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독서는 어떻게 패션이 됐을까?

지금 책이 그 어떤 옷보다 섹시한 이유.

프로필 by 박지우 2024.08.01
자고로 잇걸이라면 꼭 갖춰야 할 덕목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됐습니다. 바로 독서가 그 주인공이죠. 단순히 Y2K 트렌드에서 뻗어 나온 아날로그 열풍의 일환이라 치부하기엔 사정이 훨씬 복잡합니다. '과시형 독서'라고 무턱대고 꼬집기에도 무리가 있고요. 그렇다면 독서는 어떻게 패션이 됐을까요?

@libraryscience

@libraryscience

@libraryscience

@libraryscience

바로 어제, 카이아 거버 자신이 운영하는 북클럽 '라이브러리 사이언스'의 머천다이즈를 공개했습니다. 라이브러리 사이언스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독서광으로 잘 알려진 카이아 거버가 친한 지인들과 함께 비공식 독서 모임을 가진 데서 출발했죠. 이후 그는 젊은 층의 독서 활동을 장려하겠다는 미션과 함께 전형적인 베스트셀러가 아닌, 새로운 목소리를 지닌 도서를 큐레이션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카이아 거버

카이아 거버

카이아 거버

카이아 거버

이번 제품군은 심플한 슬로건 티셔츠와 볼캡, 에코백, 형광펜으로 구성됐는데요. 특히 'Come To My House, I Have Great Books'가 적힌 티셔츠는 지난 19일 뉴욕에서 열린 행사에서 그가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된 바 있죠.

스타들의 북클럽 운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의 원조 독서광 엠마 로버츠부터 엠마 왓슨, 두아 리파, 리즈 위더스푼, 사라 제시카 파커까지, 수많은 여성 셀러브리티가 자신의 추천 도서를 자유롭게 공유하며 곳곳에 숨어 있는 독서 애호가들을 위해 다양한 장을 마련하고 있으니까요.

미우미우 서머 리즈

미우미우 서머 리즈

미우미우 서머 리즈

미우미우 서머 리즈

얼마 전 성수동에서 열린 미우미우의 문학 클럽 '미우미우 서머 리즈'도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밀란, 파리, 런던, 뉴욕, 서울, 상하이, 홍콩, 도쿄에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선 알바 데 세스페데스, 시빌라 알레라모, 제인 오스틴처럼 용기 있게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했죠. 여름날 미우미우를 입고 아이스크림과 함께 <여인>을 읽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쿨한 여성상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드라마 <길모어 걸스>

드라마 <길모어 걸스>

이러한 흐름은 태어날 때부터 온갖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여 자라온 Z세대의 특성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각종 숏폼과 잡음이 난무하는 디지털 세계로부터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고요함을 지키고자 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해에는 영국에서만 약 6억 6900만 권의 실물 도서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가히 역대 최고 기록이라고 하는군요. 여기에 그 어떤 세대보다도 자기표현에 능한 Z세대의 특성이 더해져 '독서는 섹시하다'라는 패션 공식이 더욱 공고해진 셈이죠.

마크 공 2024 S/S 컬렉션

마크 공 2024 S/S 컬렉션

벨라 하디드

벨라 하디드

지젤 번천

지젤 번천

책을 가까이하는 여성의 모습은 하나의 코어로 발전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벨라 하디드가 쏘아 올린 일명 '섹시 라이브러리안 코어'에선 긱시크를 대표하는 베요네타 안경과 오피스 사이렌의 관능적인 요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요. 마크 공의 2024 S/S 컬렉션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지젤 번천의 시크한 무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켄달 제너

켄달 제너

켄달 제너

켄달 제너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패션처럼 자리 잡은 지금, 이 같은 흐름을 두고 '보여주기식 독서'가 양산될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약 3억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잇걸 켄달 제너가 요트 위에서 첼시 호드슨의 에세이를 읽는 모습이 담긴 파파라치 컷은 수많은 논쟁을 낳았죠. 이는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매 여름 그의 인스타그램 속 휴양지 선베드에는 어김없이 다채로운 책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오색찬란한 비키니와 함께 하나의 오브제처럼 아주 무심하게 말이죠.

한소희

한소희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영향력은 꽤나 고무적이었습니다. 배우 한소희가 추천해 완판되기도 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비롯해 다양한 여성 작가의 진솔한 에세이가 포함된 '켄달 제너의 도서 리스트'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배우 하석진이 돌풍을 일으킨 철학책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도 이러한 '미디어셀러'의 효과를 톡톡히 입증한다고 볼 수 있죠.

국내에서도 특정 책과 출판사 혹은 베스트셀러만을 탐독하며 이를 SNS에 과시하는 소비층을 꼬집는 밈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더 많은 이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고무적이라는 쪽과 과시형 독서는 책을 진정으로 향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관련기사

Credit

  • 에디터 박지우
  • 사진 각 인스타그램 ∙ Getty Image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