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러버의 샌프란시스코 스튜디오 아파트
MY SPACE ep.6 핀터레스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빈티지 감성의 샌프란시스코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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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7년 차, 미국에서는 9년째 살고 있는 은결이라고 합니다.
현재 IT 기업 로보틱스 분야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주말에는 빈티지 플리마켓을 다니며, 빈티지 소품 가구 등을 수집하고 홈스타일링 하는 걸 즐깁니다. 빈티지 옷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어서 새로운 빈티지 숍들을 찾고 디깅하는 게 취미입니다. 요즘에는 커피와 베이킹에도 빠져있어, 집에 있을 때면 홈베이킹 한 페이스트리와 푸어 오버를 즐겨요. 그리고 작년부터 재봉틀을 집에 들이게 되면서부터 간단한 소품은 만들어 쓴다든지 빈티지 옷을 고쳐 입는다든지 해요.
공간을 소개해 주세요
지금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혼자 5년째 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스튜디오는 방이 없는 원룸 형태의 집을 의미해요. 5년 전까지는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이곳은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갖게 된 저만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살면서 변화해 온 취향이 자연스럽게 쌓인 곳이라 애정이 커요. 여행하며 모은 아트 포스터로 갤러리 월을 만들고, 월급을 조금씩 모아 갖고 싶었던 가구를 들이기도 했습니다. 또 플리마켓에서 우연히 발견한 빈티지 피스들을 하나둘 데려오며, 이 집은 제 취향과 함께 천천히 성장해 온 공간이 된 것 같아요.
지금 공간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동네는 도그패치(Dogpatch)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샌프란시스코 안에서도 맑은 날이 많고 비교적 따뜻한 편이에요. 샌프란시스코는 ‘마이크로 클라이밋(micro-climate)’이라 불릴 만큼 동네마다 날씨가 조금씩 다른데요.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도 있지만, 제가 사는 곳처럼 비교적 맑은 동네도 있습니다. 이런 따뜻한 날씨가 이곳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해요.
반려동물은 없지만 동네 이름답게 산책하는 반려견들이 많아, 퇴근 후 동네를 달리는 시간이 작은 즐거움입니다. 도그패치는 오라클 파크까지 이어지는 항만(Port)을 따라 물가가 길게 펼쳐져 있어, 러닝을 할 때마다 해방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처음 공간을 계획할 때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리고 가장 신경쓴 부분은?
사실 처음 이사 올 때는 가구나 물건이 많지 않았어요.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집에서 가져온 이케아 가구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제 취향대로 공간을 바꿔나갔습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건 여행이었어요. LA의 임스 하우스, 헬싱키의 알토 하우스, 그리고 코펜하겐의 핀 율 하우스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곳들이에요. 빈티지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 게, 디자이너 들의 집을 볼 때마다 세월이 짙게 묻어있는 가구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공간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시간에 따라 변화한 나무색, 생활감 있는 자연스러운 스크래치가 누군가 살던 흔적과 스토리가 담긴 것 같아 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도 집에서 그때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싶어 그들의 집을 레퍼런스 삼아 꾸밀려고 노력해요.
또 다양한 디자인 편집숍과 갤러리, 브랜드 쇼룸도 홈스타일링을 할 때 자주 참고합니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마음에 드는 식기가 보이면 슬쩍 뒤집어 브랜드를 확인해 보기도 하고, 쇼룸에서는 어떤 가구를 사용했는지, 공간에 어떤 디테일을 더했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합니다.
집을 꾸밀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조화’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어떤 균형을 이루는지가 중요해요. 미드센추리나 재팬디 같은 특정 스타일을 따르기보다, 기존의 물건들 위에 변화하는 취향을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더해가는 편입니다.
거실, 침실, 주방, 작업실 등 각 공간의 특징을 꼽자면?
침실은 베딩의 소재나 색에 맞춰 스타일링을 바꾸는 편이에요. 뉴트럴 톤의 리넨 베딩을 사용할 때는 베드사이드 테이블도 우드 톤으로 맞추고, 쨍한 원색 베딩을 쓸 때는 팝한 컬러의 사이드 테이블로 균형을 맞춥니다.
사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 때는 1년 정도 침대 프레임 없이 지냈어요. 미국은 기본적으로 침대 프레임 높이가 꽤 높은 편이라 작은 집에 두면 답답해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Floyd의 플랫폼 침대를 발견했습니다. 낮은 플랫폼 형태라 집 분위기와 잘 어울렸어요. 다만 사회 초년생에게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다가, 중고장터에 올라온 걸 반값에 구매를 성공한 아이템입니다.
다이닝 공간은 면적이 큰 포스터로 분위기를 바꾸거나 펜던트 조명으로 수직적인 포인트를 더해 연출합니다. 직접 만든 식탁보나 빈티지 리넨을 활용해 테이블을 스타일링하기도 하고요. 핀 율의 리버시블 트레이도 자주 사용하는 아이템입니다. 좋아하는 오브제를 올려두거나 자주 쓰는 물건을 놓아두기도 합니다.
주방 한쪽에는 Montana 선반을 쌓아 작은 커피 스테이션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집이다 보니 이런 모듈형 가구가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거실은 아마 집에서 가장 화려한 공간일 거예요. 시작은 이케아의 PS 캐비닛이었습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컬러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싼 가구를 강한 색으로 들이면 금방 질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쨍한 블루 컬러의 이케아 캐비닛을 선택했습니다.
그다음으로 들인 컬러 아이템은 Matias Moellenbach의 오렌지 핑크 체커보드 러그입니다. 코펜하겐 여행 중 우연히 들어간 쇼룸에서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채도가 있는 컬러지만 Jute 특유의 질감 덕분에 이질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납니다. 벼르다가 결국 생일선물로 받게 되었고, 배송은 6개월이나 걸렸어요.
캐비닛과 러그를 놓고 나니 회색 라운지 소파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파는 친구에게 저렴하게 받아온 이케아 제품인데, 워낙 편해서 새로 바꾸기보다는 패브릭을 교체하기로 했어요. 오렌지 브라운 컬러의 코듀로이 패브릭으로 바꾸니 거실이 한층 완성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갤러리 월과 선반 배치, 커피 테이블과 작은 라운지 체어 등을 더해가며 조금씩 변주를 주고 있습니다.
가구와 의류 등 다양한 빈티지 아이템을 좋아하게된 계기가 있다면?
돌이켜 보면 미국으로 유학을 오면서부터 중고 물품이나 빈티지 아이템을 접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세컨핸드 물건들을 구매했습니다. 미국 동부에서 공부하고 남부에서 인턴을 한 뒤 다시 서부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가구나 옷은 쉽게 사고 쉽게 팔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었어요.
그러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면서 다양한 빈티지 숍을 접하게 됐습니다.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데 익숙해진 덕분인지 빈티지의 세계에도 자연스럽게 들어서게 된 것 같아요.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라고 해서 거부감이 들기보다, 오히려 세월이 남긴 흔적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미션 돌로레스 파크 근처에서 우연히 들렀던 빈티지 팝업을 시작으로, 지금은 문을 닫은 'Farnsworth' 빈티지 가구 숍 등 주말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관심 있는 디자인이나 물건들을 디깅하며 조금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빈티지 아이템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빈티지는 덕질의 영역인 것 같아요. 많이 알수록 사고 싶은 물건이 더 또렷해지거든요. 디자이너의 빈티지 제품일 수도 있고, 아프리칸 마스크처럼 에스닉한 앤티크일 수도 있죠. 관심을 갖고 보다 보면 나무 소재가 무엇인지, 이 디자인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시그니처가 있는지 없는지 같은 것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빈티지는 판매자가 가격을 정하기도 하지만, 나름의 시장 가격이 형성되어 있어요. 그 적정가를 알고 있어야 셀러가 비싸게 파는지, 아니면 좋은 가격인지 판단할 수 있고 네고도 가능하죠. 다만 그 기준을 알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거나 시행착오를 겪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검색으로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어설프게 알면 찾아봐도 확신이 잘 들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이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것도 결국 빈티지인 것 같아요. 빈티지는 결국 물건에 담긴 스토리를 사는 일이니까요. 저는 빈티지 플리마켓에 가면 셀러들과 나누는 스몰토크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거든요.
예전에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임스 다이닝 체어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판매자가 임스 가구 컬렉터였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 구경도 시켜주고 임스 가구 복원 방법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산 체어에는 홈이 두 개 있었는데, 반려견이 문 자국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홈이 흠처럼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귀엽게 보였습니다. 이런 경험이 빈티지를 사는 재미가 아닐까 싶어요.
추천하고 싶은 샌프란시스코의 빈티지 가구숍이나 편집숍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숍은 정말 많지만,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며 이 지역의 로컬 디자인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Heath Ceramics를 추천하고 싶어요. 금문교를 건너면 나오는 소살리토 지역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컬러감 있는 유약을 활용한 도자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허먼밀러나 아르텍과 협업할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특히 샌프란시스코 미션에 위치한 Heath Ceramics 지점을 추천합니다. 같은 건물에 있는 Tartine Manufactory에서 브런치나 페이스트리를 주문하면 Heath 그릇에 서빙해 주기 때문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거든요. 또 소살리토 본점에서는 세컨드 퀄리티 제품을 비교적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예정이고 빈티지 가구에 관심이 있다면, 오클랜드 지역의 빈티지 숍들을 추천합니다. Narrative는 한 달에 한 번 오클랜드 빈티지 플리마켓을 주최할 만큼 다양한 벤더들이 입점해 있는 곳이에요. 가구뿐 아니라 재미있는 소품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Piecemeal Vintage를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빈티지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Ashbury Heights 동네를 추천해요. 지금은 샌프란시스코가 ‘테크 브로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실리콘밸리가 자리 잡기 전에는 히피 문화의 중심지였거든요. 그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이 동네입니다.
Relic Vintage나 Decades of Fashion에 가면 한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1920년대부터 70~80년대까지의 미국 빈티지 의류를 구경할 수 있어요. 구경보다는 실제 쇼핑을 위한 빈티지 숍으로는 Held Over, Fuzz & Sway, Deadend Vintage, Vanishing Points를 자주 찾습니다.
최근 구매한 인테리어, 리빙 아이템은?
최근 구매한 소소한 리빙 아이템으로는 빈티지 벽걸이형 캔들 홀더가 있어요. 초는 자주 태우는 편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캔들 홀더만 보면 모으게 되더라고요. 공간에 수직적인 포인트를 더하고 싶을 때 자주 활용하는 아이템입니다.
이 제품은 화려한 패턴이 있지만 소재에서 오는 절제된 느낌이 좋아 구매하게 되었어요. 무쇠 특유의 묵직함이 패턴의 화려함을 눌러줘서 꽤 시크한 분위기가 납니다. 벽걸이형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어요. 요즘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형태거든요.
공간을 채운 사물 중 각별한 애정을 지닌 가구나 오브제는?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모아온 임스 컬렉션입니다. 임스 가구는 디자이너 가구의 입문 아이템으로 불리기도 하고 dupe 제품도 많아 대중적인 편이지만, 저에게는 사회 초년생 시절 월급을 모아 처음 장만했던 기억이 있어 더욱 각별해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에 스스로에게 좋은 의자를 선물하고 싶어 고민 끝에 구매한 첫 임스 LCW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디자이너 가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서 LA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임스 하우스를 방문했고, 북유럽 여행 중에도 알바 알토 하우스, 핀 율 하우스, 디자인 뮤지엄 등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빈티지 임스 피스들도 하나씩 모으고 있습니다.
컬렉션 중 가장 최근에 큰맘 먹고 구매한 것은 허먼밀러의 임스 데스크 유닛입니다. 스토리지 유닛과 고민하다 내구성을 고려해 데스크를 선택했는데, 사실 이 디자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임스 하우스를 방문한 이후부터였어요. 모듈형 직사각형 패널로 이루어진 집이지만, 임스 부부 특유의 컬러와 위트 있는 인테리어가 공간에 따뜻함을 더해주더라고요. 임스 데스크 역시 같은 시기에 같은 철학으로 디자인된 제품으로, 알록달록한 패널이 공간에 활기를 더해줍니다. 언젠가 임스 하우스 같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들이게 된 물건입니다.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가구나 리빙 아이템이 있다면?
지금 가장 갖고 싶은 건 좋은 펜던트 조명이에요. 현재 아파트에서는 못을 박는 게 조심스러워 가벼운 페이퍼 램프 정도만 달 수 있거든요.
Vaarnii의 펜던트 조명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집 여건상 결국 구매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이케아에서 비슷한 느낌의 조명을 찾아 달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조명 하나가 공간의 분위기를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알기 때문에, 언젠가 마음껏 조명을 달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들이고 싶은 아이템입니다.
집에서 가장 애정하거나 애착이 가는 스폿을 꼽자면?
가장 애정하는 스폿은 다이닝 테이블이에요. 집이 작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테이블이 공간의 중심이 됐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재봉틀을 꺼내 작업을 하고, 제빵 반죽도 이 위에서 해요. 친구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하나의 테이블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는 셈이죠.
그만큼 테이블 주변을 꾸미는 데도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다이닝 체어를 정기적으로 바꿔주기도 하고, 배경이 되는 포스터도 간간이 교체해요. 테이블 위에는 꽃이나 오브제를 올려두거나 빈티지 리넨 같은 패브릭을 활용하기도 하고요. 공간 전체를 바꾸지 않아도 주변만 조금씩 손봐주는 것만으로 집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작은 공간의 한계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 점이 좋아요. 모든 일상이 한자리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이 테이블이 집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 된 것 같아요.
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대는 언제인지, 그리고 집안에서 가장 편안한 순간은?
집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오전 10시쯤, 햇살이 한창 들어오는 순간이에요. 하루가 시작되는 그 시간, 빛이 공간을 가득 채워가는 모습이 좋아요.
가장 편안한 순간은 커피를 직접 내릴 때입니다. 콩을 갈고, 오늘은 푸어 오버를 할지 에스프레소를 내릴지 고민하는 그 시간마저 좋아요.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작은 선택과 과정 하나하나가 하루를 천천히 시작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근처 베이커리에서 사 온 크루아상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고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과 삶이 지금의 취향이나 공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샌프란시스코는 제 취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7년 정도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 도시의 감각이 스며든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뒤섞이는 도시 특성상, 한 가지 스타일로 정의되지 않는 사람과 공간에 익숙해졌어요. 한국에서 다양성을 10이라고 한다면, 미국은 100가지의 다른 유형의 사람과 문화가 존재하는 느낌이랄까요. 어느 쪽이 더 좋다기보다,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 점이 늘 새로운 영감을 주곤 합니다.
또 샌프란시스코는 한국처럼 유행의 속도가 빠른 곳은 아니에요. 덕분에 트렌드에 조금 더 무던해질 수 있었고, 저만의 취향을 찾아가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공간을 정의(대표)하는 키워드를 3가지 꼽자면?
타임리스, 위트, 믹스 앤 매치
공간에서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는 포인트가 있다면?
공간에서 가장 나답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딘가 반전이나 위트가 숨어 있는 물건들을 곳곳에 들여놓은 점입니다.
롤러블레이드 바퀴가 달린 빈티지 이케아 램프라든지, 접합부를 스크류 형태로 만들어 높이 조절이 가능한 Hem의 나무 스툴처럼 기능과 유머가 동시에 담긴 디자인에 특히 끌립니다.
배치에서 오는 언밸런스도 좋아해요. 모로칸 스툴이나 아프리칸 마스크 같은 에스닉한 앤티크 오브제를, 미드 센츄리 가구나 스페이스 에이지 특유의 팝한 컬러감을 지닌 모던한 가구 옆에 나란히 두는 식으로요. 시대, 문화, 무드가 다른 것들이 한 공간에 공존할 때 생기는 묘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딱 떨어지게 정돈된 공간보다는, 보는 사람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다가 점점 의도를 발견해가는 재미가 있는 공간을 지향해요. 너무 완성되어 보이지 않는, 약간의 의외성이 남아 있는 공간이 저답다고 느끼는 지점입니다.
앞으로 공간에 더해보고 싶은 변화는?
지금의 공간과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링도 언젠가 시도해 보고 싶어요. 맥시멀리스트이지만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하고 있달까요.
지금은 컬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인데, 언젠가는 훨씬 정제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컬러는 포인트로만 남기고, 여백과 소재 자체의 질감으로 공간을 채우는 방식이요. 지금처럼 곳곳에 발견의 재미를 숨겨두되, 전체적인 톤은 훨씬 조용한 공간이 된다면 어떨지 궁금합니다.
Credit
- 사진&글 @eunkye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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