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웹툰 '재혼 황후'를 만든 히어리·숨풀 작가 인터뷰

두 여자가 삶을 지탱하는 가장 우아한 투쟁의 기록.

프로필 by 정소진 2026.05.03

화려한 드레스와 장엄한 궁전, 정교한 예법과 차가운 시선이 교차하는 세계. 하지만 <재혼 황후>를 끝내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황실이라는 비현실적 배경이 아니라, 그 안에서 끝까지 삶의 품위를 지키려 애쓰는 인간의 욕망과 존엄이다. 각색가 히어리와 작화 작가 숨풀이 천착하는 지점은 인물의 감정이 가장 첨예해지는 곳, 곧 사랑보다 깊고 욕망보다 아픈 자기 보존 본능이다. <재혼 황후>는 판타지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가장 현실적이고 처절한 마음의 전장을 펼쳐 보인다.


알파타르트의 웹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각색한 로맨스 판타지 웹툰 <재혼 황후>. 완벽해 보이는 귀족적 세계관의 이면에서 두 작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히어리 화려한 복식과 건축물, 귀족 문화 같은 우아미를 사랑하지만, 결국 본질은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 군상에 있다. 나비에가 황후의 의무를 다하며 분투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지키려는 처절함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상황이라 흥미로웠다. 숨풀 원작의 방대한 서사 중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기준이 중요했다. 단순한 치정극을 넘어 여러 캐릭터의 서사가 입체적으로 확장되길 원했는데, 히어리 작가의 각색이 그런 균형을 정교하게 잡아줘 내 작화 취향과 결을 같이 할 수 있었다.


나비에와 하인리의 시선에는 다시 시작되는 감정의 찬란함이, 소비에슈와의 균열에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의 냉기가 서려 있다. 절제된 표정과 침묵, 균열 난 관계의 결까지도 우아하게 그려내고, 가장 비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나비에와 하인리의 시선에는 다시 시작되는 감정의 찬란함이, 소비에슈와의 균열에는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의 냉기가 서려 있다. 절제된 표정과 침묵, 균열 난 관계의 결까지도 우아하게 그려내고, 가장 비현실적인 세계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동대제국의 완벽한 황후 나비에는 남편 소비에슈가 정부인 라스타와의 배신으로 이혼당한 후, 서왕국의 왕 하인리와 재혼한다. 이혼과 재혼이라는 현실 소재를 판타지 밀도로 끌어올리는 동력은

숨풀 설정보다 인물의 감정에 주목한다. 욕망을 단편적으로 몰아붙이기보다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흘려 보내며 나름 균형을 찾아가려는 태도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것 같다. 히어리 단적으로 말해 ‘잘 살고 싶다’는 욕구다. 물질적 부를 넘어 무탈한 하루를 염원하는 마음, 그 평범한 소망을 지키기 위해 울고 불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작품에 투영했다.


나비에와 라스타, 상반된 두 여성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 나갈 때 결코 놓지 않으려 했던 핵심 정서는

히어리 ‘자기 삶을 지키려는 의지’다. 황후라는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재혼을 감행한 나비에나, 기적처럼 얻은 삶을 놓지 않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라스타나 생존을 향한 본질은 같다. 숨풀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 정확히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겠다. 사랑이나 복수 같은 감정 너머,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의 끝에는 결국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수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소비에슈와 하인리, 두 남주를 통해 투영하고 싶었던 사랑의 방식이 있다면

히어리 소비에슈는 당연했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이기적인 소유욕을, 하인리는 가질 수 없던 것을 얻었기에 상대를 배려하는 헌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같은 대상을 향한 서로 다른 태도가 명확히 대비되길 바랐다.


작화가 밀도 있게, 시대상을 살려 우아하게 연출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물의 실루엣부터 긍지 높은 표정까지, 비주얼 설계에서 우선순위는

숨풀 외형적 이미지와 감정적 분위기를 동시에 설계한다. 캐릭터의 인상뿐 아니라 감정 상태에 따라 표정의 디테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후 관계의 변화나 상황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시각화한다.


대사보다 표정과 침묵이 크게 작동하는 연출은 <재혼 황후>만의 미학적 힘이다. 연출하며 가장 공들인 장면은 무엇일까

히어리 감정이 극대화되는 장면에 공을 들였다. 나비에와 하인리의 재혼 장면은 찬란한 미래로 향하는 행복감을, 라스타의 최후는 폭발하는 감정의 농도를 담아내기 위해 PD 님과 여러 차례 논의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라스타는 순수한 기쁨부터 절망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 묘사된 표정을 통해 감정선을 강조할 기회가 많았다. 숨풀 히어리 작가 님의 말에 동의한다. 나 또한 라스타의 최후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캐릭터의 감정이 고조되거나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은 자연스럽게 연출과 작화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멈춰 있는 그림으로 눈동자의 떨림이나 무표정 속의 복잡한 심경을 전달하는 것은 늘 한계에 부딪히는 숙제다. 특히 황후의 위엄을 표현하기 위해 나비에는 빨강이나 파랑, 초록처럼 명도가 낮은 색채를 사용했고, 위엄이 강조돼야 하는 장면에서는 검정에 가까운 색채로 절제된 자세를 유지했다. 라스타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대비를 줬다. 눈매와 속눈썹, 머리카락 흐름 같은 미세한 차이가 인상의 핵심이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수정하며 다듬는다.


이 웅장한 신화를 완성해 온 두 작가가 사랑하는 ‘인간’의 모습이 궁금하다

히어리 영민하고 우아한 나비에도 좋지만, 박복한 팔자를 고치기 위해 아둥바둥 애쓰는 라스타 같은 인물에게 매력을 느낀다. 겉과 속이 다른 미인이라는 설정은 언제나 흥미롭고. 요즘은 하인리처럼 내 사람에게만 따뜻한 캐릭터나, 아픈 과거 속에서도 희망을 쥐고 나아가는 인물에 마음이 간다. 외모로 보면, 샤프한 이목구비의 미남은 시대를 막론한 취향인 것 같다. 숨풀 완벽함보다 결핍 있는 캐릭터에 매료된다. 나비에의 내면적 불안이나 라스타의 뒤틀린 욕망처럼, 미숙한 지점이 있는 인물들이 부딪히며 만드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선악을 떠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주체적인 ‘빌런’에게도 애정이 깊다.


이야기를 짓고 그리는 행위는 두 사람의 삶에 어떤 가치로 남았나

숨풀 일상에 스며든 흐름 그 자체다. 장기 연재의 체력적 압박과 번아웃 속에서도 그림 그리는 재미와 독자들의 반응이 큰 힘이 됐다. 캐릭터에 대한 깊은 애정이 완주의 원동력이었다. 다음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렬한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히어리 이야기의 본질은 삶이다. 정해진 분량에 서사를 함축하고 덜어내는 고뇌가 컸지만, 막막한 순간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의 짜릿함이 나를 움직였다. 자극적인 소재라도 작가로서 떳떳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다음에는 라스타처럼 밑바닥에서 정상을 향해 처절하게 싸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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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아트 디자이너 강연수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HERELEE·SUMPUL·ALPHA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