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사회 학폭' 직장 내 괴롭힘, 괜찮아요?

성인이 돼서도 집단 내 괴롭힘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BYELLE2021.04.12
 

DO YOU FEEL GUILTY?

스마트폰 화면에도, 일상 대화에도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가해 사실이 나열되고 각종 공방이 장문의 글로, 댓글로, 법적 용어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완전히 남일처럼 팔짱 끼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운 좋게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났는가 했더니 과도한 업무나 부당 대우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성인이 돼서도 집단 내의 고의적 괴롭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엄청난 무력감과 좌절이다. 다행히도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도입했다. 긍정적이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님은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를 비롯해 각종 게시판의 고발 글, 사회 뉴스 면을 봐도 알 수 있다.
 
기업노무사로 10년 가까이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직장 내 괴롭힘 전문 노무사로 활약 중인 김소영 노무사는 ‘사회생활’이라는 단어 아래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게 과연, 정당화할 일인지 감수성의 변화가 필요해요. 한국은 직장 내 위계 서열이 강하기 때문에 괴롭힘을 괴롭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합니다.  ‘괴롭겠지만 본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죠. 모든 사안에 동일한 시각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상식의 기준은 계속 달라져야 합니다. 무분별한 야근이나 음주를 강권하는 직장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한 것처럼요.” 그의 책 〈일터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을 당신에게〉는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인격권’의 개념을 들어 강조한다. ‘돈 주니까 더러워도 참아야지’ ‘회사가 즐거우면 돈 내고 다녀야지’ 같은 말이 일상 언어로 흔히 쓰이는 것 또한 일터에서 노동과 인격이 분리되지 않는 것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증거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서 다른 근로자에게 가하는 신체 및 정신적 고통,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단체업무 메일 발송 시 특정인만 수신 대상에서 제외하는 ‘치사한’ 방법부터, 눈 밖에 난 직원을 숙련되지 않은 고위험 업무에 배치하는 인사권과 징계권을 무기로 삼은 형태, 악랄한 ‘태움’까지. 다양한 괴롭힘 양상 중 가장 많은 사례는 단연 폭언이다. 상사의 사적 잡무를 시키는 일도 잦다. 모두 피해자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다. “특히 개인적인 일을 부탁하는 일은 관계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일 중 하나입니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자신의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카풀’은 ‘아는 사이에 차 좀 태워주면 어떻냐’는 거죠. 하지만 도를 넘는 상사의 상습적 ‘카풀’ 요구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관계적 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회사는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이에요. 특히 상사들의 의식 변화가 요구되는 부분입니다.” 김소영 노무사의 말이다.  
피해자는 종종 무능력자나 사회부적응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임상심리 전문가로 기업과 직원을 위한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노주선 박사는 책 〈감정노동〉에서, 피해자에게서 나타나는 실제적인 피해 정도가 문제의 심각성 여부를 결정해야 함을 명시한다. 내가 때려서 상대방의 팔이 부러졌을 때, 그 사람의 뼈가 원래 약했는지 튼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 ‘무능해서 피해를 끼친다’는 비난 또한 개인의 성향에 근거한 판단일 뿐이다. 리더와 다른 동료가 가진 기대치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법은 없으며, 설령 그렇다 해도 인사평가제도 등 객관적 사실을 통해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그렇게 일이 힘들면 그만두지 그래’ 같은 말은 어떤가. 특히 상대적으로 도전할 기회가 많거나, 생계 부양의 의무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젊은 층에게 건네는 이 말은 김소영 노무사에 의하면 ‘매우 잘못된 조언’이다. “이직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는 경력직 사원은 ‘꼭 이 회사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지만 사회초년생들은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없어요. 취업전선에 다시 뛰어들어 그 끔찍한 과정을 다시 해내야 한다는 공포가 엄청납니다. 특히 원하던 직장에 어렵게 들어갔다면 내가 생각했던 제일 좋은 집단도 하물며 이런데, 다른 곳은 어떨지  좌절할 수밖에요.” 주 5회, 하루 절반을 보내야 하는 직장이 공포와 좌절의 공간이라면, 그 절박함은 어떨까. 나의 동료, 우리 중 한 명이 이런  심리적 고통에 놓여 있다면 우리도 그 문제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중간 관리자이거나 피해자의 직속 상사라면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상사가 보기에도 괴롭힘이 명백하다면 문제 증명 요건을 보다 쉽게 충족할 수 있죠. 업무 배제 같은 2차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지고요.” 김소영 노무사는 말한다. 직접 나서는 것이 어려운 위치라면 자신이 목격한 것을 피해자에게 메신저 등 문자로 남겨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괜찮아요? 방금 00 전무가 00라고 하던데” “물건을 던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던데 제가 들은 게 맞나요?” 같이 정황이 설명돼 있고, 필요 시 제출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개인이 모여 조직이 된 만큼, 조직 내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개인은 변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 이런 행동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폭언하는 리더들도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조직이 폭언을 묵인하는 순간 리더의 몸에 배이게 됩니다. 농담에서 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긴 휴가를 쓴 직원에게 ‘너 휴가 간 동안 책상 빼 버린다’ 같은 말을 한다면 당장은 심각한 발언이 아님을 알더라도 팀 내 누군가 “요즘은 그렇게 말하면 큰일나요” “우리 팀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같이 제동을 거는 가벼운 한 마디를 던지고 동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으로도 ‘싹’을 없앨 수 있다. 김소영 노무사는 무엇보다 조직원들의 의식과 인격 감수성이 달라져야 함을 강조한다. 혹시 이런 사례가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자신의 인격 감수성을 점검해 볼 것.
 
물론 동료들에게는 나서서 도와줄 의무는 없다. 각자의 직책에 따라 발언권도 크게 차이가 난다. 정식으로 건의할 수 있는 ‘창구(Channel)’가 필요한 이유다. 노동조합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거나 인사 팀과 감사 팀, 고충처리위원 제도 등을 활용할 수도 있다. “사내에 창구가 없어 일터 내에서 괴롭힘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면 피해자는 고용노동부를 통해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하게 됩니다. 심각성을 인정받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 회사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조치를 의무화하는 등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도 커져 버리죠. 창구를 만들어두는 것이 사측에도 좋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전문가를 찾는 일입니다.” 김소영 노무사는 조직 문화 개선에 희망적이다. 국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처벌 규정을 통과시켰기 때문. 
 
이제 신고를 받고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을 경우 혹은 가해 근로자를 징계하지 않거나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경우, 각각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처벌 조항이 생긴 거죠. 앞으로 기업에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적극적인 조사와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소영 노무사
 
직장 내 괴롭힘은 사회 이슈인 동시에 직원들의 기본 인권을 넘어, 생명권까지도 연결되는 문제다. 그러니 기억해 두길. 법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며, 일터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주장해야만 법이 규정한 우리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나 차별과 따돌림을 당할 수 있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때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서로의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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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일러스트레이터 김다예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