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대가, 피에로 리소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미니멀리즘의 대가 피에로 리소니와 한남동에서 만나 플라스틱과 이탤리언 그리고 디자이너에 대한 이 세상의 오해들에 관해 이야기했다.::피에로 리소니, 플라스틱, 디자인, 디자이너, 한남동, 디뮤지엄, 플라스틱 판타스틱, 전시, 엘르, elle.co.kr:: | 피에로 리소니,플라스틱,디자인,디자이너,한남동

플라스틱을 주제로 묶은 기획전시에 초대됐다. 플라스틱이란 소재를 어떻게 생각하나아주 멋지고, 귀족적이고, 어려운 재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존중하는 태도로 다룬다면 매우 특별한 작업도 가능한 재료다. (사이) 그런데 플라스틱을 소재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의미를 많이 축소한 시선인 것 같다. 고대어 ‘플라스티코스’에서 온 것부터 설명하면 이 단어는 굉장히 조형적 표현이다. 그건 플라스틱 소재 자체가 다른 소재는 결코 할 수 없는 형태를 만드는 내적 특성이 있다는 뜻이다.무궁무진한 변형이 가능하다는 뜻인가맞다. 다재다능하게 변신하기도 하고 복잡한 형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도 품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정도의 질감이나 퀄리티를 넘어서는 플라스틱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플라스틱이 쉽고 가볍고 싸고 단순한 소재라고 오인하듯, 이탤리언은 화려하고 장식적일 거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내가 제대로 된 이탤리언이 아니라서 그렇다(웃음).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웃음)이탤리언이라면 무조건 장식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인은 언제나 심플함이나 우아함이 주요 특징이었다. 아킬레 카스티글리오니, 에토레 소트사스, 비코 마지스트레티 같은 거장들을 생각해 보라. 건축에서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의 일부를 잘 들여다보면 늘 심플함의 정수가 그 안에 있었다.미니멀리즘은 워낙 드러나는 요소가 적어 개성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리소니적인 미니멀리즘이란내 디자인을 설명하기보다 심플한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말하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는 아주 어렵고 복잡하다. 고려해야 할 것이나 풀어야 될 문제들, 꼭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들…. 그 단계부터 시작해서 빼고, 빼고, 또 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 심플함은 복잡함이 가진 대중적인 얼굴인 것 같다. 그 단순함 뒤에 복잡한 과정이 없다면 그건 진부함에 지나지 않는다.밀란 태생으로서, 환경이 당신에게 영향을 주었나 나는 우연히 밀라네제였던 것뿐이다(웃음). 나는 밀라네제인 동시에 유러피언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럽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유러피언이 보통 두세 개, 많게는 너댓 개 언어까지 말할 수 있듯이 유럽은 온갖 것들이 서로 섞이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열린’ 상태로 끊임없이 변해왔다.밀란은 아주 고전적인 것과 최신 트렌드가 버무려지는 도시라 디자이너인 당신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당신이 말하는 게 바로 밀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닌 가치다. 모던하면서 고전적인, 아주 강력한 문화적 배경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것 같고, 범위에 대해 남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내게 밀란이란 문화적 배경이 없었다면 유럽이라는 넓은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을 거다. 찰스 임스가 “오염 없이는 문화도 없다”고 했다. 문화적인 오염, 문화적 혼용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은 정체성을 갖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피에로 리소니의 가장 최근 디자인이자 카르텔이 심혈을 기울여 생산한 피우마(Piuma) 체어. 두께는 고작 2mm, 무게는 2.2kg. 가볍고도 견고한 의자답게 허공에서 날고 있는 듯 설치됐다.만약 유럽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역사를 뒤집어버릴 수 있을 만큼 혁명적 변화가 온다면, 아마도 그건 ‘디지털’이 아닐까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맞는 이야기인데,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한다.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은 분명 다른 차원이지만, 그건 도구의 변화다. 도구는 도구일 뿐 아이디어가 아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우린 계속해서 아날로그일 거란 사실이다. 계속 아날로그한 소파에 앉아, 아날로그한 컵에 이렇게 물을 따라 마시면서 말이다.하지만 당신은 지금 노트 대신 아이패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오, 이건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기계다. (아이패드의 키노트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자, 나는 펜과 종이를 쓸 때와 똑같이 여기에 스케치한다. 문화에 대한 인사이트가 전혀 없다면? 여기 그릴 게 아무것도 없다. 생각 없이는 이건 그냥 ‘스튜핏 툴’에 지나지 않다는 거다.당신의 스튜디오에서 새 디자이너를 뽑는다면, 그의 테크닉을 볼 수밖에 없을 텐데노. 자신만의 문화가 없는 사람은 뽑지 않는다. 한국의 도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중국에서는 포크를 쓰는지 젓가락을 쓰는지, 16세기에 나온 것 중에 제일 관심 있는 게 뭔지,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난 ‘너드’는 필요 없다.디지털 세상에 사는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된다 너드가 디자인을 한다는 건 우리 시대의 큰 실수다. 새로 나온 디바이스나 애플리케이션의 세계는 언젠가 끝날 거다. 진짜 인간이 얼굴을 맞대고 아주 훌륭한 사케나 진을 맛보는 세계보다 빨리 끝날 것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건축가나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 것에 대해 아주 예민할 테니, 디지털로의 이전을 과소평가하면 안될 것 같은데 르 코르뷔지에가 인간의 주거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건 맞지만, 그가 만든 공간에서도 의자는 여전히 의자이고 여전히 네 개의 다리가 있다. 미스 반 데 로에의 디자인도 혁신적이었지만 역시 의자를 의자가 아닌 걸로 만들진 않았다. 그러니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디자이너들이 ‘퓨처리스틱’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아주 엄청난 숫자의 피해자들이 생겼을 뿐이다. 내 디자인에 대해선, 몇 천만 명이나 되는 피해자들은 필요 없고 ‘리소니가 디자인한 건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도 좋다’고 해주는 아주 소수의 피해자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당신은 어떤 사람이 오게 될지, 누가 당신의 제물로 바쳐질지 모를 불특정 다수를 위한 호텔도 디자인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내가 디자인한 호텔이 만약 1박에 1000유로라고 치자. 사람들에게 이런 디자인도 있다고 만들어놓았을 때 그 스타일이 싫으면 안 오면 되고, 좋으면 돈을 지불한 다음 기꺼이 내 디자인의 제물이 되는 것이다.그럼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제물인가오, 나는 완벽할 정도로 아주 쉬운 제물이다. 언제든 새로운 경험에 지불할 준비가 돼 있고, 그래서 종종 당하기도 한다(웃음).디자인 호텔을 고르는가 난 디자인 호텔을 증오한다. 유난스럽고 혼란스럽고 무엇보다 너무 지루하다.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 지루하지 않은가 소위 디자이너적인 일상? 그런 포장 또한 너무 따분하다. 난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됐다. 나는 아무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컬렉팅이란 말의 뜻은 ‘자신의 제물’이라는 뜻 아닐까? 아름다운 걸 꼭 모으고 가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디자이너나 건축가 중에 종종 자신을 로큰롤 스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밀란 가구박람회 기간에 셀러브리티처럼 꾸미고 나서는 사람들 말이다. 평소에 난 절대 블랙 컬러를 입지 않는다. 괜히 권위 있어 보이려는 사람이나 입는 컬러니까! 무슨 분야의 아이콘, 이런 말에는 꽤 공격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스타가 됐다가 몇 년 있으면 사라지는 그 디자인 아이콘들과는 달리, 우리 일상과 노동은 계속돼야 한다. 솔직히 우리 모두는 그냥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아닌가? 나는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일상을, 약간의 멋진 특전이 있는 일상을 최대한 지속하고 싶다.후대에 사람들이 당신을 미니멀리즘의 아이콘 대신 무엇으로 기억하길 바라나 사람. 아니면 조금 더 진화한 원숭이.이번 전시에선 한국 관객이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나? 전하고 싶은 말은 아니 내가 무슨 복음을 전하는 신부도 아닌데, 뭐 그렇게 할 말이 있겠나. ‘플라스틱이 꽤 판타스틱하군!’ 이렇게 느끼는 정도는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