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홍석천과 나눈 한낮의 수다: Part 1

홍석천이 커밍아웃한지 24주년. "이제야 좀 놀만해졌는데 체력이 딸린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와 엘르 에디터 두 명이 펼친 한낮의 대담.

프로필 by 전혜진 2024.07.31
대낮에 이태원 한복판에서 진행된 이 대담은 완벽한 남자를 찾는 어느 20대 에디터와 괜찮은 신인 발굴에 혈안인 어느 30대 에디터가 매력적인 요즘 남자를 누구보다 잘 솎아내는 50대 남자 홍석천의 심미안을 얻기 위해 시작됐다. 서로의 욕망을 양보할 수 없어 세대와 성별, 저마다의 궁금증이 가장 잘 섞일 수 있도록 평소 <엘르>의 형식과 달리 3인 토크 체제를 택했다.

전혜진(이하 전) 홍석천은 나이와 상관없이 늘 용감한 청춘 같아요. 늘 트렌디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미남을 ‘발굴’하는 유튜브 콘텐츠 <홍석천의 보석함>만 봐도 그렇죠
나 진짜 철없어 보이죠? 아침에 거울 볼 때마다 너무 슬퍼. 근육은 운동으로 탄력 있게 만들 수 있는데 목주름이랑 팔꿈치 굳은살 같은 건 어떻게 못해. 아무튼 늘 깨어 있으려고 엄청 노력하죠. 요즘 친구들의 생각과 고민, 노는 곳, 먹는 것, 심지어 어떤 팝업 스토어를 돌아다니는지 공부해요. 그렇게 알면 알수록 이들의 세계가 신비로우면서 걱정도 돼.

정소진(이하 정) 어떤 걱정인가요
‘요즘 애들은’이라고 말하면 ‘꼰대’ 같겠지만 그냥 말할게. 젊은 친구들과 놀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곤 해. 늘 “나를 지킬 줄 알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해왔는데 요즘 그렇지 못한 친구가 너무 많아. 이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는지 알아보려고 직접 데이팅 앱을 설치해서 홍석천 아닌 척 소통해 봤는데, 수위가 너무 과해. 결국 내 대화의 끝은 “당신은 사랑받을 사람이니까 안전하게 콘돔 쓰고 하세요”로 마무리된달까. 젊은이들이 만나고 노는 방식을 보고 안전한 성 문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는 생각도 들었어. 의외로 구성애 선생님이 TV에서 가르쳤던 성교육 같은 성격의 콘텐츠를 요즘은 보기 힘든 것 같거든.

전 & 전혀 ‘꼰대’가 아닌데요!
꼰대가 되지 않으려 했는데 요즘 애들 하는 짓 보니까 꼰대가 돼야겠더라니까? 20대 친구들이 진로나 취직, 고민을 자주 상담해 오거든. 어제도 했어. 그럼 “야! 왜 그렇게 접근하니? 너 잘못 생각한 것 같아. 다시 생각해 봐” 같은 답을 하게 돼. 너무 아끼고 예쁜 동생들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근데 내가 뭐라고. 원래 사람은 마음을 다치고 상처 입으면서 성장하는 거잖아. 부모도 아닌데 왜 그렇게 뜯어말리면서 “안 돼! 너 거기 가면 안 돼!”라고 외치는 걸까(웃음)?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홍석천의 상담함>이라는 콘텐츠를 계획하고 있어.

예전에 DM으로 쏟아지는 상담 요청에 불면증에 시달린 걸 고백했음에도 여전히 그런 책임감을 느끼시네요
비록 내가 아이를 낳진 않았지만 조카들이 있잖아. 자식을 가진 부모와 그 당사자를 위해 가지각색의 고민을 들어주려고 해. 40~50대 사연도 괜찮아. 커밍아웃도 좋고, 섹스리스 부부에 대한 고민, 바람 피우는 남편에 대한 고민도 괜찮아. 그 사연에 맞는 전문가를 초대해 고민에 맞는 조언을 해주고 싶어. 하나하나 쫓아다니며 상담해 줄 수 없으니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는 거야. 근데 불안하기도 해.

전 & 왜 불안한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는 항상 불안하지 않아? 대중이 낯설어서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이야. <홍석천의 보석함>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거든. 근데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걸 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있나 봐.

매번 고민을 들어주는 입장에 서면 자신의 감정과 마음도 소모되지 않나요
소모되지만 어떡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걸. 그래서 클럽 가서 티셔츠 벗고 춤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야(웃음).

<홍석천의 보석함>은 ‘게이픽’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외모가 출중한 남성 출연자들을 소개하지만, 여성들이 더욱 열광하는 콘텐츠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예상했나요
내가 하는 모든 콘텐츠의 타깃은 전부 여성이야. 남자들이 따라 들어오면 ‘땡큐’지. 내가 차린 식당에서 메뉴를 구성할 때도 여자가 좋아하는 것부터 생각했어. 왠지 알아? 여자는 여자끼리도 오고, 남자친구도 데려오거든. 다들 오해하는데, 내가 식당 아르바이트생으로 잘생긴 남자를 고용한 것도 여자들 때문이야. 패션부터 음식, 유튜브 콘텐츠, 모든 건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돌아가지. 되게 단순해!

정 구독자인 ‘보자기’들과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들의 일관적인 특성은 무엇일까요? 홍석천은 ‘잘생긴’ 남자를 볼 때 어떤 감각을 곤두세우는지
애들이 이렇게 물어봐. “형, 저도 보석인가요? 보석함에 들어갈 수 있나요?” 사실 사람마다 다 달라. 눈빛이나 웃음, 목소리. 이 세 가지를 늘 말해 왔거든. 물론 전체적으로 다 훌륭해야 하지만. 주연배우를 떠올려봐.

전 & 정 ‘주연배우’라니까 갑자기 확 와닿는 것 같아요
러닝타임이 1시간인 드라마에서 40분을 책임지는 건 남자 주인공이야. 멋진 ‘남주’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다른 채널로 돌릴 수 없는 거고. 그 남주의 조건은 단순 생김새가 아니야. 계속 상대를 바라봐주는 눈빛! 시청자는 남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서 더 몰입하는 거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데 남주는 그런 매력을 가졌지. 그런 친구들을 일반인 중에서 찾아내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 사람은 각자 매력이 있지만 ‘와우 포인트’를 탑재한 친구는 희박해.

‘홍석천 인증 마크’를 받은 남자는 남녀노소 누가 봐도 잘생겼다는 말이 ‘밈’처럼 돌아요. 실제로 <솔로지옥> 등 연애 프로그램 출연진을 섭외할 때 제작진이 홍석천의 인스타그램 팔로잉 리스트를 뒤진다면서요
아휴, 그게 잘못됐어. 방송작가들도 마찬가지고, 다들 일반인 섭외할 때 왜 그렇게 내 팔로잉 목록을 뒤지고 DM을 보내는지 몰라. 섭외 방식이 너무 게을러졌어! 내가 몇 년을 밤새워서 찾은 보석들이야.

코르셋 후디는 Bonbom. 하네스 베스트는 Heliot Emil by Samplas. 무테 선글라스는 Cartier by AofA. 타월과 비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코르셋 후디는 Bonbom. 하네스 베스트는 Heliot Emil by Samplas. 무테 선글라스는 Cartier by AofA. 타월과 비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보석들을 지키려면 이제는 비공개 계정으로 ‘개인 소장’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럴까? 공개 계정에는 홍보해 달라고 요청한 애들만 두고, ‘찐’ 보석들은 몰래 숨겨놓는 게 낫겠어.

현재 호시탐탐 눈여겨보는 보석들을 저희에게만 알려주신다면
요즘에는 인스타그램에 지나치게 보정된 사진을 올려서 SNS만을 믿을 순 없어요. 특히 팔로어 수가 2만~10만 사이인 친구들은 거의 인플루언서라 점점 팔로어를 의식해서 사진에 장치를 너무 많이 둬. 근데 팔로어 수가 1000 단위인 친구들은 날것의 느낌이지. 멋도 모르고 자기 모습을 꾸밈없이 올리잖아. 날것이 예쁘고 좋은 거거든. 물론 내 생각이야. 자, 이제 아껴둔 보석을 말할게. 메모하세요.

전 & 정 빨리 말해 주세요! 현기증 나요
무조건 뜰 거라고 확신하는 건 장연우예요. <러브캐처>에 출연했던 친구인데, 연기만 빨리 배우면 잘되겠다 싶어요. 리틀 공유처럼 생겼어. 내가 배우 하라고 꼬드기는 중이야. 그리고 두 번째는 창원에서 만난 어떤 친구. 창원에 인재가 많아.

제가 마산 출신입니다. ‘마창진(마산, 창원, 진해)’에 인재가 꽤 있습니다
그래. 내가 이번에 제대로 느꼈잖아. 마창진에 보석이 많아요. 얼마 전에 만난 창원 친구는 바라보는데 눈빛이 달라. 순수하고. 자기가 잘생긴 것도 잘 모르는 것 같아. 나중에 인스타그램 알려줄게.

보석함을 열어 잘생기고 멋있는 남성을 소개하는 홍석천 선배님, 아니 선생님께서 직접 홍석천이라는 보석의 매력에 대해 소개한다면
내가 선생님, 선배님이라는 호칭과는 잘 안 어울리거든? 그게 나라는 보석의 매력이야. 누가 나한테 선배님이라고 해!

그럼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당연하지. 사람은 사람에게 어떻게 불려지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 선배님이라고 불리면 왠지 까불면 안 될 것 같고, 스스로를 멋있게 포장해야 될 것 같은 강박이 생겨. 날것의 홍석천은 오빠, 형이라고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해요. 대신 언니라고만 부르지 마. 왜? 난 ‘톱 게이’니까.

링거 티셔츠는 Sky High Farm Workwear by Samplas. 실버 데님 팬츠는 Eckhaus Latta. 부츠는 VTMNTs. 햇은 Wacko Maria.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거 티셔츠는 Sky High Farm Workwear by Samplas. 실버 데님 팬츠는 Eckhaus Latta. 부츠는 VTMNTs. 햇은 Wacko Maria.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빠께서 생각하는 홍석천은 어떤 사람인가요
정체성을 고민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만들어가고 있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 정체성을 연기자, 개그맨, 방송인, 사업가, 톱 게이 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어. 나는 그 모든 걸 뭉뚱그렸을 때 홍석천은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늘 고민하는 것 같아. 그게 내 인생 최대의 고민이야. 사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보일지 고민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거든. 그래도 될 만큼 충분히 상처받았고, 이겨내서 단단해졌으니까. 근데 끝까지 내가 선을 지키려는 이유는 사명감 때문이야.


그 사명감은 어디에서 비롯하나요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태어나 서른 살 전성기에 커밍아웃을 했고, 그로 인해 날카로운 화살을 맞고 버티고 이겨내고 다시 대중 앞에 당당히 서 있기까지 모든 과정 덕분에 특정 문화가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 변화에 맞춰 내가 다음 세대의 미래를 그려야 된다는 나만의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 이게 내 숙제라서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실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약점도, 빈 구석도 많은 사람이기에 언제까지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지 걱정이고 부담스럽지. 남몰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다니고 싶은데 나는 못 해서 가끔 억울해(웃음).

그렇다면 억울한 보석인가요
나라는 보석은 한때 빛을 발했지만, 더 찾지 않는 때도 있었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만 스스로 어떻게든 빛을 내려고 ‘나도 보석이야. 나도 한때 빛났던 존재이고 앞으로도 더 빛날 수 있어!’라며 소리 없이 아우성치다 혼자 냇가를 굴러 바다까지 떠내려가고, 이놈 저놈이란 바위에 부딪혀가면서 산전수전을 겪었어. 그러다 조금 모양이 갖춰져 사람들이 ‘아, 얘도 예쁜 아이였지’라며 값어치를 이제야 찾아준 보석. 그게 나야.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가치 있을까? ‘한때는 빛났다’고 스스로 지나간 과거를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50년 넘게 살다 보니까 언제까지 내가 최고라며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더라. 나는 ‘톱’을 찍은 사람은 아니지만, 톱을 찍을 필요도 없더라.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어요. 스스로 톱 게이라고 말하지만, 톱 게이 자리도 서서히 물려주고 싶고 내가 지켜온 가치를 다른 친구에게 넘겨주고 싶어. 그래서 처음으로 ‘보조게이’ 김똘똘이라는 친구와 콘텐츠를 함께 하기 시작한 거고.

'홍석천과 나눈 한낮의 수다: Part 1' 인터뷰는 'Part 2'로 이어집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정소진
  • 사진가 LESS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
  • 메이크업 아티스트 최경민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