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2에 '사찰음식 대가' 선재스님이 참여한 이유
미나리를 보듬는 손끝에서 선재스님의 맛이 시작된다. 사찰 음식은 마음이고, 요리는 수행이다. 그러니 한 그릇을 완성하는 일은 결국 재료가 아닌 자신을 다스리는 일.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시즌2'에 참여한 '사찰 음식의 대가' 선재스님 인터뷰
- 선재스님이 '흑백요리사2' 참여를 결심한 이유는?
- '흑백요리사2'에서 선보인 당근 국수 요리 비하인드
- 선재스님이 생각하는 사찰 음식의 매력과 '맛있다'의 기준
고요한 공간에서 요리해 오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2>)에 참여했습니다. ‘이겨야 하는 요리’와 ‘비워내는 수행’은 꽤 상반되는데, 마음이 어지럽지는 않으셨나요
사찰에서 고요한 수행을 하려면 밖에서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여럿이 농사를 짓고, 밑반찬을 준비하고, 큰 날에는 연잎밥을 5000개씩 싸기도 하죠. 절 부엌에는 수시로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져요. 그러니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그저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죠. 농사를 짓든, 법당에서 목탁을 치든, 음식을 만들든, 밥을 먹든 모두 제게는 수행이에요. 그 과정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니까요. <흑백요리사2> 조리대도 나의 색다른 ‘도반’이자 수행터이니 즐겁고 행복하게 했어요.
식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재료가 있나요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키워서 어디에서 여기까지 왔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저는 작은 텃밭에서 직접 식재료를 키우는데 물을 많이 주지 않아요. 그저 잘 견디는 놈만 키우는 거죠. 그래서 알맹이도 작고, 배추도 짜고 질긴 편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자란 것들로 김치를 담그면 한참 지나도 물리지 않고, 오래 버텨줍니다.
사찰 음식의 대가로 불리는 스님께서 직접 느낀 사찰 음식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힐링 푸드’ ‘클린 푸드’ ‘채식’ 등으로 불리지만 사실 채식과는 접근방식이 아예 달라요
자연식이라고 하면 편할 겁니다. 육류나 어패류는 동적이고, 첨가제가 들어간 음식은 몸을 흥분시켜요.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닙니다. 수행하는 스님에게는 마음을 정적으로 만드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계절을 거슬러 음식을 만들면 땅과 에너지, 공기가 파괴되고 식재료도 온전하지 않아요. 그러니 더울 때는 더위를 견디는 음식, 추울 때는 추위를 견디는 음식을 먹어야 온전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을 넘어서는 거죠. 음식 개념과 분류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 다르지만, 먹는 일은 똑같아요. 먹기 위해 누군가 요리를 해야 되고, 그렇다면 식재료가 필요하고, 그 식재료는 자연에서 옵니다. 맑고 건강한 식재료는 땅과 바람, 햇빛이 맑고 건강할 때 얻을 수 있고요. 그러니 생명을 아우르는 것을 사찰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불교에서는 밥을 1시간 이상 먹습니다. 먹는 시간은 10~15분 정도이고, 나머지는 기도 시간입니다.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만들어준 사람과 농사지은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합니다. 그러니 사찰 음식은 생명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릇에 담는 일이에요.
능이버섯뭇국과 연자밥.
사찰 음식은 나라별로 형태가 다르고, 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사원 발달과 함께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대부분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한국 사찰 음식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행 환경 자체가 다르기에 고유한 특징이 있죠. 한국 사찰 음식은 남방불교 문화권인 태국이나 라오스, 미얀마처럼 탁발 구조가 아니라 스님들이 산중에서 생활하며 자급자족하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태가 갖춰졌습니다. 불교의 첫 계율인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 아래 채식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영양을 보완하기 위해 콩 활용법이 발달했고 계절 변화에 따라 저장 문화도 깊어졌습니다. 채식은 육류나 생선에 비해 맛과 아미노산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그 맛을 채우기 위해 탄생한 것이 장 문화였고요. 채소와 약초는 몸을 통하게 하는 ‘약’이지만 때로는 독한 성질도 있습니다. 발효는 이 모든 과정을 도와줍니다. 어린 생강나무 잎은 뻣뻣한데 그걸 차로 만들고, 찹쌀을 삭혀 풀을 쒀서 발라 말렸다 튀기면 껍질을 그냥 먹을 수 있어요. 튀각과 부각도 이런 맥락으로 탄생했고요. 선불교 방식을 따르는 한국은 스님의 수행을 돕는 방향으로 음식이 발달해 왔습니다. 일본은 정진 요리, 대만은 채식 중심, 태국이나 미얀마처럼 탁발 문화가 남아 있는 나라들은 육식도 허용하기도 합니다.
좁쌀알타리김치.
사찰 음식의 시작은 ‘장을 담그는 것’이라죠. 어느 계절에 담가 발효를 시작해야 합니까
음력 1월, 정월에 담급니다. 사찰에서는 장을 꽤 짜게 먹는데요. 스님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는 짠맛의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소금과 물, 콩으로 만든 메주와 항아리에서 나오는 짠맛이죠. 겉으로는 짜게 느껴질 수 있어도, 발효된 짠맛은 일반적인 짠맛과는 결이 다릅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짜지 않아 보여도 소금의 짠맛에 여러 재료가 섞여 있어 몸이 그것을 분해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열이 나서 갈증이 생기죠. 반면 장에서 오는 짠맛은 먹고 나면 뒤끝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단맛은 조청이에요. 쌀과 보리 등의 곡류가 엿기름에 삭고 고아서 만들어지는 일 말입니다.
25세에 출가하셨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스님께서 처음 사찰 음식을 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첫 맛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아주 어릴 때 시제를 구경한 적 있어요. 스님들이 이것저것 음식을 해 오셨거든요. 그때 먹었던 주악과 약과, 타래 맛이 잊히지 않습니다. 튀각과 부각도 참 맛있었죠. 이후 친구들과 수원 용주사로 놀러 갔을 때 달랑무김치를 처음 먹었습니다. 얼마나 짠지 밥 한 그릇을 총각무 하나로 해치웠죠. 스님께 어째 총각무가 이렇게 짜냐고, 우리가 식품영양학과에 가서 스님 식단을 짜드리자고 말했던 기억이 있네요(웃음). 스님들은 그 음식을 먹고 오래 사시면서 수행을 잘하셨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우연히 저를 출가시켜 준 스님의 절에 갔습니다. 호박과 풋고추만 들어간 짭짤한 된장찌개를 벌벌 끓이고, 고추장과 참기름에 미역귀를 무쳐주셨는데 그렇게 맛있더군요. 지금도 그때 노스님이 끓여 주신 된장찌개가 생각나 한 번씩 끓여 먹어요.
집안 내력으로 간경화를 앓다가 사찰 음식으로 치유했고, 결국 구도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해왔습니다. 저서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에는 신흥사 청소년수련원에서 청소년들을 음식으로 변화시킨 일이나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치유하는 일화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 그것이 불교 수행식의 기본이에요. 그래서 스님들이 수행할 때 드시는 음식을 마음 아픈 아이들에게 적용하곤 합니다. 음식은 절대적입니다. 그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도 나누고 이야기도 나누죠. 부모들은 이렇게 핑계를 대요. ‘우리 아이는 너무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고요. 그럼 저는 “아이와 같이 음식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합니다. 음식을 만들어 아이에게 전해주면 가족의 마음까지 반드시 전해진다고 얘기 하면서요. 자기가 충만하면 결코 타인과 싸우지 않습니다.
사찰 음식은 소박한 재료로 자연의 풍미가 살아 있는 독특한 맛의 경지를 이뤘지만, 마늘과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오신채는 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특유의 풍부한 맛은 어디서 나오나요
좋은 식재료를 쓰는 것이 기본이고, 그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내야 해요. 간장은 채소의 거친 맛을 제거해 주죠. 무청을 삶으면 나는 특유의 냄새도 3년 된 된장에 버무리면 거친 맛이 없어지면서 맛있게 변해요. 된장찌개를 끓일 때는 약효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재료가 다 끓은 다음 마지막에 된장을 풉니다. 채소를 다 익힌 다음 넣거나, 잘게 썰거나 비벼서 마지막에 넣어 포르르 끓이면 떫은맛도 없어져요. 조리법에서도 차이가 나요. 어떻게 하면 약효와 맛, 향기를 사람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파와 마늘은 향이 강한 음식이죠. 콩나물무침에 파와 마늘을 빼면 콩나물 맛이 느껴지고, 우엉 요리에 아무것도 넣지 않으면 우엉 맛이 느껴질 거예요.
<흑백요리사2>에서 선보인, 소금 간을 하지 않고 선보인 당근 국수 요리가 생각나네요(웃음)
그 요리를 하면서 고민한 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당근을 잘 먹게 만들까?’였습니다. 점수나 평가를 의식하기보다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당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어요. 등수를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겠죠. 그것이 제가 <흑백요리사2>에 나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채소는 익힘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당근이나 배추는 살짝 익히면 단맛이 확 올라오고, 우엉은 조금 더 볶아야 맛이 살아납니다. 호박전을 그냥 썰어 부치면 안 먹는 아이가 많은데, 그럴 땐 호박을 갈아 소금과 밀가루를 넣고 부쳐주면 잘 먹습니다. 아이들이 호박을 싫어하는 건 호박 자체가 아니라 호박을 처음 만난 방식이 어색했기 때문일 거예요.
호박이라는 식재료를 태초부터 느끼고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스님에게도 첫 맛이 있듯, 재료에 대한 ‘첫 맛’이 정말 중요한가요
아이는 고소한 계란 맛을 먼저 기억하는데 계란과 호박이 만나면 호박의 단맛 때문에 계란의 비린 향이 더 올라오거든요. 그러면 아이는 그 비린내가 호박에서 난다고 생각하고 호박을 멀리하는 거죠. 채소를 ‘숨겨서 먹이는 것’보다 채소의 본질을 먼저 알게 하는 방식이 중요해요. 저는 절에서 아이들과 아침밥을 먹고 뜰에 나가면 이슬 맺힌 호박을 보여줍니다. 너는 이 호박처럼 천둥번개를 견뎌봤는지, 뜨거운 태양을 견뎠는지 물어요. 호박을 보는 기쁨을 알아야 비로소 호박을 먹는 마음도 열리거든요. 아이들에게도 음식을 해주고 저는 심사를 받습니다(웃음).
스님께 ‘맛’이라는 건 무엇인가요? ‘맛있다’는 기준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불교에서 말하는 음식의 ‘맛’은 ‘무(無) 맛’에 가까워요. 물이 아무 맛도 없기에 가장 완벽한 것처럼. 결국 맛의 기준은 각자 다르고, 입맛은 혀보다 ‘생각’이 바뀔 때 함께 바뀝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모든 음식이 곧 ‘약’이라고 말해요. 환자가 먹는 음식도, 건강한 사람이 먹는 음식도 다 약인 셈이죠.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의사에 비유합니다. 먹는 사람에게 약이 되도록 음식을 만들었는지, 또 식재료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인연과 자연의 생명에 충분히 감사했는지 고려하는 것, 그게 맛이에요.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정소진
- 사진가 곽기곤 · Christophe Coënon
- 스타일리스트 이정현
-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서채원 · 이현정 · 최경민 · 정지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엘르 비디오
엘르와 만난 스타들의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