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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존재감, 프란시스 맥도맨드_요주의 여성 #12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 생애 3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

BY양윤경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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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 모두 기다리고 기대했던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 우아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특유의 언변술로 시상식을 사로잡은 윤여정 배우의 빛나는 순간은 아무리 곱씹어도 흥분이 가시지 않네요.  
 
이번 시상식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위 사진에서 윤여정 배우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 여우주연상 수상자, 프란시스 맥도맨드입니다. 올해의 작품상을 차지한 〈노매드랜드〉의 주연 배우이자 제작자. 글렌 클로즈 같은 대배우도 한 번 타기 어려운 오스카 트로피를 무려 세 번이나 수상하게 된 영광의 주인공.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영화 〈노매드랜드〉를 본 사람이라면, 한동안 눈을 감고도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버석한 얼굴과 고독한 눈동자가 떠오르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영화는 소리 높여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애써 설파하지 않습니다. 광활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노매드’들의 삶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지만, 극장을 걸어 나온 관객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과 질문이 떠오릅니다. 내가 맞게 살고 있는 걸까? 이 세상은 올바르게 움직이고 있나?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영화 〈노매드랜드〉의 프란시스 맥도맨드.

마음을 뒤흔드는 숙연한 감동을 선사한 프란시스 맥도맨드. 주름진 얼굴과 분위기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녀는 노년에 들어선 나이에 거듭 인생작을 갱신하며 ‘위대한 배우’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경이로운 배우이자 이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지닌 멘토, 프란시스 맥도맨드에 관하여.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  

코엔 형제의 대표작 〈파고〉.

코엔 형제의 대표작 〈파고〉.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얘기할 때 코엔 형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일대 연극 대학원을 졸업한 맥도맨드는 스크린 데뷔작 〈블러디 심플〉을 시작으로 〈아리조나 유괴 사건〉 〈밀러스 크로싱〉 〈바톤 핑크〉 등 코엔 형제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며 이력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1996년 화제의 작품 〈파고〉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프란시스 맥도맨드에게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인 〈파고〉. 코엔 형제의 천재성이 번득이는 이 작품에서 맥도맨드는 시골 마을의 경찰서장 ‘마지 건더슨’을 연기했습니다. 피 튀기는 잔혹한 살인 사건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삭의 평범한 여성. 임신한 몸을 이끌고 눈밭을 헤치며 성실하게 사건을 추적해가는 그녀의 꽉 다문 입술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코엔 형제의 형 조엘 코엔은 맥도맨드의 인생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블러드 심플〉(1984)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영화가 개봉한 해에 바로 결혼식을 올렸고, 이후 입양한 아들 페드로와 함께 현재까지 단란한 가족을 유지하고 있죠.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관계의 비결로 “우리는 늘 서로 이야기할 새로운 것들이 많다”라고 밝혔던 맥도맨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바탕으로 한 조엘 코엔 감독의 신작에 그녀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오랜만의 부부 협업이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제작이 중단된 상황. 프로젝트가 다시 진행된다면 우리는 맥도맨드가 연기하는 레이디 맥베스를 보게 됩니다. 야호!  

조엘 코엔 감독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조엘 코엔 감독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강인하고 고독한 여인의 초상  

〈파고〉 이후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독자적인 커리어를 쌓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연륜과 내공이 더해진 맥도맨드는 스크린 위에서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맨 얼굴의 강인한 여성들을 탄생시키며. 
2014년 HBO에서 방영된 4부작 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는 원작 소설을 읽은 맥도맨드가 직접 판권을 사고 작가와 감독을 고용해 제작까지 맡은 작품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는 은퇴한 수학선생인 괴팍한 염세주의자 ‘올리브’를 탁월하게 그려내며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더욱 ‘독한’ 역할로 변신했으니 바로 〈쓰리 빌보드〉의 ‘밀드레드’. 딸을 잃은 아픔과 분노에 휩싸여 세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금세 터질 듯한 시한폭탄 같은 캐릭터를 맥도맨드 아닌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요?  
HBO 〈올리브 키터리지〉.

HBO 〈올리브 키터리지〉.

영화 〈쓰리 빌보드〉.

영화 〈쓰리 빌보드〉.

〈노매드랜드〉에서 맥도맨드는 경이로운 연기력으로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갱신합니다. 동명의 논픽션을 읽고 직접 제작에 나선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길 위에 오른 60대 여성 ‘펀’의 삶을 밀도 높게 그려냈습니다. 무너진 삶의 터전을 떠나 작은 밴을 타고 다니며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펀’은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을 거부하며 “집이 없다고 해서 홈리스인 건 아니다”라고 꼿꼿하게 말합니다. 촬영 기간동안 실제로 노매드처럼 생활하며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는 맥도맨드. 빈곤한 처지에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펀과 동료 노매드들(거의 모두 실제 인물이 연기한)의 모습은 광활한 자연 풍경과 겹쳐지며 숭고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촬영장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영화 〈노매드랜드〉 촬영장에서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트로피 여왕의 하울링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상복’이 많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토니상, 에미상, 아카데미, BAFTA 등 한번 타기도 어려운 이름난 시상식을 모두 석권한 트로피 컬렉터. 장군이 행진하듯 씩씩하게 걸어 나와 트로피를 손에 든 그녀의 힘 있고 이색적인 수상 소감은 늘 화제를 일으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 소감 중인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 소감 중인 프란시스 맥도맨드. ⓒGetty Images

 
2018년에 열린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역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연출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그녀는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여성 후보들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봐 주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와 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중략) 오늘 밤 두 단어만 남기고 가겠습니다. 인클루전 라이더.” (*인클루전 라이더는 우리말로 ‘포용 특약’을 뜻한다. 영화인들이 계약서를 작성할 때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 다양성을 반영해 배우나 제작진을 구성하도록 요구하는 것.)
〈파고〉와 〈쓰리 빌보드〉에 이어 〈노매드랜드〉로 세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도전하는 올해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이 모아졌던 차.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며 두 차례 무대에 오른 그녀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작품상을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그녀는 “부디 우리 영화를 커다란 스크린으로 봐주세요. 그리고 머지않은 시일 내, 사람들을 데리고 극장으로 가서,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고 오늘밤 소개된 작품들을 봐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우리의 늑대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라며 큰 소리로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냈지요. 이는 올해 세상을 떠난 〈노매드랜드〉의 음향 스태프 마이클 울프 스나이더를 위한 추모의 뜻을 담은 세레모니.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또한 짧고 굵었습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칼이 나의 말을 대신할 테니까”라는 〈멕베스〉 속 한 구절을 인용한 그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칼이 우리의 일이란 걸 압니다. 전 일을 사랑합니다. 그걸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은발의 배우들이 주인공이 된 올해의 아카데미. 윤여정과 프란시스 맥도맨드, 두 사람 모두 어제의 환호를 뒤로 하고 ‘쿨하게’ 다음 대본을 살펴보겠지요. 뚜벅뚜벅 앞서 걸어가는 용감하고 솔직한 멋쟁이 여성들의 활약에 다시 한번 경배를!  
 
*찬양하고 애정하고 소문 내고 싶은 별의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요주의 여성’은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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