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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은 셰프가 만약 '흑백요리사2'에 흑수저로 참가했다면?

낯선 맛을 익숙하게 만드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라 말하는 김희은은 계절과 장의 깊이로 자신을 다시 세운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6.01.30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 참여한 김희은 셰프 인터뷰
  • 만약 '흑백요리사2'에 백수저가 아니라 흑수저로 참가했다면?
  • 김희은 셰프가 제일 사랑하는 메뉴
  • 요리사로서 길을 개척하기까지,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
트랙 재킷과 플리츠스커트는 모두 Willy Chavaria x Adidas Originals by M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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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에서 오래 보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나요

2025년부터 번아웃이 왔어요. 레스토랑을 7년 정도 운영했는데, 5년 차부터 번아웃이 시작됐죠. 매일이 전쟁이었고, 손님과 직원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했어요. 그런 와중에 방송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자극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를 향한 질타조차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번아웃을 이겨내려는 시도이자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번아웃이 온 것 같아요(웃음).


아쉬운 건 없었나요. 못 보여줘서 마음에 남는 요리나 전략이 있다면

가끔 생각해요. 만약 백수저가 아니라 흑수저로 참가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흑수저는 대중과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잘 묻어나는 요리를 선보이잖아요. 저는 그런 과정 없이 부전승으로 올라 그런 기회가 없었고, 주어진 미션에 맞춰 요리를 공부해야 했죠. 만약 기회가 주어졌다면 홍시설화를 선보였을 것 같아요. 홍시설화가 제 색깔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가진 스펙트럼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김과 마스카포네를 섞은 ‘미세스 김전복’.

김과 마스카포네를 섞은 ‘미세스 김전복’.

현재 이끌고 있는 '소울 다이닝' 주방의 바이브는 어떤가요

요즘 제 신조어가 ‘캔, 캔, 캔(Can, Can, Can)’이에요. 무작정 하자고 외치며 노동력을 착취하자는 뜻은 아니고요. 제가 바꿀 수 없는 건 결국 시간뿐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한 끗 차이, 이를테면 ‘나는 이 정도까지만 할래’로 시작하느냐 ‘이거 조금만 더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출발선의 태도가 달라지고, 결과물도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15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냥’과 ‘적당히’거든요. 스스로 타협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직원들이 실수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령을 피우면 정말 혼냅니다. 그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니까요. 주방의 바이브도 마찬가지예요. “요령 부리지 말고, 네 한계를 그렇게 단정 짓지 말자.” 이건 명령이라기보다 각자의 성장을 끌어내기 위한 말이라 직원들 눈빛이 반짝반짝해져요.


후배들이 더 커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해왔습니다. 그 마음에는 ‘과거의 내’가 투영돼 있나요

맞아요. ‘나도 그런 선배나 손님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면서 제 신념을 확고하게 다지는 편인데,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롤모델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거죠. 지금은 제가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과감하게 집을 나와 요리사로서 길을 개척하기까지, 시작점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나요

명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제 안에서 요리도 잘할 것 같다는 작은 확신이 꿈틀댔던 것 같아요. 할머니와 엄마 모두 손맛이 좋으셨거든요. 그래서인지 미각과 후각이 발달했고요. 요리할 때는 밑간이 중요한데, 저는 간에 민감해요. 간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감칠맛이나 당도 같은 요소, 말하자면 오각형의 균형을 잘 맞춘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그런 확신이 더 단단해졌어요.


'소울 다이닝'은 계절별로 메뉴가 달라집니다. 유독 애정하는 제철 식재료가 있다면

계절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봄을 제일 좋아해요. 봄에는 생명력 있는 재료들이 여기저기서 ‘나 여기 있어, 먹어봐!’ 하며 손을 흔드는 것 같거든요. 봄나물 중에서는 냉이, 달래, 원추리를 좋아해요. 딱 2주 정도만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 더 소중하죠. 갈치처럼 감칠맛 있는 생선도 좋아하고, 전복이나 곱창 김도 좋아합니다.


좋은 식재료를 찾다 보면 생산 과정에 담긴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기도 하죠

제 가치관을 바꾼 식재료는 장이에요. 대중은 마트에서 파는 브랜드 장을 쓰지만, 그 장맛과 제가 직접 담근 장은 맛이 많이 달라요. 대중에게 익숙한 장과 메주로 띄워 완성한 장을 비교하면 발효 취도 다르고, 연도와 강도도 차이가 나요. 장은 한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이고, 장을 연구해 온 명인들도 많습니다. 예전에 담양의 기순도 명인님을 방문했을 때 간장∙ 고추장∙ 된장∙ 조청 등 갖가지 장으로 만든 간단한 요리를 내어주셨는데, 깊이감이 완전히 달랐어요. 화려한 조미료나 테크닉보다 중요한 건 '장'이더라고요. 요리를 하려면 무조건 장에 대해 알고 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장은 아무리 공부해도 끝이 없을 것 같지만요.


당시 기순도 명인님이 내어준 요리는 어떤 것들이었나요

7월, 딱 한 철에만 나는 대나무 죽순으로 전과 불고기를 만들어주셨어요. 식감이 아삭아삭했고, 담백해서 정말 맛있었죠. 파인 다이닝 셰프로서 대중이 원하는 화려하고 예쁜 플레이팅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 이후로 ‘장’의 중요성에 몰입하고 싶었어요.


대하잣즙냉채인 꽃단장.

대하잣즙냉채인 꽃단장.

장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한가요

숙성 기간에 따라 정말 달라요. 예를 들면 염도가 굉장히 짠 데도 맑은 청장으로 나물을 하면 정말 맛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진장인데, 원래 ‘진장’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해요. 진간장과 다른 진장은 청장에 비해 염도는 낮지만 약간 끈적하고, 감칠맛이 훌륭하죠. 저는 우엉과 진장을 넣은 연근조림을 더한 ‘뿌리’ 디저트를 개발했고, 이 메뉴를 업그레이드해 올가을에 선보이려 해요. 고추장은 곡식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조청 같은 청도 마찬가지예요. 장과 청에서 스펙트럼을 넓히고, 디저트와 결합해 생경하지만 조화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서 잃지 않으려는 철학이 있다면 한식은 한국의 음식뿐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식문화 그 자체를 한식으로 보려고 하죠.


'소울 다이닝'의 코스 마지막을 ‘국수’로 배치한 것도 한국의 식문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요

맞습니다. 한국인은 고기를 먹고 나면 자연스럽게 ‘냉면이 당긴다’는 흐름에 공감하잖아요(웃음).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파인 다이닝에 한식의 재미 요소를 슬쩍 넣는 거죠. 제가 그레이비 소스를 처음 먹었을 때 ‘이게 무슨 맛이지?ʼ라고 생각했거든요. 데이터가 없으니 ‘맞는 맛’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새롭지만 제대로 느끼기에는 힘들었어요. 이렇듯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서양 요리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하려면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 장치가 바로 내가 자라며 먹어온 음식의 데이터였고요. 그 데이터를 건드릴 때 비로소 직관적으로 맛을 느낄 수 있거든요. 공감대라고도 할 수 있겠죠.


내 레서피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메뉴를 뽑는 건 너무 힘든 과제겠죠

그럼요. 어떤 자식이 제일 예쁘냐는 말과 같아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디저트 메뉴인 ‘도자기’를 애정합니다. 언젠가 들었던 “이 레스토랑에 디저트가 부족해”라는 말이 꽤 큰 자극이었어요. “그럼 내가 나서서 해야지!” 싶었죠. 디저트 전공자가 아니라서 쉬는 날이면 디저트 클래스에 출석했고, 글로벌 클래스도 경험하면서 재미를 느꼈어요. 그러다 5년 정도 몸이 많이 상했어요.디저트도 잘하는 셰프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으니까요. 디저트 ‘도자기’의 출발점은 잣입니다. 우리나라가 종주국인 잣을 중심으로 디저트를 풀어보기 위해 개발한 메뉴이고, 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곡선미를 표현하기 위해 달 항아리를 택했어요.


평소 선보이는 홍시설화를 비롯해 디저트의 아티스틱한 플레이팅이 인상적입니다. 음식을 디자인하는 셰프님만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영감 포인트는 어디에나 존재하죠. 경험과 대화, 다른 레스토랑에서의 미식 경험, 책 등 아주 다채로워요. 아마 모든 셰프들이 이런 것에서 영감을 얻을 겁니다. 저만의 요리 디자인 방식이라면 그릇을 꼽을 수 있겠네요. 도예를 전공해서인지 기물을 보면 식자재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지금 눈앞에 놓인 하얀 종이컵만 봐도, 매트한 질감과 색감 때문에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나 백미 같은 게 생각나는 것처럼요.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물음표는 무엇입니까

‘다음‘이에요. 저는 성장 욕구가 강한 사람이거든요. 욕심과 열정의 차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라고 봐요. 열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가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 더 잘하는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랬을 때 제 다음은 비즈니스적으로 엮여 있는 것도 많지만 결국은 더 깊이 있게 좋은 사람이 되자는 거예요. 그리고 또 다음, 또 다음으로 가는 거죠.


음식과 요리는 셰프님의 삶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그걸 빼놓고 김희은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올바른 사람이 돼야 좋은 요리가 나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예요. 스트레스로 쥐어 짜내는 음식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싶고, 그 마음은 분명히 손님에게도 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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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정소진
  • 사진가 곽기곤 · Christophe Coënon
  • 스타일리스트 이정현
  •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서채원 · 이현정 · 최경민 · 정지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