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 남과 남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남녀가 함께 일하는 오피스H에서도 종종 건강한 에너지가 넘친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한 쪽에선 호들갑스런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하고, 가끔 서로 정색하며 수줍어하는 모습도 보인다. 최근엔 남자 스태프의 숫자가 늘어났는데 여자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제대로 화장하고 출근한다거나 보통 때였으면 진작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낼 상황에서도 좀 더 조신하고 여성스런 몸가짐을 취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다만 보통 회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장인 내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게이라는 점이다. 나는 언제나 깍두기처럼 남자들 틈이나 여자들 틈에서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같은 동질의 성으로서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한 건 남녀가 함께 섞인 공간에선 마치 물과 기름처럼 자신이 그들로부터 분리되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들 중에 또 다른 게이가 있다면 동질감을 느끼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무실에는 내가 유일한 게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약간은 섬이 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보스이기에 느끼는 직급의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본질적으로 분석하고 생각해도 성 정체성의 이질감에서 오는 분리감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하다. 여자들끼리 한 잔의 차를 마시며 나누는 수다스럽고 디테일한 ‘걸 토크(Girl Talk)’가 있듯이 남자 세계에도 이처럼 소소한 즐거움이 존재한다. 일하다 짬을 내 함께 피우는 담배, 함께 노는 당구 치기, 함께 보는 축구의 묘미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게이들은? 기본적인 정서를 보면 확실히 여자들의 수다스러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표출하는 행위나 결과물들은 남자들의 그것처럼 공격적이고 집단적이며 가끔은 매우 감각적이며 충동적이기도 하다. 당연히 나는 이 세 가지 모두를 넘나들며 인생을 즐기지만 게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물리적인 것에 기인하는데 예를 들면, 남자 화장실 소변기에서 일을 보고 있는 남자 스태프들과 마주쳤다가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걸 민감한 내가 어느새 감지할 때나 워크숍이나 출장에서 더러 한 방을 써야 할 때 그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살짝 당황하는 걸 보면 미안해질 때가 있다. 하늘에 우러러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불순한 마음을 먹은 적은 없었으나 남녀 유별과 마찬가지로 남‘게’ 유별인지라 나 또한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사무실 남자 화장실에는 한꺼번에 여러 남성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은연중에 불문율처럼 돼버렸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사옥을 짓는다면 나는 꼭 화장실을 세 섹션으로 나눌 참이다. 남자, 여자, 게이 이렇게 말이다.
크루즈를 아시나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처럼 게이가 남자들 사이에 끼어듦으로써 생기는 미묘한 파장은 게이들끼리에서는 요상한 섹슈얼 에너지로 발전하기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크루징(Cruising)’이다. 원래 ‘크루징’이라는 단어는 호화 유람선이나 요트를 타고 즐기는 여행을 말한다. 패션을 사랑하는 <엘르>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하이 패션 브랜드들이 한겨울에 보여주는 한 여름 리조트 웨어를 뜻하는 ‘크루즈 룩’ 혹은 ‘크루즈 컬렉션’으로 더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크루즈라는 단어가 ‘바다를 유연하게 훑고 다니다’는 뜻에서 기인해서일까? 언제부턴가 남자가 여자를 꼬시러 다닌다는 은어처럼 사용되더니 지금은 게이가 또 다른 게이를 낚으러 다니는 행위로 영어권에서는 가장 폭넓게 상용되는 대표 은어가 됐다. 패션 관점에서 보면 사실 크루즈 룩과 게이의 연관성은 상당히 밀접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장 폴 고티에의 해군 복장의 마린 티셔츠와 그의 젊은 시절의 자화상은 게이 아티스트 듀오인 ‘피에르 & 질’의 팝아트로 승화돼 지금은 현존하는 많은 젊은 작가들이 오마주를 바칠 정도로 하나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많은 게이들은 여전히 해군복을 볼 때마다 그들만의 은밀한 코드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 크루즈가 이 크루즈가 될 줄이야 아무도 몰랐겠지만 어쨌든 게이들이나 놀기 좋아하는 끼 많은 남녀들이 호화 여객선을 싫어할 리도 만무하니 연관성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지난 달에 언급했듯이 게이들이 또 다른 게이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도무지 누가 게이인지 알 수 없으며 심증이 가도 물증이 없어 대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요즘 무섭게 퍼지고 있는 초식남 꽃남 메트로 섹슈얼들은 게이들의 안구 정화는 해줄지언정 가뜩이나 모호한 성 정체성 구별을 흐려놓는 아주 못된 족속들이라서 마음 같아선 게이들끼리만 쓰는 무슨 디지털 칩이라도 장착해 게이들끼리 지나가면 서로 신호음이 터지는 기계라도 발명됐으면 하는 심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다 보니 게이들의 만남이란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 몇 개와 오프라인의 크루징이다. 그 중 게이 ‘크루징’ 장소로 정해지는 영순위는 공중 화장실이다. 뉴스로 터져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세계적인 팝 가수 조지 마이클이 풍기문란으로 체포가 된 곳도 바로 런던 근교의 화장실이 아니었던가! 한국은 아직도 게이 크루징 장소가 세분화되진 않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게이 사우나, 화장실, 서점, 다크 룸, 클럽 등등 별별 희한한 곳이 다 존재한다. 처음 입문하는 게이 초보조차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정도. 그러한 곳들은 도시 곳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다. 다만 성문화가 보수적인(?) 한국에서는 이성애자들을 위한 마사지 간판은 어지러울 정도로 많아도 게이들의 크루징 장소는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남산공원, 파고다공원, 파고다극장 등이 80~90년대 초를 풍미한 한국 게이들의 크루징 아이콘 장소였다면 이제는 종로 3가의 포장마차들과 이태원에 초라하게 명맥을 유지라고 있는 몇 개 남지 않은 바나 클럽이 전부다. 그렇다면, 그 많은 게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마음 편히 즐기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요즘엔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발달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를 통한 만남이 활발하다지만 비주얼에 민감한 게이들의 속성상 반드시 어딘가에서 오프라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 텐데 말이다. 게이들하고 함께 있는 게 솔직히 더 편한 나지만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스트레이트들과 일하며 생활하는지라 가끔 주말에 이태원에 나와 맥주 한두 잔 하고 새벽에 들어오는 정도다 보니 이제 내게 크루징이라는 단어는 ‘젊은 게이가 주말에 집 나가서 하는 행동’이라는 또 하나의 정의가 추가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