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식객의 맛집 놀이 '소곱창과 함께 춤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찬바람 솔솔 불어오면 뜨끈한 내장요리가 생각난다. 하지만 오늘은 국물도 양념도 아닌 곱창구이. 양념으로 화장하지 않고도 당당한 우윳빛깔 속살을 부끄럼타듯 오므리는 나의 사랑 곱창에 대한 사모곡. |

만사가 귀찮을 때, 술 먹자고 꼬셔도 도리도리, 좋은 데 가자고 해도 도리도리. 그러다가 '곱창 사줄게'라는 소리에는 두 말 없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나가곤 한다. 그게 강남이건 강북이건 차로 한 시간이 걸리든 길이 막혀 두 시간이 걸리든. 정기적으로 곱창에 곱창을 넣어줘야 평상심을 갖고 살아갈 수가 있다. 마감 때문에 타들어가는 신경줄에 육덕진 곱창 기름을 발라 차분히 앉혀주고, 잘근잘근 양을 씹어먹으면서 오늘 나에게 인생의 신맛을 알려준 누군가를 떠올리며 열심히 저작운동을 하고 나면 묵은 체증도 내려간다. 태생적으로 고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굽는 행위가 지닌 카니발적 카타르시스 때문에 불판에서 지글지글 뭔가를 구워먹고 있으면 맘모스 때려잡고 열매 따먹던 롱롱 타임 어고우 기억이 슬며시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하물며 입 안에서 솜사탕처럼 녹아내리는 대창이나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어나오는 곱창, 쫄깃하게 씹히는 그 질감 때문에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는 양깃머리, 시각적으로는 우수하지 않아도 소금장에 찍어먹으면 찰진 회를 먹는 것처럼 혀에 착착 감기는 천엽 등 골라먹을 수 있는 재미가 있으니 어찌 곱창집을 마다할 수가 있겠는가.여기서 곱창이라 함은 이것저것 푸짐한 야채와 함께 섞은 돼지곱창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만 닿아도 쉽게 상하는, 그야말로 애인 다루듯이 잘 다루고, 당일 잡아 당일 먹어야 하는 신선도가 최우선 과제인 소곱창을 의미한다. 소곱창은 원래 도축장 근처에서 좋은 부위를 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기타 부속 등을 값싸게 구해다가 고기 대신 불 위에 얹어 구워먹던 서민음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어디가서 곱창을 서민음식이라고 했다가는 눈총을 받는다. 소고기보다 더 비싸고 그나마 잘 하는 집도 많이 줄었다. 미국산 소고기로 인한 광우병을 우려해 많은 고깃집들이 문을 닫았고 그 탓에 신선한 내장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광우병 파동으로 매출이 급감했던 소곱창집들은 이름난 곳들을 중심으로 예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 예전 허름한 집에서 대폿집 정서를 물씬 느끼며 구워먹던 모습에서 세련되고 깔끔한 고급 소곱창집이 강남을 중심으로 많이 늘었다. 오발탄, 연타발 '탄탄브라더스'와 삼청동의 삼청대창 등은 현대적이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와 서비스를 보여주며 젊은 여성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늦은 저녁이면 왕십리곱창골목과 상록회관 뒤편의 곱창골목에는 입맛을 다시며 곱창을 먹으러달려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교대곱창집들의 '싼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지만. 대표적인 곱창 명가를 꼽으라면 충무로에 있는 서대문곱창, 삼각지에 있는 평양집, 김대중대통령도 즐겨 먹었다는 을지로의 양미옥을 알아준다. 서대문곱창은 차돌박이를 올려주는 센스, 2차는 안받고 술도 1인 1병만 시킬 수 있는 쥔장 본위의 서비스를 주 철학으로 하고 있지만 오랜 단골들이 문 닫기 전에 맛을 보려고 기를 쓰고 찾는 곳이다. 평양집은 드럼통을 업어놓고 곱창집 특유의 아우라를 물씬 풍기며 질 좋은 곱창을 내놓는다. 특히 깍두기와 양을 잘게 썰어 밥에 볶아주는 양밥은 이 집의 별미. 분명 곱창으로 배를 다 채우고도 양밥을 시키면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게 늘 신기할 따름이다. 서래마을에 있는 양곱창집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꽤 명성을 알렸는데 맛을 확인하러 찾았다가 질긴 곱창 탓에 턱이 빠지는 줄 알고 혼났다. 불친절한 서비스에 착하지 않은 가격, 곱이 빠져버린 시들한 곱창을 씹으며 왜 아직도 사람이 많은지 다소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일편단심 찾는 곳은 합정동 황소곱창. 대학시절부터 찾은 곳이니 십 수년이 훌쩍 넘었지만 맛이 참 한결 같다. 변한 것이 있다면 합정동 로터리 근처 허름하고 작은 집에서 망원동 방면의 널찍한 홀로 이사갔다는 점. 원래 확장하고 이사하면 맛이 변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 집만은 예외인 듯. 망원역 가기 전에 황소곱창을 닮은 집이 생기긴 했는데, 그 집은 홀에 사람이 많이 차는 것이 보질 못했다. 합정동 황소곱창이라고 찾았다가 그 집으로 오해하고 들어갔던 사람들이 꽤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관 옆에는 2006년 재개발 사업으로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것과 황소곱창은 체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문구가 적혀있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전에 없이 허약해졌다 생각이 들면 고개를 들고 망원동 쪽을 바라보게 된다. 실제 몇 일 밤낮을 야근과 철야로 혹사한 끝에 머릿속이 하얘지며 오로지 곱창 밖에 생각들지 않았을 때, 그곳을 찾았다가 뽀얀 우윳빛깔 속살을 이리저리 뒤틀며 교태를 부리는 곱창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갓 볶은 땅콩을 씹은 것마냥 고소하게 퍼지는 '곱'의 달콤고소함이라니.... 입 안에서 고요한 폭풍이 몰아쳤다. 오돌오돌 양은 또 어떤가. 생긴 것도 맛도 고무조각처럼 생겼는데 그 독특한 질감 때문에 양, 그 중에서도 양깃머리는 마니아가 많다. 소는 아시다시피 초식동물, 되새김질을 하는 녀석이다. 위가 네 개나 있고 소장, 대장 길이도 엄청나다. 양은 첫번째 위, 벌양이라고도 불리는 벌집양은 두번째 위, 천 장의 입사귀를 닮았다고 해서 천엽이라 불리는 것이 세 번째 위, 제일 운동을 적게 해 부드러운 막창이 네 번째 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곱창은 소장, 대장을 뒤집어서 구워내는 것이 바로 대창이다. 부위마다 맛이 다르고 영양도 다르다. 양이나 막창은 위벽을 보호하고 고단백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는 부위,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을 많이 함유한 대창, 비타민 철분 등의 함량이 높은 곱창 등 허약할 때 이 놈들이 생각나는 것도 당연하다. 직장이 강남이다 보니 일부러 그곳에서 약속을 잡지 않으면 가기 어렵다. 취재를 빙자하여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마침 금요일 밤이라 차는 막히고 번개를 친 녀석도 함흥차사다. 식당 전체가 소곱창 먹으려는 사람들로 아우성치는 가운데, 홀로 앉아 곱창과 양을 시켰다. 맥주 한 모금 들이키고 뽀얀 속살 감상하며 녀석들이 익길 기다린다. 누가보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감사 나온 사람처럼 보였으리라. 하지만 입가에 흐르는 침과 곱창을 바라보는 매혹적인 시선 때문에 정체를 쉽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이미 알 것은 다 안다는 식으로 이 집이 유독 맛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소를 좋은 걸 쓰니까, 뻔한 대답이 들려온다. 손질이 힘들지 않아요? 별 거 없어요. 좋은 소 그날 잡아 그날 쓰는 거예요. 기름기 떼어내고 밑 손질하면 끝이에요. 할 말이 없다. 사실 불판에 놓인 곱창을 바라보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사라지긴 한다. 그저 익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한 점 먹을 때마다 감동으로 부르르 몸을 떠는 것 외에는. 내장의 힘을 빌리는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이탈리아, 터키, 루마니아, 브라질 등지에도 내장을 이용한 전통요리가 발달해 있다. 세계의 진미라고 불리는 푸아그라 또한 거위 간이 아닌가. 수입소가 의심이 들 때 한가지 판별 기준은 바로 신선한 간과 천엽을 주는 곳이라면 주인장의 성실함과 소의 신선도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소곱창은 무엇보다 피부미용에 효과가 뛰어나다. 소곱창을 먹은 다음날 뽀얗게 피어나는 얼굴이라니.... Information합정동 황소곱창 333-7117. 연중무휴. 오전 11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당일 잡은 소의 내장을 당일 소비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여고생부터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넓은 홀을 가득 메운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곱창을 놓고 행복한 얼굴을 짓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망원역 2번 출구에서 70미터. 합정동 로터리에서 망원역 방면으로 버스 세 정거장 정도.[Profile]이름: 낭만식객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11월호 NO.21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