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시대에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방법
다섯 명의 패션 애호가와 함께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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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은 취향을 앞서 예측하고, 광고 캠페인은 우리가 욕망할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안합니다. 무엇을 입을지 선택하는 일마저 누군가의 추천 안에서 이뤄지는 시대, 나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카이-이사야 자말, 엘피 레이게이트, 무셰트 벨, 캔디스 브래스웨이트, 넬리 에덴. 다섯 명의 패션 애호가와 함께 자신만의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카이-이사야 자말(Kai-Isaiah Jamal) | 모델, 시인, 사회 운동가
늘 옷과 패션을 사랑해 왔어요. 다만 제가 옷을 바라보는 방식과 옷을 입는 방식 사이에 간극이 있었죠. 그 안에서 제 몸과 꽤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거든요. 오랫동안 스커트를 입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스커트를 입으면 제 몸과 성정체성이 어긋나는 듯 불편했거든요. 지금은 치마를 입는 저만의 방법을 찾았어요. 이를테면 준야 와타나베의 찢어진 데님 스커트를 팬츠 위에 덧입곤 해요.
@kai_isaiah_jamal
패션계에서 일한다는 건 어느 정도 특권을 동반하죠. 수많은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하이더 아커만이 제 생일을 위해 톰 포드 룩을 빌려줬어요. 플레이보이 스타일에 타조 프린트 실크 로브와 그에 맞춘 실크 팬츠였죠. 하이더 아커만의 톰 포드를 입는다는 건 그 자체로 자신감이 차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저에게 옷은 제 자신과, 몸, 그리고 성별에 대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는 수단이에요. 종종 제 안의 다면적인 모습을 표출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옷장이 더 화려해 보이는 거일 수도 있어요. 때로는 10대 소년의 옷장처럼 보이다가도, 가끔 톰 포드 셔츠나 알렉산더 맥퀸의 빈티지 재킷이 섞여있기도 하죠.
문화, 예술, 영화,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만큼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예를 들어 <플로리다 프로젝트> 같은 영화를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데, 꼭 사람들이 입은 옷 때문이라기보다 영화 속 색감에 매료되는 식이죠. 그러고 나면 특정한 컬러의 폴로 셔츠를 찾아 끝없이 파고들기도 해요. 이뿐 아니라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옷을 입는 인물들에게도 영감을 받곤 해요. 90년대 NBA를 대표했던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이나 뮤지션 프린스나 버스타 라임스 같은 인물을 자주 떠올립니다. 이들은 자신의 남성성이 어떻게 비칠지 두려워하지 않았고, 남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에서 무척 자유로운 사람들이었죠.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레퍼런스는 셀러브리티들의 공항 룩이에요. 특히 앨런 아이버슨,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 같은 위대한 NBA 선수들의 공항 스타일을 정말 좋아합니다. 꽤 오랫동안 제 무드보드 한편을 차지해 왔을 정도로 공항 룩을 정말 좋아해요. 파파라치가 있을 걸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화려하지만, 동시에 아주 편안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kai_isaiah_jamal
좋은 스타일은 결국 자신을 아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몸을 알고, 편안하게 옷을 입을 줄 아는 데서 출발하죠. 요즘 우리는 패션에 대해 꽤 획일화된 생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종종 텀블러(Tumblr)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때는 남들과 다르고 과감한 것이 곧 멋으로 여겨졌거든요. 지금 우리가 쿨하다거나 패셔너블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때때로 누군가를 닮는 일, 혹은 어떤 무리처럼 보이는 일에 가까운 것 같아요. 또 우리는 패션에서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게 됐죠. 아마 이미지가 예전보다 훨씬 오래 남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오히려 더 많은 패션 실수를 보고 싶어요. 그런 순간들이 20년 뒤에는 결국 아이코닉한 장면이 되곤 하니까요.
엘피 레이게이트(Elfie Reigate) | 모델
옷과 패션이 정체성과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제게는 그 정의가 얼마나 들어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 스타일은 매일매일 바뀌거든요. 기분이 아주 좋거나, 그날 하루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때 저는 그에 맞춰 옷을 입어요. 제게 옷은 일종의 기분 측정기 같은 것 같아요.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옷으로 매일 다른 저의 모습을 연출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날에는 아마 정말 편한 트레이닝 팬츠에 귀여운 티셔츠를 입는 편이에요. 하지만 저녁에 특별한 약속이 있다면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저녁 식사나 펍에 갈 일이 생기면 스커트 같은 걸로 갈아입곤 하거든요. 그래서인지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어뒀다가 길 한복판에서 꺼내 입을 수 있는 좋아하기도 해요. 앤드로지너스한 피스나 룩이 좋을 때도 있고, 굉장히 소녀스러운 룩이 끌릴 때도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는 게 재미있어요.
@elfiereigate
사실 저는 주로 가족들의 옷장 에서 옷을 골라 입어요. 나름 꽤 체계적인 순환 시스템을 갖추고 있죠. 새 옷을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가격도 훨씬 저렴해서 좋아요. ‘빈티드(Vinted)’나 ‘디팝(Depop)’과 같은 세컨 핸즈 플랫폼도 좋아해요. 약간 운에 맡기는 느낌이 있거든요. 정말 예쁜 물건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막상 받아보면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 점이 꽤 재밌더라고요. 가끔 빈티지 티셔츠를 사면 여전히 다른 사람의 향수 냄새가 남아 있을 때도 있는데, 꺼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 옷이 제가 입기 전 이미 하나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좋더라고요.
@elfiereigate
기억에 남는 저의 특별한 옷 중 하나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스커트예요. 엄마가 가지고 계시던 톱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스커트였죠. 하나는 1990년대에 만들어진 옷이고 다른 하나는 새 컬렉션의 옷이었는데 마치 셋업처럼 보일 만큼 잘 맞았죠. 늘 다시 찾게 되는 옷은 에리즈의 트랙수트예요. 상하의가 맞춰진 셋업인데, 밝은 컬러와 페이크 퍼가 더해져 꽤 과감한 옷이에요. 입으면 살짝 ‘예티’처럼 보이기도 하죠. 기분이 좋을 때 입는 옷이에요.
무셰트 벨(Mouchette Bell)| 스타일리스트, 모델
제 스타일은 정말 다양해요. 어떤 날은 아주 시크하게 입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보헤미안 스타일로 입고 싶기도 하죠.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편은 아니에요. 저에게는 독창성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거기에 약간의 반항심도 섞어보고 싶고, 용감해지는 것도 좋아해요. 가끔은 재킷의 겉면보다 안감이 더 마음에 들 때도 있는데, 그럴 땐 그냥 뒤집어서 입어요.
@mouchettebell
열 살 무렵까지 저는 더블린 외곽의 아일랜드에서 살았어요. 가톨릭 환경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불교 신자예요. 제가 옷의 힘을 처음 경험한 건 첫 영성체 때였어요. 그때 저는 하얀 자수 드레스에 티아라와 베일도 썼고 연노란색 코트도 입고 있었죠. 그때 정말 근사한 기분이 들었고 제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나중에 알렉산더 맥퀸 같은 사람이 등장했을 때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게는 예술가였던 멋진 새어머니가 계셨는데, 주말마다 그분 댁에서 지냈어요. 히피 보헤미안이었던 그분은 제게 옷을 믹스 매치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빈티지 세계로 처음 인도해 준 분이기도 해요. 예전에는 함께 벼룩시장이나 바자회를 자주 다녔는데, 지금은 저 혼자서도 골동품 가게에 가는 걸 즐겨요. 아름다운 물건을 발견하고 새 생명을 불어넣고, 새롭게 해석하는 걸 좋아해요.
@mouchettebell
틀에 갇히는 걸 몹시 두려워해요. 생 로랑 재킷을 입고 있을 때만큼이나, 진에 프린지 톱을 입고 있을 때도 똑같이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옷 중 하나는 적어도 25년 전 미국에서 빈티지로 산 프린지 장식의 재킷이에요. 블랙 벨벳 소재에 태피터 퍼프 소매가 달린 생 로랑 수트랑 보이시한 느낌의 폴 스미스 쓰리피스 수트도 정말 좋아하죠. 재킷과 청바지를 주로 함께 입곤 하죠. 90년대에 산 요지 야마모토의 랩 스커트도 있는데, 이건 흰 셔츠와 입거나 겨울이라면 네이비 스웨터와 함께 입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늘 자신감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옷이 제게 힘을 준다는 걸 알게 됐죠. 마치 그림을 그리듯 제 몸 위에 옷을 입히는 방식이 자신감을 북돋아줬거든요. 몇 년 동안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수많은 패션쇼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 디자이너부터 포토그래퍼, 에디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헤어스타일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재능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이때 그 경험의 가치는 아무리 과장해도 부족하지 않아요.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해서 제 방식으로 활용했죠. 특히 초창기에는 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액세서리를 활용하거나 다른 아이템과 믹스매치해서 평범한 옷도 멋지게 연출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딱히 브랜드에 집착하는 편도 아니에요. 최근에는 윤리적으로 생산된 제품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때로는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좋은 옷 한 벌을 사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캔디스 브래스웨이트(Candice Brathwaite) | 작가, 진행자
어릴 적부터 옷을 좋아했는데, 윈드러시 세대로 영국에 건너온 조부모님 덕분이에요. 그분들에게 옷을 제대로 갖춰 입는 일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애티튜드였죠. ‘인종은 바꿀 수 없고, 계급도 바꿀 수 없지만, 가장 멋있게 입을 수 있다’라고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에게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생각을 평생 간직해 왔어요.
@candicebrathwaite
작년에 옷을 일종의 방어기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옷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했던 거죠.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옷을 덜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요즘은 어두운 톤의 옷을 즐겨 입는데, 덕분에 다양한 실루엣과 질감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팬츠는 이세이 미야케의 배럴 팬츠예요. 가격이 꽤 비싸서 몇 달 동안 살까 말까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사고 나서는 거의 벗은 적이 없어요. 외출할 때도, 일하러 갈 때도, 행사에 갈 때도, 집에서도 입어요.
@candicebrathwaite
전 모험을 즐기는 편에 가까워요. ‘잘 어울린다’거나 ‘유행’이라는 말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저만의 스타일에서 중요한 건 그 옷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저와 함께할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베스트 드레서 리스트에 오르기 위해서나 누군가의 핀터레스트 보드에 저장되기 위해 옷을 입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저를 위해 옷을 입어요. 그리고 패션을 정말, 정말 좋아해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스커트를 떠올리게 하는 멋진 보테가 베네타 스커트가 있는데, 허리 부분이 딱 맞고 안쪽에는 마치 훌라후프 같은 게 들어있어요. 그걸 입고도 병원에 가요!
저는 신중하고 인내심 있는 쇼퍼이기도 해요. 걸어 다니는 비스터 빌리지 아웃렛 광고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집에서 차로 35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아침에 일어나 일정에 빈틈이 보이면 곧장 아웃렛으로 가요. 그게 아니라면 렌털 마켓을 이용해요. 그곳에서 제 옷도 빌릴 수 있고 저도 옷을 빌려 입고 있죠. 한 번뿐인 행사에 초대받는 일이 많기도 하고요. 그런 자리에 입고 간 옷은 그렇지 않으면 옷장 안에서 3년은 그냥 묵혀둘 테니까요. 레드카펫 행사에 초대받으면 저는 가장 먼저 대여점부터 찾아봅니다. 그리고 항상 흑인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구매하려고 노력해요. 레드카펫 의상을 생각할 때 돈을 써야 한다면 가장 먼저 크리스토퍼 존 로저스를 찾아보죠. 그의 옷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거든요. 액세서리로는 보는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미국식 택시 클러치가 있어요. 신용카드만 들어가는 크기인데 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존재감만큼은 확실하죠.
넬리 에덴(Nellie Eden)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 스타일을 설명하자면 비틀어진 걸리시(?)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낡은 가방에 체크무늬 베이비돌 드레스를 매치하거나, 앞코가 트인 스웨이드 소재의 미우미우 글래디에이터 부츠에 퍼프 스커트와 크롭 카디건을 입는 것처럼요. 꽤 소녀스럽지만, 항상 반항적인 면이 있거든요.
@nellie.eden
지금 임신 5개월 반에 접어들었는데 몸이 변해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십 대 때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매일 출근할 때 옷을 고르는 게 정말 즐거웠거든요. 대학 졸업 후 달스턴에 살면서 벼룩시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던 게 제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클럽도 마찬가지고요. 출근할 때 입을 옷과 금요일 밤에 놀러 나갈 때 입을 옷에 엄청 신경 썼어요. 그러다 보니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시작했죠. 젊은 디자이너들과 많이 어울렸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었어요. 어차피 모두 친구들이기도 했고요. 당시 런던의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플랫폼에서 미미 웨이드, 케이틀린 프라이스, 나시르 마자르가 막 떠오르던 시절이었는데 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옷을 잔뜩 샀어요.
@nellie.eden
@nellie.eden
마틴 로즈는 제가 15년 넘게 애용해 온 브랜드예요. 마르케스 알메이다도 제가 20대 초반에 즐겨 입던 브랜드였죠. 탑샵도 정말 인기 많았고요. 크리스토퍼 케인과 JW 앤더슨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들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때 런던에서 패션을 사랑하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어요. 20대 후반에 수입이 늘어나고 쇼핑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디자이너 의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키가 160cm 정도 되는 저에게는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가 잘 맞아요. 꼼데가르송, 요지야마모토 같은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프라다와 미우미우 아카이브 컬렉션도 40~50벌 정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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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Tamison O'Connor
- 사진 각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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