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포틀랜드 스타일 피크닉

포틀랜드에 가면 대자연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But Portland is….

BYELLE2017.06.01


 

이곳으로 오기 전 포틀랜드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상상할 때면, 늘 멋진 폭포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그려졌었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듯 부스스한 얼굴에 슬리퍼를 신고 아무렇지도 않게 폭포 주위를 어슬렁거릴 우리. 집 앞을 산책하다 그런 웅장한 대자연과 무심하게 마주칠 수 있는 도시. 그런 곳이 포틀랜드일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구글 지도로 포틀랜드 시내도 찾아보고 우리가 지낼 숙소 근처도 찾아보았다. 어디나 다 헐렁하고 휑했고 당연히 그 썰렁한 거리를 살짝만 벗어나면 숲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를 혼자 철썩 같이 ‘대자연의 도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와서 지내보니 포틀랜드는 그래도 역시 도시다. 공항에서 다운타운으로 오는데 고작 30분밖에 안 걸리는 작은 도시지만, 길에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는 한가한 도시지만, 그런 대자연이 도심 속에 있지는 않았다. 시내에 나무와 잔디가 깔린 공원도 많고, 다양한 형태의 분수도 많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그래도 차를 타고 몇 시간은 나가줘야 그럴듯한 산도 만나고 바다도 만나며 폭포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일 년이 넘도록 그런 대 자연을 본 건 손가락으로 꼽는다. 우리처럼 집에서 꼼지락거리며 노닥거리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차를 빌리는 수고로움까지 곁들여 멀리까지 나서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딸애가 친구들과 함께 피크닉을 갔다 왔다. 그리곤 가까운 곳에 꽤 큰 공원이 있었는데, 우리는 바보같이 일 년 가까이 모르고 살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찍어 온 사진을 보니 동네 공원이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고 숲이 우거졌다. 테이버 공원(Mt. Tabor Park)이라는 곳으로 버스로 몇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도심 안에 있는 공원이다. 포틀랜드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도 있고, 커다란 저수지까지 몇 개가 있다. 이 정도면 대자연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우리도 도시락을 싸들고 피크닉을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원을 생각하면 일단 주변의 상점들이나 먹 거리 노점상을 떠올리게 된다. 기념품가게나 슈퍼는 공원과 한 몸처럼 같이 붙어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곳의 공원들은 아무런 편의 시설이 없다. 조금 오래 있으려면 물과 도시락은 필수다. 심지어 공원이라는 표지판도 억지로 찾아야만 간신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콩알만 한 글씨로 쓰여 있다. 이곳 테이버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버라는 작은 산이 눈앞에 보이고 그 방향을 향해 가는데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만한 표시가 나오지 않는다. 오르는 길이 공원의 규모에 비해 좀 엉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린 샛길로 가고 있었다. 어쩐지 길이 좀 험했다. 화장실도 한참을 찾아 간신히 산 중턱의 교회건물에서 해결했다.
그래서였을까? 이곳 저수지에는 삼사년에 한 번씩 시민의 방료 때문에 저수지 물을 다 버려야만 하는 큰 사건이 생겼다고 한다. 이 인공저수지는 해마다 봄가을에 물을 빼 수질 검사를 하는데, 방료 사건은 꼭 수질 검사를 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발생했다. 덕분에 3천 8백만 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물을 다 버리고 다시 받았다고 한다.
욕조 물을 받았다가 버리는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 버리는 쪽에서도 오랜 고민 끝에 버렸다고 한다. 저수지 수질 검사결과 물의 위생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시민들의 불안을 생각해 다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환경단체는 낭비라며 비난했다 동물들도 매일 저수지에 와 용변을 보니, 인간 한명의 소변이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며 말이다.
하지만 나도 버리는 쪽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땅에 떨어진 가래떡처럼 어쩐지 알고 나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떨어졌던 사실을 만약 몰랐다면 먹을 수 있지만, 일단 알게 되면 아무렇지 않게 먹기는 힘들다. 여긴 비도 많이 와 물이라면 넘치는 곳이니 아깝지만 괜찮다며 포틀랜드 시는 사람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테이버 공원은 여기 오기 전 내가 상상했던 그런 포틀랜드와 비슷했다.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도심이 한 눈에 보이는 경관. 슬리퍼를 신고 반바지 차림에 개를 끌고 온 동네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도심 가까이에 이런 자연이 있었는데, 우린 전혀 알지 못한 채 일 년도 넘게 살았다니 어쩐지 억울했다.
어릴 적 동화책에 나온 드넓은 초록 잔디밭에 핀 하얀 데이지 꽃들은, 그냥 그림이라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마그리트의 그림속의 반듯한 집과 커다란 나무들 역시 그림이라 저리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림은 상상력을 동원해 맘대로 그리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 그림 같은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

포틀랜드가 과하게 예뻐 보이는 계절이 왔다. 드디어 지겹도록 내리던 비가 멈추고 햇살의 포틀랜드 왔다. 너무 그림 같아서 이건 좀 너무 현실감이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 계절이다.
짧고 찬란한 이 계절의 포틀랜드가 다시 비로 물들기 전에 좀 많이 누려보면 좋으련만, 오늘도 우린 집에 도란도란 앉아 거기도 가고 저기도 가보자며 수다만 떨고 있다. 뭐 맘만 먹으면 슬리퍼를 끌고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니까. 이제 맘만 먹으면 된다.


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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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선현경
  • 에디터 김은희
  • 그림 이우일
  • 디자이너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