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심수미 기자의 다시 시작된 '매일 저녁 90초를 위한 시간'

누구보다 빠르게 세상을 확인하고, 가장 늦게까지 현장에 남았던 기자 심수미. '매일 저녁 90초를 위한 시간'은 짧은 뉴스 너머의 긴 침묵과 삶의 속도를 다시 배워가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필 by 박찬 2026.05.25

PROFILE

심수미 JTBC 정치부 기자. 2016년 박근혜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 특별취재팀에서 ‘태블릿 PC’ 보도 등을 공동 취재하며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과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했다. 최근 뉴스 뒤에 숨은 방송기자의 노동과 취재의 시간을 담은 책 <매일 저녁 90초를 위한 시간>을 출간했다.



올해 1월 육아휴직을 마치고 JTBC 정치부로 복직했어요.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기분은 어떤가요

걱정도 컸지만, 막상 복귀하니까 역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임신 당시 잠시 국제부에서 근무했는데 상대적으로 단독 경쟁이 덜해서 몸은 편했어요. 그래도 치열한 현장의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치부로 복직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면

상사의 부름이요(웃음). 원래 국제부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절차였어요. 그런데 정치부장께서 따로 보자 하시더니, 정치부에 자리가 있으니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선배, 불러주시면 열심히 해야죠”라는 말이 먼저 나오더군요. 좋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만화 <슬램덩크> 속에서 방황하던 정대만이 농구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코트에 복귀했던 것처럼 저도 취재에 대한 열망이 컸던 거죠. 뜨거운 취재의 중심에 있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기자로서 처음 출간한 자서전이죠. <매일 저녁 90초를 위한 시간>은 90초짜리 뉴스 방송 리포트 뒤편의 시간을 다룹니다. 책을 내기로 결심한 계기는

약 6년 전,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 줬어요.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워낙 큰 일이라 그때의 취재기를 기록해 보면 좋겠다고 오랫동안 설득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용기가 안 났어요. 그 사건을 취재했던 때가 서른셋이었는데 제 경험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나 이렇게 잘했어요’라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쑥스럽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공격도 많이 받던 시절이라 한 마디 잘못했다가 다시 공격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출판사 편집자 님이 기다려준 거예요. 덕분에 원고를 조금씩 쓸 수 있었어요.


왜 지금 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대중 입장에서 언론의 힘이 점점 약해진 것 같고, 때때로 조롱거리가 되잖아요. 언론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로 가득하지만, 그것의 신빙성을 정제하는 과정은 훨씬 약한 경우가 많고요. 이런 시기일수록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뉴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좀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죠.


책을 쓰며 기자 초년 시절의 기억도 많이 돌아봤다고요

저도 놀랐어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건너왔을 때는 모든 게 신기하잖아요. 그때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어요. 내가 이렇게 재미있게 일했구나,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얼마나 절박하게 사람들에게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려 했는지 느껴졌죠.


언제부터 기자를 꿈꿨나요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했는데 대학 때는 영화나 시나리오 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그 부분에 있어서 ‘천재’도 아니고, 뚜렷한 진전도 없으니 안정적으로 글쓰는 직업으로 기자를 선택한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기자 일을 하면서도 가끔 스스로 영화나 연극 속 배역처럼 상상했다는 거예요. ‘나는 지금 저돌적인 기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거절당해도 덜 민망했어요(웃음).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 그런 마음이었죠.


이번 책을 펴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써 내려간 장면도 있을까요

국정농단 취재 때 취재원에게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야”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이 기억나요. 큰 기대 없이 만난 자리였어요. 최순실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상대가 살짝 힌트를 주는 거예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전율이 왔죠. 책에 ‘뱃속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고 썼는데, 정말 그랬어요. 이걸 어떻게 더 끌어낼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나 별로 관심 없어’라는 듯 편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해요.


그런 순간에 기자로서 본능적인 감각이 작동하나요

아무래도요. 겉으로는 담대한 척하지만 속으로 계산하죠. 상대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내가 어디까지 더 물을 수 있는지, 지금 관심을 보이면 문이 닫히지는 않을지. 취재란 결국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니까요.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꼽는다면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지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기자는 기사에서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되잖아요. 늘 저를 감추는 글쓰기만 해왔어요. 그런데 에세이는 저를 드러내야 하더군요. 제가 좋아하는 에세이들은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은 글이 많았어요.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막상 쓰려니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죠.


JTBC 최초 여성 ‘캡’으로 일하던 시절도 책에 등장하죠. 그 자리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시경 캡, 그러니까 경찰팀 기동팀장 역할이었어요. 언론사 안에서도 상징적인 자리이고, 팀장 가운데서도 가장 어린 편이었죠. 저는 잘하고 싶었어요. 누구보다 욕심도 많았고요. 제 밑에 팀원이 12명 정도 있었는데, 분야별로 업무를 배분하고 보고받고 다시 지시하는 일이 이어졌어요.


그 시기에 안면마비를 겪었다고요

네. 대통령실로 발령받은 시기에 안면마비가 왔어요. 정확한 원인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스트레스와 과로가 겹쳤다고 볼 수밖에 없었죠. 병가와 휴직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어요. 명상도 해보고, 책도 많이 읽고, 정신과 치료도 받으면서 처음으로 나를 돌아봤어요.


2017년 올해의 여기자상을 받은 직후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심수미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때는 정말 ‘부나방’처럼 일했어요. 후배들에게도 강하게 푸시했고요. 지금은 스위치를 잠깐 끄는 법을 알아요. 오늘 이 정도 했으면 여기까지 하고, 내일 생각하자고요.


10년 동안 언론을 향한 대중의 냉소도 커졌습니다.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좋은 기자는 민주주의 사회에 꼭 필요해요. 저는 좋은 기자가 있다는 인식을 대중이 좀 더 믿고 기사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언론에 대한 냉소를 조금이라도 걷어내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속보 경쟁과 SNS, AI가 맞물린 시대에 기자가 끝까지 지켜야 할 기준은 무엇일까요

전달 정보의 정확성이요. 결국 교차 검증이 필수적인 것 같아요. AI가 그럴듯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시대에는 인간이 직접 검증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어요. 있는 정보를 요약하고 가공하는 건 AI가 잘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어내고, 실시간으로 들은 내용을 판단하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검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있다면

이 사람이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정의로운 마음으로 알리는 경우도 있지만, 지분 다툼이나 자신의 문제를 감추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크로스 체크하고, 내부에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회의해야 하죠.


여성 기자로 살아오며 마주한 벽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성장할 때는 일하는 여성의 삶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지 않았어요. 육아휴직을 하고 퇴사하는 여성 선배들이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나도 아이를 낳으면 남자 동기보다 뒤처지겠구나’ ‘좀 더 편한 부서로 가게 되겠구나’ 하는 공포가 있었어요.


살면서 가장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임신을 결심한 순간이요. 정말 아이를 낳아도 될까 끝까지 고민했어요. 여성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기자로서 사는 것이 가정과 양립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일만 하면서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산 이후에도 다시 치열한 기자의 삶으로 나아가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가족이 생기면서 여러 개의 다리가 생긴 느낌이에요. 병가 중에 저에게 힘이 됐던 말이 있어요. ‘나를 지탱하는 다리가 여러 개여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요. 예전의 저는 일 하나로만 서 있었어요. 안면마비가 오고 일을 못하게 되니 ‘그럼 나의 존재가치는 뭘까?’ 하면서 무너졌죠. 그런데 지금은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취미도 있고, 여러 개의 다리가 생겼어요. 그래서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건 여러 다리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어떤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지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열심히 일하는 여자 선배들도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겪은 부끄러운 면이나 실수도 솔직하게 쓰려고 했어요. 이정표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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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찬
  • 사진가 엄지수
  • 헤어 아티스트 문민경
  • 메이크업 아티스트 문민경
  • 아트 디자이너 김민정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