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의 주도, 토리노 진심으로, 나는 한국인들이 이탈리아 관광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느 정도 측은한 마음을 동반하곤 한다. 왜 아니겠는가. 고작 로마와 피렌체,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돌고 이탈리아를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로마에서 협잡꾼에 가까운 엉터리 식당 사장에게 쓰레기 같은 음식에 바가지를 쓰고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의 이미테이션 다비드 동상을 본 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더러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올리브유를 사거나 노천의 가죽시장에서 동유럽산 가방 하나를 산다면 그나마 여행자다운 태도를 지니셨다고 하겠다. 물론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현지인과 뒤섞여 바에서 크루아상과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신다면 일단 당신을 ‘여행가’라고 칭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멀리 시칠리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에 들어가 볼 생각을 안 하는 건 심히 유감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토리노는 기억해도, 그 도시를 둘러싼 피에몬테를 아는 이들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역에서 요리학교를 다녔는데 토리노가 알려지기 전만해도 설명하기 참 난감했다. 요새는 간단하게 “토리노 근처에 있는 학교예요”라고 말하지만(그렇지만 무려 한 시간이나 떨어져 있다), 그 전에는 “이탈리아 북부예요”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피에몬테는 밀라노와 서쪽으로 붙어 있는 주이며, 프랑스와 접경을 이룬다. 예상하듯이 부유하고 세련됐으며, 여유가 넘치면서 어느 정도 까칠한(부자들이 그러듯이) 정서를 보여준다. 피에몬테에서는 ‘이탈리아적으로’ 호들갑을 떠는 이들도 없으며, 야바위나 모멸감 같은 말들을 아주 싫어한다. 자존심과 품위를 삶의 지향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사는 곳 같다. 물론 대도시 토리노에서는 여전히 한 시간에 두 대쯤의 자동차가 도난당하고, 소매치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쨌든 토리노가 대도시라는 걸 말해주는 지표일 뿐이다. 피에몬테(Piemonte)는 ‘산의 발’이라는 뜻이다. 산이란 물론 알프스다. 주도인 토리노에 가면 북쪽으로 장엄하게 펼쳐진 알프스의 준봉들을 볼 수 있다. 온난화든 뭐든 머리 꼭대기에 얼음과 눈을 이고 있는 이 산들을 멀리서 보고 있노라면, 그저 한숨이 나온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토리노에 발을 들였던 오래 전의 기억이 난다. 나는 한심한 여행자였는데, 이 도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그저 요리학교에서 한 시간이면 닿는 곳에 있는 대도시였다. 건물들이 우람하고, 도시가 질서정연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토리노는 이탈리아가 통일되었을 때(1861년), 첫 번째 수도였다. 그 전에는 19세기 후반 중부 유럽의 강자였던 사보이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사보이라면 우선 호텔을 떠올리게 되는데, 맞다. 그 사보이(Savoy)와 철자가 같다. 나는 그 호텔 체인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유럽에서 사보이 호텔은 최고급 호텔의 대명사다. ‘사보이=럭셔리와 전통’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과문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사보이왕국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리노에 가면 그 우아한 도시의 품격을 조금은 알게 된다. 나 같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라도 말이다. 토리노는 우선 자동차 피아트를 생각나게 한다. 피아트가 바로 이 도시에 있다. 그렇다고 울산 같은 자동차 공업도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피아트는 도시 외곽에 있고, 토리노는 공업도시라고 불리기를 거부하는 조금은 거만하리만치 아름답고 콧대 높은 도시니까. 여담인데, 피아트에 어떤 거창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뜻을 알고 허탈하게 웃었다. 피아트(FIAT)는 그냥 ‘이탈리아 자동차 공업 회사’의 준말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우리가 아는 구치니 돌체 앤 가바나, 페라가모와 제냐도 그냥 창업자의 성씨일 뿐 아니던가. 그런데 한국에는 왜 이리도 성씨를 붙인 멋진 회사 이름이 적은지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다. 과거에 그런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두산그룹의 전신이 박승직상점이었다는데(물론 창업자다), 나는 그렇게 신뢰감 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 이름이 왜 지금도 쓰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기 시작한 한국의 현대 정치역사 때문은 아닐까, 혼자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바롤로 그리고 트러플 토리노에서 지중해를 굽어보며 중남부 방향으로 쭉 내려오면 피에몬테의 보석, 알바 지역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알바라는 도시 이름보다 이 일대 근처를 통틀어서 오랜 지명인 랑게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알바가 왜 보석이냐고 묻는다면, 얘기할 게 많지만, 우선 기막힌 드라이브 코스다(물론 이건 관광객의 처지에서나 그럴 것이다). 토스카나의 피렌체-시에나 사이의 아름다운 ‘와인 로드’와 맞먹는 기막힌 경치를 보여준다. 낮고 구불구불한 구릉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푸르거나 농익어 갈색을 띠는 포도밭과 점점이 박힌 농가의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요리학교 스승이었던 피에트로는 이 모습을 보여주며 내게 자랑스럽게 외쳤다. “케 벨 파노라마!” 그러니까, ‘오메 멋있는 거!’라는 상찬이었다. 이 구릉의 포도밭은 세계 최고의 와인인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나온다. 네비올로라는 품종 100퍼센트를 써서 만드는 이 와인은 힘차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만약 당신이 이탈리아 바깥에서 피에몬테 사람을 만났다면 바롤로 얘기를 꺼내보시라. 그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며 으쓱거리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도 수입되는 와인이다. 적어도 레스토랑에서라면 15만원은 내야 한 병을 맛볼 수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와인의 전부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에게 충격을 던져줄 것이다. 피에몬테의 구릉은 바롤로를 만들어내고, 깊은 산은 천하의 걸작 버섯인 트러플을 잉태한다. 한국에서도 미식좀 하는 분들은 알고 있는 그것이다. 흔히 세계 3대 식재료로 푸아그라와 카비아, 트러플을 꼽는다. 기실, 푸아그라는 여기에 끼는 게 좀 그렇다. 값도 싼 편이고, 기름기가 가득한 간 한 조각의 맛이라고 해봐야 예상하는 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러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트러플은 우리말로 송로버섯이라고 번역되는데, 썩 적확한 것 같지는 않다. 송로(松露)란 소나무 밑에서 이슬을 맞으며 자란다는 뜻이렸다. 그러나 피에몬테의 산에서 자라는 송로는 주로 떡갈나무나 개암나무(헤이즐넛) 숲에서 많이 발견되는 까닭이다. 송이가 귀한 건 재배가 되지 않기 때문인데, 트러플 역시 그렇다. 그래서 트러플이 나는 곳은 송이처럼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주는’ 비밀 장소다. 그까짓 버섯이 비싸고 귀해봤자 라고 하지 마시라. 트러플은 화이트와 블랙 두 가지가 있는데 화이트 중에서 큰 것은 킬로그램에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 조지 클루니가 대리인을 내세워 최고가품을 사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0월이 되면 알바의 트러플 시장은 흥청대기 시작한다. 전 세계의 미식가들이 오직 화이트 트러플을 맛보러 이 작은 도시로 몰려온다. 식당들은 무조건(정말이다. 마치 한국 서해안의 어촌에서 주꾸미나 굴 새우 축제를 하면 모든 요리가 그런 재료로만 이루어져 있듯이) 트러플 요리를 낸다. 15유로짜리 파스타에 트러플을 뿌려 30유로가 된다. 물론 그 만한 값을 치를 가치가 있다. 트러플은 요리 재료라기보다 일종의 향신료다. 기존의 요리에 이 버섯을 살살 갈거나 얇게 슬라이스해서 얹는 것만으로도 천하의 일미가 된다. 마치 지극히 평범한 달걀 요리에 카비아가 올라가면 초고가 요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냥 치즈에 버무린 탈리아텔레에 트러플 한 조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명품 요리가 된다. 이 시절의 피에몬테 요리사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충 만든 요리에 오직 트러플을 올리면 된다는 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트러플의 향은 모든 엉터리 요리를 감싸 안을 만큼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게 어떤 맛인데 하고 캐묻지 마시라. 아아, 내가 어떻게 트러플을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그저 김병만식으로 말하면 “먹어 봤어요? 안 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다. 누구는 송이버섯 같은 맛이냐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뭐랄까, 이건 동물의 생식선에서 나오는 냄새 같다. 사향노루의 사향 주머니가 이런 냄새일까, 나 혼자 추측해볼 뿐이다. 피에몬테제(piemontese, 피에몬테 사람)인 내 친구 마테오의 표현에 의하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맛’이란다. 입에 넣으면 그 놀라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 마치 겸손해지는 것 같다고 해서 그렇게 묘사한 모양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트러플을 파는 식당이 있고, 트러플 향을 첨가한 오일도 고급 외국 식품점이나 인터넷에서 살 수 있으니 한번 도전해보시도록. 다만 그것이 피에몬테의 맛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트러플 향 오일은 절대 ‘겸손해지는’ 맛은 아니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