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세계에서 인정받았습니다’ 순위를 매긴다면 BTS, 봉준호  다음엔 박막례의 이름이 오지 않을까? 71세에 유튜버로 데뷔,  ‘Korea Grandma’ 로 새 삶을 시작한 할머니와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손녀 김유라 씨는 2년 연속 구글 본사에 초대됐다. 유튜브 CEO 수전 워치츠키와의 조우에 이어 올해는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로부터 만남을 제안받은 두 사람. 심지어 순다르는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까지 했으니! 마치 아리아나 그란데가  BTS의 막내 정국과 찍은 셀피를 올린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토록 초월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이제 막 출간된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를 보면 그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여유 있는 집안이었지만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도 없이 막내라서 ‘막례’가 된 할머니. 할머니가  ‘치매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는 순간 유라 씨는 할머니와 호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불쌍한 우리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할머니의 말은 하나하나 주옥같다. “나는 여행을 가면 건물보다 사람 사진을 많이 찍는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귀해져.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새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래서 노인은 외로운가 봐.” “난 다음 생엔 결혼 안 하고 기계랑 살 거다. 진짜 남편 데리고 살면 손해다. 기계는 말도 없고 일 다 도와주고 조용하고 바람도 안 피우고 좋겠더라.” “종교인들이 신을 찾는 것처럼 새롭고 좋은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유튜브 신께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제.”     좋아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화려하게 화장한 채 다시 인생을 향해 씩씩하게 돌진하는 70대 한국 여성의 모습은 낯설다. 1933년생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마찬가지다. 진보적이고 직설적인 발언으로 소셜 미디어 스타에 등극한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는 반대한다>는 헬스장에서 플랭크를 하는 긴즈버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대장암과 췌장암을 이겨내고,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80대 여성 대법관이라니! ‘노인’에 대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깨부수는 장면이다. 부침개처럼 인생이 뒤집힌 것은 90세에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한 추상 작가 카르멘 헤레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6년 휘트니 미술관 전시 당시 그는 이미 101세. 지난해에는 잭슨 폴록과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니 ‘기다리면 버스는 언젠가 온다’는 그의 신념이 틀리지 않은 셈이다.     노인을 짐처럼 취급하는 ‘고령화 사회’ 진단이 세계 곳곳에 내려진 한편, 우리는 더없이 활기차고 개성 있는 노인의 삶을 목격하며 함께 공존하는 첫 세대다. 한국보다 훨씬 빨리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 사회의 시니어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작가 무레 요코가 1900년생인 외할머니의 삶을 포착한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을 펴낸 것이 무려 1995년의 일이니 말이다. 2017년, 81세의 나이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게임 애플리케이션 ‘히나단’을 출시한 와카미야 미사코는 어떤가. 6개월간의 고군분투 끝에 개발한 게임 앱을 열심히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직접 애플 스토어에 등록한 결과 그는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로 주목받으며 팀 쿡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남편 본(Bon) 함께한 커플 룩으로 60대에 인스타그램 팔로어 80만의 세계적 패셔니스타로 등극한 폰(Pon)이라는 닉네임의 할머니는 또 어떻고.     이 ‘쿨’한 노년 여성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은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 사회가 노인, 특히 노년 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는 삶의 연륜에서 오는 지혜, 인자함, 희생 같은 것에 가까웠다. 이 할머니들은 그런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을 뛰어넘어 도전 정신과 유머, 감각, 전문성을 보여준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을 원작으로 얼마 전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의 주인공은 늦게 한글 공부에 도전한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의 ‘짝꿍’인 20대 초반의 아이돌과 배우, 세대간 연결 역할을 하는 문소리 등도 등장하지만 이 기획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인생 만렙의 할머니들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그 자체일 것이다. 연출을 맡은 권성민 PD는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는 제목처럼 노년 여성들이 여전히 현재를 사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미디어가 노년층을 다룰 때 ‘서러운 세월을 견딘, 과거에 매인 존재’로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우리도 부모의 삶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하고요. 하지만 자식들이 독립하고 배우자와 사별한 뒤에도 여전히 오늘과 내일의 할 일이 있고, 새롭게 맺고 부대끼는 인간관계가 있거든요.”     그렇다. 노인이 된다고 해서 당연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80세에 가출을 감행하는 할머니가 등장하는 만화 <80세 마리코>의 작가 오자와 유키가 작품을 그리게 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용을 배우러 다니며 60~70대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 상상과 달리 다들 젊고 건강했어요. 고령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고, 상상하기 쉬운 세계일지도 몰라요.” 손녀 유라 씨가 생각하는 박막례 할머니의 인기 원인은 단순히 유튜브를 시작한 70대라서가 아니다. 당차게 자기 길을 가는 할머니 본연의 캐릭터 힘이 크다. 새롭고 낯선 것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자기 방식대로 뛰어들어 즐길 줄 아는 용기!     열두 살까지 조부모와 같이 살았음에도 내가 친할머니를 ‘유미자’라는 개인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철이 들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1930년생 노인 입에서 ‘콤푸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생경함, 할머니가 ‘맥모닝’을 맛있게 드셨다는 말을 고모에게 들었을 때의 충격.  왜 나는 할머니가 새로운 걸 알아가고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활기찬 할머니들의 활극을 읽는 사이사이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주변 시선 때문에 위축된 모습이 보였다. 다이어트를 위해  줄넘기를 하려고 하지만 가족들로부터 “노인이 무슨 줄넘기냐. 몸매에 신경 쓸 나이도 아닌데”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던 모모요 할머니, 에버랜드에 갔지만 정작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앞두고 “나이 많은데 태워줘?”라고 물어야 했던 박막례 할머니. 에그그. 그러니 고작 스무 살, 서른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이 때문에 안 된다’고 겁먹는 것은 얼마나 배부르고 바보 같은 소리였는지!     노년의 다양한 삶을 엿보고 짐작할 수 있는 콘텐츠는 새롭다. 그러나 젊은 창작자의 시선을 경유해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편집된 노인의 모습만 소비하는 것이 과연 우리 삶과 얼마나 맞닿을 수 있을까. 더욱이 세대간 갈등으로 인한 노인 혐오가 만연하고, 노년 여성 빈곤율이 OECD 가입국 중 1위에 빛나는 한국에 사는 젊은 여성들에게 말이다. 권성민 PD의 고민은 이런 질문에 좀 더 현실적인 답안을 제시한다. “매력을 느낀 대상이 무엇이든, 그 대상의 입체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가시나들>을 보며 따뜻한 할머니를 떠올린 분이 있는 반면, 우리 엄마를 괴롭혔던 할머니, 손자만 예뻐했던 할머니가 생각나 치를 떤 분도 있을 거예요. 박막례 할머니처럼 열린 가치관의 노년층은 흔치 않으니까요. <가시나들> 속 할머니들의 ‘결혼은 꼭 해’ ‘남자는 울면 안 된다’와 같은 발언 역시 젊은 층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죠. 그러나 평생을 이 기준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달라진 세대에 맞춰 변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저는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들을 단순히 ‘틀딱’ ‘꼰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중하고 공존할 것인지 같이 고민하길 바라요.” 거리를 걸으니 무생물 혹은 풍경처럼 존재하던 노인들의 다양하고 수많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분은 옷을 참 곱게 입으셨네, 할머니들이 타기에 버스 턱은 정말 높구나, 대체 저 많은 장을 어디에서 보신 거지? 유튜브 창을 닫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존재하는 세대와 시민으로서 공존하는 법을 고민하는 것. 그리고 어떻게 나이 들어갈지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평생 갖고 살아가야 할 마음의 지침은 ‘나이가 뭐 어때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