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규슈에 가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셰프 박찬일이 기타규슈 가쿠우치에서 경험한 한 잔의 추억::기타규슈,가쿠우치,일본,여행,박찬일,후쿠오카,규슈,엘르,elle.co.kr:: | 기타규슈,가쿠우치,일본,여행,박찬일

바에 앉아서 셰프가 만들어주는 작은 요리들을 먹는 재미가 일본 미식 기행의 핵심이다.  기타규슈는 노동자들이 한 잔 하던 상가거리를 이르는 ‘시타마치’의 소박한 멋이 있다.  다치노미야 중에서도 ‘가쿠우치’라고 부르는 주류판매상에서 먹는 잔술이 이 도시의 매력 중의 하나다. 물론 서서 마시는 선술집이다.  기타규슈에는 일본의 유명한 식당사이트 ‘타베로그’에서 회전스시로 1등을 한 ‘교스시’가 있다. 스시의 질이 좋다.  교스시의 회전초밥. 값에 비해 아주 질 좋은 ‘네타(고명)’를 쓴다. 기타규슈는 물가가 싼 편이어서 여행하기 좋다.  가쿠우치에서는 즉석 안주를 판다. 캔 제품이 흔하다. 그냥 뜯어서 먹기도 하고, 더러 주인이 가볍게 요리를 해 주기도 한다.  기타규슈의 명물 중의 하나인 철판만두, 보통 2차로 해장을 할 때 맥주에 곁들여 먹는다.  기타규슈의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탄가 시장. 1백 년 전통을 자랑하며 소박한 맛이 있다.  규슈는 비행편이 많고 가까워 한국인의 여행이 잦다.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오이타, 가고시마 등지를 많이 찾는다. 제주 올레가 수출돼 걷기 코스가 잘 발달해 있고 무엇보다 미식의 고장이다. <미쉐린 가이드>가 후쿠오카와 사가현 편을 2014년에 발매하기도 했다. 별 셋과 별 둘을 다수 배출한, 그렇지만 서민적인 음식이 더 알찬 지역이다. 후쿠오카의 돈코츠 라멘과 교자, 가고시마의 흑돼지, 나가사키 짬뽕은 명물에 속한다. 다채로운 해물 요리도 인기 있다. 여름에 후쿠오카 일대에서 파는 살아 있는 한치회는 오직 이것만을 위해 비행기를 탈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 규슈에 속한 기타규슈는 아는 사람만 아는 도시다. 아직 한국인의 발걸음이 드문데 공업지대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서다. 실제로 그랬다. 굴뚝이 거대했다. 그러나 산업구조 조정으로 날이 갈수록 공업지대라고 부르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때 야하타 제철소를 중심으로 대형 공업단지가 조성돼 일본의 굴뚝을 상징했던 지역으로 일본 4대 공업지대에 속했다. 당연히 토박이보다 외지 노동자들이 도시를 이뤘다(그 시절의 흥성한 3교대 근무!). 시내는 늘 노동자들로 붐볐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일했다. 그 뜨거운 기운이 도시를 감쌌다. 역동적이다. 사람들은 시원시원하고 왁자했다.‘B’급 구루메란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번듯하진 않지만 맛이 살아 있는 미식을 뜻한다. 나는 비급(秘級) 구루메라고 부른다.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는, 그리하여 맛의 본질에 다가서게 하는 요리가 아닌가 싶어서다. 그 B급 구루메와 가쿠우치가 바로 기타규슈의 맛이다. 일본을 다니다 보면 한국과 다른 음주 문화를 여럿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그중에서 다치노미를 최고로 꼽는다. 서서 먹는다는 의미다. 흔히 한국의 술집에서 기다란 바를 ‘다치’라는 일본어로 부르는데 원래 이것이 서서 먹는 스탠드 바를 뜻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사다오 쇼지란 일본의 유명한 음식 평론가는 다치노미를 ‘서부 시대의 바’라고 정의했다. 맞다. 우리가 서부영화에서 보던 바의 풍경. 일본은 거품 경기가 꺼지면서 다치노미가 크게 늘었다. 1989년에 헤이세이 연호가 시작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불황은 가벼운 술집의 번성을 불렀다(1999년 <요미우리> 신문은 다치노미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이제 다치노미는 경기와 관계 없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특히 30~40대의 최고 인기 술집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타규슈에서 만나는 다치노미는 색다르다. 바로 가쿠우치(角打ち)다. 다치노미는 많이들 들어봤지만 가쿠우치라니? 일본인도 둘의 차이를 잘 모른다. 따져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다치노미야는 서서 먹는 집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반면 가쿠우치는 다치노미야 중에서도 ‘주류 판매점’을 뜻한다. 전주의 ‘가맥’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주류 판매점이 본업이지만 선술집으로 유명한 곳. 해석은 분분하지만 카운터의 모서리(角) 등에 기대어 서서 한 잔 ‘때린다(打)’고 하면 꽤 괜찮은 해석일 듯하다. 이런 집이 이 도시에만 180여 곳이나 있다. 워낙 기타규슈의 가쿠우치가 일본에서 유명해서 타지에서 찾아오는 이가 있을 정도. 이 도시에는 가쿠우치 문화연구회(kakubunken.jp)까지 활동 중이다. 가입조건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도 흥미롭다.가쿠우치의 매력은 술집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무너뜨린다는 점에 있다. 가쿠우치에서는 옆자리 손님에게 술을 돌리거나 말을 붙이는 게 자연스럽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금기로 하는 일본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 그래서 기타규슈 가쿠우치의 매력이 참으로 넘친다. 안주를 나누고 말을 섞는다. 아, 정겨운 사람의 모습아. 한번은 이 가쿠우치를 지나는데 한패의 남자들이 우리를 불렀다.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서 말이다. 그들과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대화했다. 술값? ‘와리 캉(더치페이)’이 기본인 일본에서 그들이 이방인이 마신 걸 대신 계산했다. 상상이 되는가? 가쿠우치의 또 다른 매력은 값이 싸다는 점이다. 안주는 그냥 마른 안주나 캔 제품이 많다. 가쿠우치가 분화되면서 제법 고급스러운 집도 생겼지만 대체로 서민적이고 허름한 분위기다. 안주용 캔을 툭 따서 내놓는 게 자연스럽다. 훈훈한 정에 마음이 절로 따스해진다. 참, 앞서 말한 문화연구회에서는 가쿠우치 이용법을 안내하고 있다. “카운터에 서서 ‘술을 따라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안주 주문 방법은 다른 손님이 하는 것을 관찰한다. (…) 맥주 주문법도 다양하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서 컵을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집이 있고 그냥 ‘삿포로 중간 병’ 하는 식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초심자에게 알려주는 이용법도 있다. 가쿠우치는 빨리 먹고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그러나 우리 같은 외국인이라면 얼마든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다치노미나 가쿠우치에서 쓰이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가 있다. ‘다크 덕스(Dark Ducks)’는 일본의 전설적인 남성 4중창단이다. 멤버 중 한 사람은 작고했고 또 한 멤버는 투병 중이다. 남은 두 사람이 팀을 이뤄 아직도 활동한다. 왜 가쿠우치에서 다크 덕스라는 말을 사용할까? 이 남성 중창단은 노래를 부르면서 약간의 율동을 하는데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정면을 바라본다. 인원 수가 많으니 텔레비전 화면에 고루 잘 나오게 하려는 의도에서다. 가쿠우치에서 사람이 몰려 자리가 모자라면 누군가 “다크 덕스!” 하고 외친다. 그러면 몸을 옆으로 돌려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매너다. 여기서 다크 덕스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주류 판매점, 아니 한국식의 가맥 같은 곳이니 앞서 얘기한 것처럼 술값이나 안주가 싸다. 철철 넘치게 따라주는 사케가 한 잔에 250~300엔 정도. 안주도 당연히 헐값이다. 작은 통조림이나 멸치 한 봉지가 얼마나 하겠나. 300엔을 넘지 않는다. 기타규슈의 맛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게 생선이다. 물살이 빠른 대한해협에서 잡은 생선이라 살이 단단하다. 한 해물 집에서는 문어를 내오면서 이런 설명을 붙였다. “기타규슈 앞바다인 간몬 해협에서 잡은 문어예요. 물살이 아주 빠릅니다. 그러니 쓸려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바위를 붙들고 있는 겁니다. 살이 단단하고 쫄깃할 수밖에요(웃음).”가쿠우치는 비장의 술집으로 남겨둬야 한다. 먼저 이들이 많이 가는 우오마치의 술집을 돌고 기타규슈의 명물 중 하나인 철판 교자를 먹는다. 교자에는 당연히 맥주다. 생맥주도 좋지만 전통적인 병맥주를 추천한다. 게다가 술안주만 좋은 동네가 아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 역에서 가장 유명한 ‘일 포르노 델 미뇽’이라는 미니 크루아상의 본점이 바로 기타규슈의 고쿠라 지역일 만큼 과자와 빵도 유명하다. 고메의 천국이랄까. 이 기타규슈 고쿠라 지역에서 탄가 시장을 빼면 곤란하다. 구경거리가 많고 음식도 맛있다. 특히 가마보코 집에서 파는 카나페는 인기 있는 음식이다. 질 좋은 어묵에 얇은 식빵을 붙여 튀겨낸다. 또 탄가 시장에 가면 대학당(大學堂)이라는 식당이 있다. 묘한 식당이다. 젊은이들이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한다. 일반 가게가 아니다. 무려 ‘대학당 운영실행위원회’가 있고 기획은 기타규슈 시장 장학회, 기타규수 시립대학 인류학 세미나라는 곳에서 한다. 그렇다고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자, 우선 대학당에서 100엔을 주고 밥을 산다. 그 다음에 시장으로 가서 반찬을 사서 밥에 얹으면 된다. 다시 대학당으로 돌아와서 먹는다. 찌개는 대학당에서 100엔에 판다. 인기 있는 토핑은 대충 이렇다. 그날그날 잡힌 해산물, 참치, 쇠고기, 고등어 튀김, 명란젓…. 사바 비안(Ca Va Bien)이라는 메뉴도 있다. 요즘 같은 철에는 사바 즉, 고등어 회를 떠서 얹어 먹는 거다. ‘고등어 좋아’라는 의미일 텐데 프랑스 셰프가 절찬 평가를 했다고 한다. 지역민들의 생생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 가쿠우치의 매력이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