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의 5가지 괴상한 점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여름 같지 않은 여름 날씨, 요상한 주제의 페스티벌, 그리고 나이스한 사람들. 동화작가 선현경과 만화가 이우일 부부가 괴짜 도시 포틀랜드의 흥미롭고 엉뚱한 점들에 대해 털어 놓았다. | 선현경,이우일,괴짜 도시,포틀랜드,페스티벌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포틀랜드의 여름 날씨에 대한 찬양을 들어왔다. 그런데 역시 과한 거였다. 여름 치고는 조금 쌀쌀하다. 안 덥다고 해야 할까? 여름을 막 넘긴, 햇살이 아직까지는 따가운 가을의 느낌이다. “이 정도면 최적의 날씨잖아”라고 하신다면이야 할 말은 없지만 어째 좀 ‘여름다움’이 빠진 느낌이다. 여름이라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아이스 에스프레소 한잔을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켠 후에도, 여전히 끈적여야하는 거 아닌가? 해가 지고 난 후에도 더워서 머리가 찡할 정도로 팥빙수를 마구 흡입할 수 있는 그런 날씨가 진짜 여름이라고 생각된다. 포틀랜드의 여름은 도시 전체에 에어컨을 틀어 놓은 듯 쾌적하다. 그 많던 비가 그치고 적당히 따가운 태양 아래 시원한 마른 바람이 분다. 나무가 많아 어디서건 그늘을 찾을 수 있고 그늘 아래에선 살짝 서늘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해가 도무지 질 생각을 안 한다. 밤 아홉시나 되어야 하늘이 살짝 분홍빛으로 물들며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한다. 저녁 시간이 긴, 상쾌하고 뽀송한 여름날의 포틀랜드.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감이 없다. 인위적이라는 기분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올해가 유난하게 안 더운 거라고 현지인들이 말해준다. 뜨내기인 난 그저 여름이 생각처럼 ‘핫’하지는 않다고 말할 수밖에.날씨는 좀 이상해도 해가 길어지니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여름을 알리는 축제를 시작한다. 6월 초 장미 축제를 시작으로 각종 맥주 축제, 베리 축제, 공예 축제, 잡지 축제, 브루스 축제, 팝 재즈 축제, 각각의 스트릿 축제 등 주말이면 축제들을 찾아다니며 노느라 심신이 피로할 지경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축제들이 월러밋 강가 워터 프론트 파크 주변이라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안 보면 왠지 손해란 느낌에 매 주 스케줄까지 짜가며 관리하며 놀고 있다. 봄의 그 거리와 같은 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골목마다 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대체 어디 숨어 무엇을 하며 지냈던 것일까.그 중에서 가장 사람이 많았던 축제는 브루스 축제였다. 각종 브루스 공연들을 볼 수 있는 행사였는데 토요일 날의 홍대 지하철역처럼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여기 축제들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운 점은 노인들이 꽤 많다는 거다. 대부분 축제의 주요 고객이 노인들이다. 엄마뻘보다도 더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가, 맥주를 들고 리듬을 타며 다니신다. 한 때 좀 놀아봤을 법한 문신을 잔뜩 한 할아버지도 눈을 지그시 감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춤을 추다가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보다 더 짱짱한 체력을 자랑하며 음악에 몸을 싣는다. 무대 앞에서 둘씩 짝을 맞춰 공연 내내 브루스를 추는, 엄청난 수의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도 보았다.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를 보려면 좀 이상한 축제들을 찾아가야 한다. 이 도시는 묘한 슬로건 하나를 갖고 있다. ‘Keep Portland Weird!’ 그러니까 포틀랜드를 이상하게 지켜 나가자는 뜻이다. 그걸 지키기 위해서 하는 축제들이 몇 가지가 있다. 잠을 자도 된다는 ‘조용한 음악 축제(Quite Music Festival)’, 물위에 뜨는 갖가지 도구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떠다니는 강 축제(Float Down the River)’,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괴상한 세계 최대 규모의 ‘알몸으로 자전거 타기 축제(Naked Bike Festival)’ 등. 날이 그리 덥지 않아서 강에 뛰어들거나(이 날엔 비도 살짝 왔다) 알몸으로 자전거를 타기(이건 꽤 쌀쌀한 밤이었다)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다들 날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사를 즐겼다. 이 글을 쓰며 이상한 축제들이 더 있나 찾아보았다. ‘외발 자전거 타기 축제’와 ‘괴상한 의상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축제’도 있다. 조금 평범해 보인다.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틀며 가짜 상품을 광고하는 ‘가짜 영화제’도 있다. 이건 재미있을 거 같다. ‘수염 난 여인들 대결 행사’도 있다. 농담이 아니다. 음, 정말 괴상한 동네 포틀랜드다.며칠 전에는 조금 멀리에서 열리는 커씨드럴 파크 재즈 축제에 다녀왔다. 세이트 존스라는 다리 아래 공원에서 하는 행사인데, 남편이 특별히 좋아하는 다리라 멀어도 꼭 가고 싶었다. 다리를 건너면 중세 고딕풍의 그로테스크한 장소가 나올 듯 보이지만 실제 세인트 존스라는 동네는 포틀랜드 북쪽에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다. 축제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정신을 잃은 남편을 두고 난 혼자 그 근처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쇼 윈도에 옛날 장난감과 튤립이 있어 앤티크 가게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그냥 이름만 ‘튤립’인 빵 가게였다. 별 관심이 없어 방향을 트는데 가게 문이 열린다. 주인은 이제 막 문을 닫았다며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베리와 생크림 빵이 세 개나 들어있다. 내가 괜찮다고 웃으니 꽤 맛있으니 친구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권한다. 얼떨결에 빵을 들고 남편이 있는 레코드 가게 앞으로 가니 쇼핑을 끝낸 남편이 나온다. 우린 선물로 받은 빵을 들고 다리 밑 공원으로 내려갔다.이제 막 재즈 공연이 시작하고 있다. 바람이 부는 저녁 일곱 시, 해는 아직 중천에 떠있다. 공짜 빵 한 조각에 맥주를 마시니 금세 알딸딸해진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축제라 북적대지 않아 좋지만 음악이 조금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공원 잔디에 벌러덩 누워 바람을 맞으며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이곳 여름을 찬양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Keep Portland Weird!’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