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물건] #01. 달려, 코르테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3년 2개월 14일 16시간동안 미국 전역을 달리던 포레스트 검프. 그가 신고 있던 건 첫사랑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 나이키 코르테즈였다. 나이키의 역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이 지극히 미국적인 디자인의 운동화에 숨겨진 이야기들. | 요주의 물건,코르테즈,나이키,흰빨파,빌바우어만

  「 #01 달려, 코르테즈, 달려! 」   세상에는 자신의 임무를 100% 수행하는 ‘성실형’이 있고, 80% 정도의 노력만 하고 나머지는 정치 혹은 입담 혹은 요령으로 무마하는 ‘대충 형’이 있다. 그리고 드물게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시무시한 열정을 불태우며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아니,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이들이다. 해충보다 무서운 것이 대충이라 설파하는 이들을 시쳇말로 ‘열정 만수르’라고 부른다던데, 나는 편의상 ‘굳이굳이 형’이라고 부르겠다.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은 ‘굳이굳이 형’의 전형이었다. 오리건 대학의 육상 코치였던 그는 선수들의 기록을 단축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기존의 러닝 슈즈를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고, 밑창의 밀착력을 실험하던 중 아내가 쓰던 와플 기계에 액체 폴리우레탄을 부어 격자 모양의 신발 밑창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급기야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것이 나이키의 시작이었다.     게티이미지 *나이키 최초의 러닝화 문 슈(Moon Shoe). 1972년, 올림픽 예선전에 나가는 육상선수들을 위해 빌 바우어만이 디자인한 것이다. 당시 12켤레가 제작됐으며, 유일하게 착용하지 않는 상태로 보관된 단 한 켤레는 지난 7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3만 7천5백 달러(약 5억 1천6백만원)에 낙찰됐다.    오늘의 주인공 코르테즈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사실 나이키가 설립되기도 전의 일이다. 앞서 말한 ‘굳이굳이 형’ 빌 바우어만은 제자이자 동료인 필 나이트와 함께 각각 5백 달러를 투자해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라는 회사를 세웠고,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판권을 가지고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다 사업이 커지자 그들은 직접 운동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972년, 마침내 최초의 코르테즈가 탄생했다. 나이키 스우시 기호와 외부 밑창 하단의 줄무늬로 구성된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선수들이 코르테즈를 신고 올림픽에 출전한 그해, 코르테즈의 판매량은 80만 달러에 이르렀다.   나이키 제공 나이키 제공 게티이미지   운동선수를 위한 신발로 인식되던 코르테즈가 대중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 건 1976년, 인기 TV 쇼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에서 파라 포셋이 코르테즈를 신고 스케이트보드를 탄 순간이었다(2017년, 나이키 광고 캠페인에서 벨라 하디드가 이 장면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의 전성기는 그로부터 18년 뒤에 찾아온다.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만약 ‘물건주연상’이라는 부문이 있었다면 주인공은 분명 코르테즈였을 것이다. 그해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시각효과상을 휩쓴 명작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한 최고의 주인공이었으니까.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가 미국 전역을 달릴 때 신었던 것은 오리지널 모델 중 하나로, 흰색 바디에 빨간 스우시, 그리고 중창에 파란색 포인트가 더해진 제품이다. 영화 개봉 후 코르테즈는 전 세계적으로 날개라도 돋친 것처럼 팔려나갔고, 이 일명 ‘흰빨파’ 모델에 나이키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   * TV 드라마 <미녀 삼총사>에서 파라 포셋.   *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코르테즈는 가장 큰 매력은 누구에게나 어느 발에나 잘 어울린다는 것. 록스타 커트 코베인이 신던 이 신발을 힙합 씬의 대부 닥터 드레와에미넴도 즐겨 신었다. 뮤지션들이 무대 위를 누빌 때 신던 이 신발을 옷 잘 입는 남자 라포 엘칸(피아트 그룹의 손자, 유벤투스 구단주, 아이웨어 브랜드 이탈리아 인디펜던트 대표)은 말끔한 슈트에 매치하곤 한다. 필름 속에서는 또 어떤가. 미국 시트콤 <사인필드>에서는 찌질하고 소심하고 언제나 연애에 실패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캐릭터 조지가 날마다 코르테즈를 신었고, <기묘한 이야기>에서는 십대 청소년들이 신었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는 억만장자가 신었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흰색 람보르기니의 걸 윙 도어를 열기 위해 다리를 찢던 그 명장면!). 말 그대로 전천후 아이템, 경계를 허무는 물건인 것이다.   *코르테즈를 즐겨 신는 벨라 하디드. 지난 2017년, 코르테즈 45주년을 기념하는 광고 캠페인에 등장하기도 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새로운 기술이 매년 개발되고, 손끝 하나 대지 않아도 스스로 발에 맞게 사이즈를 조절하는 스마트 농구화(나이키 어댑트 BB)까지 출시되었다지만, 나는 여전히 이 클래식한 모델에 마음이 끌린다. “몸을 가졌다면 누구나 운동선수(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라던 빌 바우어만의 말이 현실이 됐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단지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나이나 인종, 성별, 건강 상태를 뛰어넘는 도전정신을 설파하는 데 성공한 브랜드가 있다면, 그건 나이키일 것이다. 결승선은 없다고 외치고, 너라는 위대함을 믿으라고 독려하는 브랜드. 그런 놀라운 세계를 창조한 위인에게 ‘굳이굳이 형’이라는 말을 붙였다니. 문득 미안해지네. 어디 보자, 더 좋은 표현 없을까. 그래, ‘저스트 두 잇 형’은 어떨까.     ▷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