추모의 뜻을 담은 세레모니.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또한 짧고 굵었습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칼이 나의 말을 대신할 테니까”라는 〈멕베스〉 속 한 구절을 인용한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칼이 우리의 일이란 걸 압니다. 전 일을 사랑합니다. 그걸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은발의 배우들이 주인공이 된 올해의 아카데미. 윤여정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두 사람 모두 어제의 환호를 뒤로 하고 ‘쿨하게’ 다음 대본을 살펴보겠지요. 뚜벅뚜벅 앞서 걸어가는 용감하고 솔직한 멋쟁이 여성들의 활약에 다시 한번 경배를!
*찬양하고 애정하고 소문 내고 싶은 별의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요주의 여성’은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