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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미슐랭 2스타 셰프가 느낀 파인다이닝 트렌드

이준의 요리는 기술보다 판단에 가깝다. 언제 만들고, 언제 내놓고, 언제 멈출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다.

프로필 by 전혜진 2026.01.31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 참여한 백수저 이준 셰프 인터뷰
  • 뉴욕 3스타 레스토랑에서 경험하고 깨달은 것은?
  • 이준 셰프가 연구소처럼 주방 공간을 디자인한 이유
  • 이준 셰프가 체감하는 파인 다이닝 트렌드
블랙 케이프는 Julius.

블랙 케이프는 Julius.

지난해는 유의미한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2026 월드 베스트 1000 레스토랑’에 등재되고 <미쉐린 가이드> 2스타를 유지하는 ‘스와니예’에, ‘도우룸 광화문’ 오픈부터 <흑백요리사2>까지 다채로운 행보가 이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웃기게도, 저는 지난해를 떠올리면 ‘코로나’가 계속 생각나요. 코로나가 2022년에 거의 끝나고, 스와니예가 2023년에 신사동으로 매장을 옮긴 뒤 조금씩 회복하다가, 2025년에 ‘아, 이제 완전히 거기서 벗어났구나’를 실감했거든요. 가게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었다기보다, 브랜드가 한 번 최고점까지 올라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제 ‘점프업’ 해 보자는 마음으로 매장도 두 군데 열었고, 공교롭게도 방송 출연까지 이어지면서 지난해는 ‘뭐든 해볼 수 있는 해’ 같았습니다.


통유리 오픈 키친의 스와니예, 광화문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 도우룸 광화문, 담백한 루드베키아. 셰프님이 꾸린 식당 세 곳은 저마다 개성이 뚜렷하지만, 공간과 주방에 있어서는 한 곳으로 뭉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주방을 연구소처럼 보기도 하고, 공방이나 아틀리에처럼 보기도 해요. 주방은 결국 ‘창작하는 공간’이니까요. 중요한 건 공간이 사람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무균실 같은 공간에선 반도체를 만들 것 같고, 도구가 사방에 널린 공간이면 구두나 시계를 만들 것 같잖아요. 그런 환경이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주방을 디자인할 때도 “우리는 이런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디테일을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분위기를 의도합니다.


오징어와 사과.

오징어와 사과.

전설적인 셰프 토머스 켈러의 ‘퍼 세’와 ‘링컨’의 주방에서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뉴욕 현지 <미쉐린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의 철학에 스며들 수 있었죠. 이 경험은 어떤 기술을 안겨줬습니까

결국 마음가짐을 배웠어요. ‘셰프는 이래야 된다’는 태도요. 셰프로서 어떻게 일에 임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전달해야 하는지, 그걸 통해 요리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배운 거죠. 제 커리어 과정은 좀 특이해요. ‘퍼 세’에서는 정직원이 아니라 스타지로 시작해서 거의 1년 반 동안 일했고, 그 다음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어요. 일을 잘하니까 암묵적으로 역할은 커지는데, 서류상 직책은 낮은 상태였죠. 그러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다 한국에 와서 곧바로 팝업을 열었고, 직후 ‘스와니예’ 론칭으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더 확신하게 됐죠. 기술은 비교적 빨리 따라잡을 수 있지만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철학은 어렵게 배울 수밖에 없다는 걸요. 그걸 ‘퍼 세’에서 배웠습니다.


‘스와니예'에서 지키고 있는 핵심 감각은 무엇입니까

‘퍼 세’ 그룹만의 문구가 하나 있어요. 한국어로 깔끔하게 번역이 안 되더라고요.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배가 너무 아픈데 화장실을 찾아야 할 때의 긴박함 같은 느낌이랄까요. 주방에서 그 문장이 뜻하는 건 명확해요. 재료가 가장 좋은 순간을 유지하려면, 최대한의 속도로 최소한의 과정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차갑게 보관할 건 차갑게, 따뜻할 건 따뜻하게. 효율을 좇는 것 같지만 실은 ‘원칙을 유지한다’는 개념이에요. 그런데 원칙을 지키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퍼 세’에서 제 고정관념이 깨진 순간도 있었고요.


어떤 순간이었나요

제가 스태프밀로 먹으려고 담가 둔 오이지를 셰프가 먹어 보더니 “오늘 VIP 스페셜에 가니시로 쓰겠다”면서 가져가더라고요. 저는 ‘이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딱 한 마디였어요. “맛있잖아!” 맛있고 잘 어울리면 쓸 수 있다는 거죠. 그 순간 ‘파인 다이닝은 이래야 해, 이러면 안 돼’ 같은 제한이 제 머릿속에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직책이 낮은 사람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문화를 유지하려고 해요. 내가 옳으니 너는 틀렸다는 식의 지적은 지양합니다. 창작자는 틀려도 창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틀린 것도 창작물이니까요.


골드 벨벳 재킷은 Amiri.

골드 벨벳 재킷은 Amiri.

그렇다면 셰프님의 편견을 깬 식재료도 있나요

최근 겨울 메뉴를 개발할 때 햇더덕을 먹었는데 ‘왜 이제 알았지?’ 싶을 만큼 맛있더라고요. 겨울에 첫 더덕이 나오는 시즌이 10월 말~11월 초인데 그때의 더덕은 거의 과일 같아요. 과일 같은 단맛에 더덕 향이 있는 거죠. 저는 그전까지 더덕의 쌉싸래한 맛만 떠올리며 요리했다면, 햇더덕을 먹고 ‘이 재료에 이런 얼굴도 있구나’를 발견했어요. 요즘은 재료의 ‘피크’보다 재료가 막 시작되는 지점의 맛, 농부만 아는 그 찰나에 더 관심이 갑니다.


식재료의 리즈 시절에 매료된 이유는 단지 맛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시간이 럭셔리라고 생각해요. 타이밍을 딱 잡는 순간이요. 그런데 지금은 “제일 맛있는 채소를 어디서 사나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요. 제가 가끔 냉소적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한국의 식문화가 많이 도태됐다고 느껴서 그래요. 누가 잘못했다는 말은 아니고, 농가 단계에서 조금 게을러지면 식재료도 게을러지기 시작해요. 그 ‘찰나’를 굳이 챙길 필요가 없고, 물을 조금 더 뿌리면 무게가 늘어나서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보니 소비자는 마트를 가도 비슷한 걸 보게 되고, “원래 식재료 맛이 이런가 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농가에 가서 직접 먹어보거나, 농작물을 길러 보면 “아, 맛이 다르네”를 느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농가에서 좀 더 노력해 주고, 레스토랑이 계속 그런 재료를 찾으면 사람들도 몰랐던 맛을 깨닫고 더 좋은 걸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입맛이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봄동이 맛있는 건, 나오는 때가 있기 때문이잖아요. 배추나 파도 제일 맛있을 때 수확하면 되거든요. 그런 개념이 조금 부족한 현실이 아쉽죠.


셰프님이 가장 애정하는 제철 식재료는 무엇인가요

파를 좋아해요. 사람들이 파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요. 파를 까보면 안쪽 코어에 얇고 노란 심지가 있는데, 그게 엄청 달아요. 그 심지를 살짝 데쳐서 버터랑 먹으면 달고 맛있고, 파 향도 확 올라오죠. 또 신선한 파는 녹색대 안에 젤리 같은 게 있어요. 살짝 데쳐서 쭉 짜면 투명한 진물이 나오는데, 그 질감이 매력적이라 소스로 쓸 수 있어요. 익숙한 재료에서 다른 맛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고, 제가 좋아하는 미식이 딱 이런 방식이에요.


‘스와니예’를 대표하는 메뉴는 달팽이 요리입니다. 달팽이는 어디서 오나요

화성 쪽에 농장이 있어요. 팝업 때부터 15년 넘게 알고 지낸 곳이죠. 저는 달팽이를 쓰면 프렌치 오마주 같은 이스터 에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이핑(소스에 찍어 먹는)이나 커스터드 같은 유럽식 요소로 설명해도 맞지만, 실제 모티프는 을지로 골뱅이입니다. 골뱅이를 먹을 때 매울 때는 달걀말이를 곁들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달팽이 요리를 계란과 조합했어요. 골뱅이랑 달팽이는 친척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 와도 자기 나라 음식이 겹쳐 보이는, 그런 디시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것이 제가 ‘스와니예’에서 표현하고 싶은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대추와 커피.

대추와 커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디깅’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듯합니다. 3040 세대, 더 낮춰 20대도 포함해서요. 이제는 식당을 방문할 때 메뉴는 물론, 식당 주인의 프로필을 먼저 파악한다고 해요. 이런 흐름을 직접 체감하나요

엄청 체감하죠. 손님들이 요리에 대한 감상을 말로 표현할 때, 대중의 입맛이 정말 까다로워졌다고 느껴요. 디테일한 질문이나 영감 요소에 대해서도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미식을 똑똑하게 즐기는 대중 앞에서, 셰프님은 ‘맛’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정서 같아요. 착각 같기도 하고요. 맛은 교육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느끼는 것도, 냉정하게 먹어 보면 맛이 없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고, 즐겁고, 억지로가 아니라 끝까지 먹게 되죠. 그게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맛이 ‘추억으로 만들어진 기억의 조작’ 같다고 말해요. 우리는 맛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지만 실은 각자의 정서가 섞여 만들어지죠. 셰프는 모두의 교집합에서 정수를 꽂으려는 사람이지만 결국 “내가 맛있다”고 믿는 걸 내어놓는 거지, 모두에게 확인받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스토리텔링에 더 신경 씁니다. 기억에 남는 음식이 꼭 ‘절대적으로 제일 맛있는 음식’일 확률은 높지 않으니까요. 정서로 다가가고 싶은 거죠.


다시 태어나도 요리사를 할 건가요

그렇지는 않죠(웃음). 충분히 한 것 같고,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요리’에 빠져 있다기보다 ‘만드는 것’에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먹을 수 없는 것이어도 상관없거든요. 다시 태어나면 음식이든 아니든, 뭔가를 만드는 일은 꼭 하고 싶어요.


요리사는 셰프님에게 좋은 직업으로 정의되나요

그럼요. 저는 직업과 취미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직업도 나와 맞으니까 하는 거잖아요. 음식과 요리는 제게 직업이면서, 그냥 제 자신이에요. 저는 직업을 고른 적도 없고 좋아하는 걸 잘하려다 보니 직업이 됐어요. 더 잘하려고 하면 더 좋은 요리사가 되는 거고요. 목표를 찍고 간 게 아니라, 가다 보니 목표점에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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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정소진
  • 사진가 곽기곤 · Christophe Coënon
  • 스타일리스트 이정현
  •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 서채원 · 이현정 · 최경민 · 정지은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