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이상한 나라의 콜리나 스트라다가 지구를 지키는 방식

버려진 원단에도 꽃은 핀다, 그것도 더없이 유쾌하게.

프로필 by 박지우 2024.05.28
연일 들려오는 기후 위기 소식부터 곤두박질치는 여성 인권까지, 성큼 다가온 디스토피아적 미래에도 콜리나 스트라다는 도무지 유머를 잃는 법이 없다. 2008년 가죽 가방 브랜드로 첫걸음을 뗀 클리나 스트라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힐러리 테이무어는 현시점 지속가능성을 표방한 패션 브랜드들 사이에서 유독 선명하고 유쾌한 궤적을 그린다.

산더미처럼 쌓인 데드스톡과 버섯 가죽, 장미 실크로 옷을 짓는 그는 오직 유머만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그의 세계에서 개구리는 반지가 되고 강아지의 앞발은 신발이 되는가 하면, 세계 최대의 옥상 텃밭에서 펼쳐진 런웨이 위로는 휠체어를 탄 여성, 노인, 아이를 비롯한 다양한 삶이 교차한다.

기괴함과 아름다움 사이. 그 어딘가를 유영하는 콜리나 스트라다가 6월 3일까지 엠프티 성수에서 국내 첫 팝업을 선보인다. 서울의 초여름이 낯설게 느껴질 힐러리 테이무어를 그곳에서 만났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힐러리 테이무어

콜리나 스트라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힐러리 테이무어

캘리포니아에서 자라 이집트의 문화적 뿌리를 기반으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당신의 눈에 한국의 서울이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하다.
이태원 인근 호텔에 머무르며 주위를 둘러봤는데 서울의 패션 신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어떤 곳은 로스앤젤레스와 매우 비슷하더라. 긴 비행을 거쳐 서울에 왔는데 로스앤젤레스에 불시착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은 어땠나? 콜리나 스트라다의 선명한 컬러를 보면 그곳의 자연과 역동적인 에너지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다.
정확하다. 어릴 적 말을 타며 자랐다. 말에 올라 고요한 산길을 걷고, 서핑도 하며 자연 가까이 일상을 보냈다. 그만큼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비롯해 고향 땅의 자연을 소중히 다루는 일은 내게 당연한 책무다.

힐러리 테이무어와 그의 반려견 파우위

힐러리 테이무어와 그의 반려견 파우위

거주 중인 뉴욕에선 어떻게 자연과 지속적으로 교감하나?
뉴욕 안에서도 수없이 여행을 다닌다. 사랑스러운 포메라니안 파우위와 프로스펙트 파크를 산책하거나 여름에는 함께 수영할 수 있는 도그 비치에서 시간을 보낸다. 또 워윅이나 피니시아 같은 업스테이트 뉴욕에서 외곽의 정취를 만끽하곤 한다.

콜리나 스트라다는 기후 위기, 여성 인권, 동물권을 비롯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유쾌한 방식으로 전한다. 누구나 패션을 행복하게 즐겨야 한다는 낙관주의가 당신의 철학인가?
맞다. 올해는 더욱 사람들에게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리는 브랜드로 거듭나고 싶다. 이 일을 통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늘 고민한다. 내가 만드는 지속 가능한 옷들이 도처에 만연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효능감 같은 것 말이다. 이때 소비자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무거운 메시지를 어렵고 딱딱하게 전달하면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택한 것이 긍정과 유쾌함이다. 이것들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현시점 K-팝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라인 스톤, 타이다이 등 특유의 실루엣 덕분에 라이즈, 뉴진스, 에스파 등 경쾌한 Y2K 무드를 표방하는 K-아티스트들이 콜리나 스트라다를 찾는다. 이런 현상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콜리나 스트라다를 입고 싶어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같다. 나의 메시지를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창구,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셀러브리티가 의식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사람들이 그 안에 숨은 메시지를 찾아내고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스노우볼 효과처럼 말이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런웨이에는 휠체어를 탄 여성, 임신부, 노인, 아기까지 전 세대에 걸쳐 다양한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꿈꾸는 콜리나 스트라다의 여성상이 있을까?
틸다 스윈튼!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매사에 당당함이 엿보이고 젠더와 관계없이 쿨하기까지 하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옷을 걸친 틸다 스윈튼의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이지 황홀하다.

콜리나 스트라다 2023 A/W 컬렉션

콜리나 스트라다 2023 A/W 컬렉션

‘Please Don’t Eat My Friends’, ‘More Lawns Should Look Like This’, ‘Woof’. 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위트를 놓치지 않는 레터링 티셔츠가 인상적이다. 패션계에 대한 단상 한 줄을 티셔츠에 새긴다면?
‘너의 재능을 믿고 나아가라’.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은 도처에 널렸다. 나만 해도 브랜드를 론칭한 2008년 이후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10년 이상 걸렸다. 그사이 수많은 재능들이 사라졌다. 꽤 많은 신인 디자이너들이 뛰어난 실력을 갖췄지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한다. 어떻게 큰 수익을 내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인보이스 작성법이나 주문 배송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즐비하다. 패션이라는 것도 결국 비즈니스다.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디자이너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패션계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 같은 것도 있을까?
매 시즌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넘어진다. 왜 그런 장면이 되풀이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웅장한 쇼와 화려한 퍼포먼스 속에서 살인적인 하이힐을 신은 여자 모델들이 위태로운 코블스톤 위를 걷도록 내몰리고 방치된다. 그런 쇼는 보기가 힘들 정도다.

콜리나 스트라다 2022 S/S 컬렉션

콜리나 스트라다 2022 S/S 컬렉션

당신의 쇼에선 그 어떤 불쾌함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런웨이 위에선 모든 모델들이 한없이 자유롭지 않나? 각자의 체형에 맞는 옷을 걸치고 편안한 신발을 신은 채 런웨이를 산책하듯 누비니 말이다.
물론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자이너가 모델들이 자신의 런웨이에서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다. 그건 절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

어그 x 콜리나 스트라다

어그 x 콜리나 스트라다

에르메스와 발렌시아가의 버섯 균사체 가죽, 가니의 포도 껍질 가죽, 푸마의 파인애플 가죽 등 패션계에 비건 바람이 거세다. 비론과의 협업에서 선보인 사과 껍질 가죽 외에 마음에 두고 있는 친환경 소재는 무엇인가?
로즈 실크, 버섯, 옥수수 등을 옷의 재료로 삼고 있는데 요즘은 셀룰로오스 섬유의 일종인 ‘바나나텍스’에도 관심이 생겼다. 셀룰로오스 섬유의 일종으로, 독특하게도 바나나꽃을 피우진 않지만 옷을 짓는데 최적화된 소재다. 무엇보다도 양식이 아니라 야생에서 자유롭게 자라기 때문에 생태학적으로도 이롭다. 하지만 비싸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이 때문에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

<I Care a Lotta, I Wear Collina Strada>

<I Care a Lotta, I Wear Collina Strada>

찰리 엥그먼의 어머니 캐슬린 엥그먼

찰리 엥그먼의 어머니 캐슬린 엥그먼

콜리나 스트라다의 세계관을 총망라한 책 <I Care a Lotta, I Wear Collina Strada>부터 최근 공개한 어그와의 협업까지, 사진작가 찰리 엥그먼과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의 어머니 캐슬린 엥그먼은 콜리나 스트라다의 모델로서 몇 시즌째 활약 중인데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찰리 엥그먼과 처음 패션 작업을 한 사람이 나일 것이다. 2010년에 인턴으로 근무하던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협업을 이어오고 있으니 새삼 참 오래된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찰리 엥그먼과의 작업은 늘 흥미롭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굉장한 캠페인을 여럿 했다. <I Care a Lotta, I Wear Collina Strada>를 만들 땐 나의 연대기를 268페이지로 압축하는 것이 무척 고됐지만 완성하고 나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분야는?
인테리어나 라이프스타일.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영역으로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 콜리나 스트라다의 프린팅을 입히거나 시트를 제작하는 식으로 말이다.

‘콜리나 스트라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말고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를 설명한다면?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고, 즐거움을 좇는 사람. 그리고 옷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는 열망이 그 누구보다 큰 사람. 그날 입은 옷이 내 기분을 좌우한다. 확실히 옷이라는 존재는 여자의 자신감과 곧장 직결된다. 그렇지 않은가? 여자들은 월경을 비롯해 한 달에도 몇 번씩 호르몬이 오락가락하고, 그에 따라 체중도 롤러코스터를 타기 마련이다. 내 맘에 쏙 드는 옷이 여자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이유다.

문득 별자리가 궁금해지는데.
예상했듯이 사자자리다(웃음). 이상하게도 카메라 앞에선 전혀 사자자리 같지 않지만, 실제론 감정 기복도 심하고 매사에 열정이 넘치는 편이다.

다음 컬렉션에 관한 힌트를 <엘르>에만 살짝 공개해달라.
여전히 식물에 빠져 있는 만큼 식물과 관련된 요소를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여태껏 본 적 없는 텍스처의 조합을 기대해도 좋다.

Credit

  • 에디터 박지우
  • 사진 콜리나 스트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