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미는 여자, 당기는 남자

연애 전선에 나선 청춘 남녀들은 방화범도 아니면서 서로 애간장 태우는 데 혼신을 다한다. 연애의 알고리즘이라 일컬어지는 밀고당기기. 머리로 하는 연애를 두고 엘르 엣티비 <2rooms>의 패널들이 선수답게 설왕설래를 했다.

프로필 by ELLE 2010.07.22


“믿고 싶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 데카르트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굳이 그의 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대방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의도를 감추고 말과 행동을 한다. 남이라고 다를까. 그런 탐색전이 가열된 용기 안에서 팝콘 터지듯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건 남녀가 연애 전선에 나설 때다. 동서고금에 남자와 여자가 인연을 맺는 연애 초기에는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진다. 상대방의 마음에 확신이 없어 이리 떠보고 저리 떠보고 사랑의 마음을 애써 감춰 보기도 한다. 흔히 연애 공식이라 일컫는 ‘간보기’니 ‘줄다리기’니 하는 밀고당기기의 교묘한 테크닉인 것이다.


엄마같은 여자는 NO !

<2rooms>의 한 여자 패널은 러브 보트가 닻을 올리는 연애 초반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바람을 타기 시작하는 중반에 들어서면 애인의 변심을 확인하기 위해 ‘밀당’을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사랑 때문에 밀고당기는 심리전을 매정하다 하겠지만 이처럼 마음이 아닌 머리로 연애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자들은 마음을 줄 듯 말 듯하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 잡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갈증이랄까.”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물렸다가 입에서 빼내듯 살살 애간장을 태워야 남자들이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매달린다고 여자 패널들이 입을 모은다. 연애 시절에는 금이야 옥이야 지극 정성으로 보필하다가도 결혼 후에는 선물은 고사하고 기념일도 예사로 까먹는 동물이 남자다. 고로, 달아나는 상대방을 쫓는 그들의 사냥 본능을 일깨우기 위해 사랑의 줄다리기를 한다는 것이 여자들의 변이다. 연애에서 일방적으로 잘해주기만 하면 상대방의 적극성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더구나 열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열두 번 연락하고, 케이크가 먹고 싶단 말에 맛집을 수소문해 공수해오는 등의 갸륵한 정성과 배려는 도리어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매력 없이 잘해주는 여자는 여자로 보이지 않고 엄마로 느껴져.” 남자 패널의 말이다. 이에 반발하며 “뭐가 이상해? 잘해주고 싶으니까 잘해주는 거야!”라고 외치지만 우렁각시 타입의 한 여성 패널은 싱글 신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차가운 현실. 결국 문자 메시지의 단어 수를 서서히 줄인다든가 선물을 받았을 때 괜히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남자 이야기를 꺼내는 건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녀들의 무언의 호소인 셈이다. 허나 동네 목욕탕의 단골 아줌마처럼 쉴 틈 없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탓에 상대를 너무 감질나게 하다간 성질 급한 남자들이 지레 포기하고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연애에서의 줄타기는 사춘기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간의 기 싸움과는 엄연히 다르다. 한쪽이 지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라도 판을 접게 되는 게임이다. 간혹 이를 망각한 채 무책임한 연애 기술서들의 지침대로 집착을 끊고, 무조건 기다리고 콧대를 세우다가 암수 서로 정답게 훨훨 나는 꾀꼬리를 쳐다보며 외로이 ‘황조가’를 읊조리게 될지도 모른
다. 간만 보느라 계속해서 불에 조리면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없듯이 밀고당기기의 게임에서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치고 빠지는 남자

이렇게 난이도 높고 전략적인 유혹의 기술은 여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마음을 다 드러낼 필요가 없어. 상대에 대한 마음이 100이면 처음에는 90을 보여줘야 해. 그러다 점점 줄여가는 거야. 보면 볼수록 더 빠져들게 만드는 거지.” 남자 패널의 말처럼 남자들은 헬스장에서 그러하듯 연애관계에서도 푸시업을 완벽하게 구사한다. 함께 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처럼 굴다가도 헤어진 뒤에는 일부러 연락을 뜸하게 하거나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흑심을 꾹 참으며 차곡차곡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도 그들의 전략적인 행동이다. 더욱이 남자들은 여자들의 욕망은 식욕과 다를 바 없어 다 퍼줘도 금세 더 갈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자들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금방 입질을 보였다가는 주도권을 잃게 될 거란 착각에 휘둘려 ‘밀당’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행동은 미는 대로 밀리고 당기는 대로 따라오던 남자들을 도발하고 괜시리 없던 승부욕까지 만들어 그들을 사랑의 줄다리기 판으로 이끌어올 수도 있다. “남녀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감은 있어야 하잖아. 여자가 쉽게 넘어오면 재미가 없고 성취감이 느껴지지 않아.”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멀어지는 남정네들을 두고 솔로 부대의 여성 대원들은 “재수없어, 진짜.”라며 혀끝으로 난도질하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있다. 그런 욕지기는 줄 듯 말 듯하는 현란한 언행으로 주변 여자들을 ‘어장 관리하는 놈’에게나 어울리지 그 외의 남자들은 으례 심리전을 펼치는 보통 여자들과 다를 바 없다. 연락 없는 남자를 두고 “요즘 남자들은 이것저것 다 재.” “치고 빠지는 데 능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의 가장 큰 착각은 남자의 무관심을 밀고당기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흥이 나지 않으면 풍악을 울리지 않고 관심이 없으면 연락하지 않는다. “남자가 연락을 하지 않는 건 마음이 없어서야. 남자로부터 연락이 없을 때는 옥중과 상중일 때라잖아.”는 말처럼 그들은 단지 그녀들에게 반하지 않았을 뿐이다. 남자가 ‘밀당’을 하는 줄 알고 계속 연락했더니 그만 만나자는 시퍼렇게 날이 선 회신이 가슴을 후벼팠다는 일화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연애도 두뇌 전쟁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교묘한 심리전을 통해 상대의 애정 무게를 재는 염력 싸움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밀고당기기를 하는 건 헛수고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아깝잖아.” 한 남자 패널의 말대로 목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 먼저 전화하고 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찾아가면 되는 거다. 이에 동조하는 여자들의 목소리도 있다. “밀고당기기는 쓸데없는 감정 낭비에 불과해. 사랑은 100과 100의 마음을 합쳐 200을 만드는 게 아니야. 70과 30을 합쳐 100을 만드는 거지.” 이들의 말대로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줄다리기 연애를 하는 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이러다 두뇌가 뛰어나고 눈치 좀 있어야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마저 든다(사실이다!!). 서로 안 보면 죽을 만큼 사랑하면 야구 경기에서나 필요한 탐색전과 견제 따위는 필요없을 법한데 요즘 세상에서는 그런 진실한 사랑이 멸종 위기에 처했나 싶다. 아니면 거절과 탈락, 실격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뭉개질 대로 뭉개진 자존심을 연애에서까지 상처 입고 싶지 않은 암컷과 수컷의 보호 본능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