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로저 비비에 신발로 알록달록 사방을 채운 집

파리에서 만난 ‘메종 비비에’의 과거와 현재.

프로필 by 박기호 2025.10.30

파리 패션위크로 한창 도시 분위기가 달아오르던 10월 초, 3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곳으로 안내하는 초대장이 도착했다. 1729년 왕실 건축가 자크 질레 드 라 퐁텐(Jacques Gilet de la Fontaine)이 설계한 건물이 오랜 시간을 거쳐 로저 비비에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입구에 있는 웅장한 그랜드 계단과 마주하자 영화 속 주인공이 치맛자락을 들고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이 떠올랐다.


로저 비비에의 역사를 보여주는 ‘르 살롱 레리따쥬’.

로저 비비에의 역사를 보여주는 ‘르 살롱 레리따쥬’.


금색 장식을 더한 우아한 계단을 따라 도착한 곳은 로저 비비에의 모든 것을 집약해 놓은 ‘르 살롱 드 레리따쥬’. 큐레이션을 맡은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는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가구와 패브릭으로 공간을 채웠고, 메종의 상징적인 슈즈와 이를 사랑했던 패션 아이콘들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전시했다. 공간은 점점 사적인 분위기로 이어졌다. 창립자 로저 비비에의 흔적으로 꾸민 ‘르 살롱 비비에’는 고전 가구들과 현대 작품들, 감각적인 오브제로 꾸며 로저 비비에의 취향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보다 현실적인 공간을 마주하게 된 건 다른 칸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Gherardo Felloni)의 공간이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무드보드처럼 느껴지는 곳에선 지금의 로저 비비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공간 한켠은 아카이브 슈즈 박스로 채워져 있고, 곳곳엔 그의 엉뚱하고 다정한 수집품들이 놓여 있다.


1960년대 로저 비비에의 아카이브 슈즈들.

1960년대 로저 비비에의 아카이브 슈즈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의 공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게라르도 펠로니의 공간.


시대를 넘나들며 소통하듯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 곳곳엔 내년을 위한 봄/여름 컬렉션과 벨 비비에의 60주년 컬렉션도 작품처럼 전시돼 있었다. 건물의 가장 사적인 곳은 1000켤레 이상의 역사적인 슈즈와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의 스케치, 프로토타입 슈즈 등 아카이브를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온도와 습도까지 섬세하게 관리하고 있는 이곳은 특별 초청한 이들을 위해 공개하고 있다고.


300년 된 건물 뒤편으로 빠져나오니 비밀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온도와 습도뿐 아니라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이 있는 곳. 그곳에서 각기 다른 슈즈를 신고 사색하며 걸었을 이들을 떠올렸다. 그것도 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 위해 오래 맴돌았을 시간들 말이다.


1960년대 로저 비비에의 아카이브 슈즈들.

1960년대 로저 비비에의 아카이브 슈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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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기호
  • 글 김지회
  • 아트 디자이너 민홍주
  • 디지털 디자이너 민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