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자라면 저런 여자랑 사랑에 빠졌을 꺼야. 〈루비 스팍스〉에서 조 카잔을 처음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사람 누구지?’ 하고 검색하게 만드는 이름.
어느 작품에서든, 어떤 파트너와 함께 라도, 자기만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현실적인 연기로 공감을 일으키는 배우 조 카잔. 〈루비 스팍스〉 〈왓 이프〉 〈빅 식〉 등 조 카잔의 필모그래피에 담긴 영화들은 일반적인 할리우드 로맨스와는 조금 다릅니다.
평범하고 단점이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섬세하고 내밀한 이야기. 마음이 허전한 주말 밤에 보기에 딱 좋은 온기와 재미를 지녔지요. 주이 디샤넬 이후 원피스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여주인공은 없을 거예요. 싱그러운 미소를 품은 동그란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질릴 것 같지 않죠.
알고 보면 조 카잔은 할리우드의 뼈대 굵은 가문의 ‘엄친딸’ 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덴의 동쪽〉 〈초원의 빛〉 같은 작품을 남긴 전설적인 감독 엘리아 카잔의 손녀. 아버지 니콜라스 카잔 역시 〈바이센테니얼 맨〉과 〈마틸다〉를 쓴 유명 극작가이며, 어머니 로빈 스위코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각본가이자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여동생 마야 카잔 역시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예일대를 졸업한 조 카잔은 스스로 단순한 ‘금수저’가 아니라 재능 있는 아티스트란 걸 증명해 보였죠.
브로드웨이를 거쳐 영화계에 진출한 조 카잔은 연기 뿐 아니라 극작가로서 커리어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대 중반에 이미 본인이 쓴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루비 스팍스〉에서는 출연과 함께 직접 각본을 집필했죠. 천재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드림 걸’이 현실로 튀어나와 ‘내 여자친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 연애의 차이를 그린, 이토록 재치 있고 신선하며 독창적인 러브 스토리라니!
조 카잔이 각본을 쓰고 연인 폴 다노와 함께 출연한 〈루비 스팍스〉.
조 카잔이 각본을 쓰고 연인 폴 다노와 함께 출연한 〈루비 스팍스〉.
조 카잔에게는 닮은 감성을 지닌 인생의 동반자이자 예술적 파트너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개성 있는 배우 폴 다노. 〈루비 스팍스〉에 동반 출연한 당시 5년차 연인 사이였던 둘은 현재까지 (결혼식 없이) 함께 하며 딸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연애 초기, 섭식 장애에서 회복하는 중이었던 조 카잔에게 폴 다노가 큰 힘이 되었다고. 두 사람은 소란한 할리우드에서 신기하리만큼 사생활 노출이 없는 커플입니다. SNS도 거의 하지 않는 이 비밀스러운 듀오가 함께 모습을 드러낼 때는 오직 작품을 통해서. 2018년 둘이 함께 각본을 쓴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 〈와일드라이프〉는 선댄스 영화제,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배우로 복귀한 조 카잔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찾아왔습니다.
4월 7일 국내 개봉한 〈타인의 친절 The Kindness of Strangers〉. 〈언 애듀케이션〉 〈원 데이〉 등 섬세한 연출력으로 소문난 덴마크 출신의 여성 감독 론 쉐르픽의 신작이기도 하죠.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번 영화에서 조 카잔은 두 아이를 지닌 엄마로 출연합니다.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거리를 헤매는 궁핍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 카잔의 얼굴에는 순진한 희망의 기운이 돕니다. 덕분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세 모자의 방황기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겪는 외로운 도시인들이 타인과 나누는 관심과 친절을 통해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 여느 러브 스토리만큼 달달하진 않지만, 풍경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는 이 봄에 어울리는 따스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조 카잔에게 반하고 맙니다.
뻔한 사랑 이야기, 자극적인 블록버스터에 질린 이들에게 조 카잔은 ‘믿고 보는’ 이름이 되기 충분합니다. 폴 다노 & 조 카잔 듀오의 새로운 작품, 혹은 조 카잔의 연출작도 언젠가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기꺼이 극장에 달려갈 겁니다.
*찬양하고 애정하고 소문 내고 싶은 별의별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 ‘요주의 여성’은 매주 금요일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