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MA 벙커의 입구.
2017년 개관해 그간 실험적인 전시가 열린 세마 벙커에서 얼마 전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프로그램으로 〈너머의 여정(The Journey of Eternity)〉이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컬렉티브 더 그레잇 커미션(The Great Commission)이 그간 선보여온 라이브 퍼포먼스 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난 6월 7차례의 퍼포먼스를 성황리에 마친 후 그 흔적이 스민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회색 블라인드를 이용해 구획된 공간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불어넣는 조명을 받으며 벽면과 바닥에 자유로이 놓인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설치, 회화, 조각, 음악, 조명 디자인까지 혼성 장르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재해석한 영원, 시간성을 말하고 있다.

배준현, 'discoverer, 모험가', 'explorer, 탐험가', 'finder, 발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배준현 작가의 ‘discoverer, 모험가’, ‘explorer, 탐험가’, ‘finder, 발굴가’ 연작.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실린 산 사진을 오려서 허구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콜라주 작품을 대형 프린트로 복제해 벽면 전체에 벽지처럼 발랐다. 작가가 상정한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허구이며 이 허구가 대형 복제된 풍경은 실재와 허구에 대한 흥미로운 혼선을 선사한다. 지인의 죽음을 경험한 곽이브 작가는 한석봉의 시구가 적힌 보급형 병풍과 상여를 형상화한 패브릭 설치 작품으로 인생의 유한함을 말한다. ‘똥파리’ ‘우매’ 같은 제목을 지닌 황수연 작가의 종이 조각작품은 인간의 손, 뼈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점차 추상적으로 변해가는 니콜라스 펠처의 영상 작품 가운데 엉뚱하게 놓여있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상상의 동물 같은 자태로. 아티스트로서 커리어의 빛나는 시작점에 놓인 8명의 젊은 작가들은 개성 넘치는 작품들 속에 시간성에 대한 의미를 겹겹이 묻어 놓았다.



수십 대의 버스가 바삐 스치는 12차선 도로 아래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세마 벙커, 영원을 말하기에 이보다 환상적인 공간이 있을까. 현실과 허구가 동시에 공존하는 조형적 상상의 공간을 마음껏 휘젓다 사뿐히 지상으로 올라오시길.
전시 기간 2020년 6월 2일 ~ 9월 13일
장소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지하 76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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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한 전시를 소개하는 ‘인싸전시’는 매주 목요일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