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포틀랜드? 이젠 집이 헷갈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잠시 서울을 찾은 선현경 패밀리. 서울에 와보니 어느새 집처럼 포근해진 포틀랜드의 빈자리가 느껴졌다는 사실. ::선현경, 이우일, 포틀랜드, 서울, 동화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엘르, elle.co.kr:: | 선현경,이우일,포틀랜드,서울,동화작가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내 고향 서울지난해 11월,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였다. 깍깍대는 소리에 하늘을 보니 어마어마한 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히치콕의 영화 <새>의 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많은 까마귀가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위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쩐지 좀 서늘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퍼덕이며 날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로 옮겨 앉았다. 그 후로 매일 같은 시간, 오후 네 시쯤이 되면 까마귀 떼들이 그 나무로 모여들었다 날아갔다. 나뭇잎이 듬성듬성 있는 가지 사이사이에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 꼭 까마귀가 나무에 열매 맺은 것마냥 보였다. 그로테스크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난 그 까마귀 떼들이 몰려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까마귀 무리가 친구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 정도 펼쳐지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봄이 될 즈음부터 까마귀들이 다시 오질 않았다. 섭섭했다. 어디 다른 쉬기 좋은 나무를 찾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혹시 까마귀들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시간이면 그 큰 나무 아래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까마귀들이 나무에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다시 11월이 가까워지고 있다. 벌써 한 해의 한 바퀴를 돌아온 모양이다. 이곳에 정착한 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나왔기에 일년 후엔 어디로든 다시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일 년을 살아보니 일년을 더 지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이곳 포틀랜드는 한적하고 평화롭고 공기 좋고 물 좋다. 게다가 물가도 싸고 교통도 편리하다. 맛난 맥주까지 있다! ‘그래, 더 머물자.’ 집을 일 년 더 연장 계약했다. 마음 같아선 강 건너 동쪽 동네에서도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일 년 동안 늘어난 자질구레한 짐들을 싸들고 다니느니 그냥 가끔 놀러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이것저것 잔일을 처리하기 위해 식구 모두(고양이까지!) 2주간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로 향하기 전 마음이 참 이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집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많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늘 살던 곳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새로웠다. 마치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떨렸다. 아무리 긴 여행을 다녀 왔어도 내 집은 언제나 한국에 있는 서울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 뿌연 하늘과 차들로 막히는 도로를 보면 늘 집에 왔다는 걸 실감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내 책상 그리고 이부자리를 포틀랜드에 두고 와서 그런 걸까? 내가 돌보던 식물을 두고 걱정하며 떠나와서 그런 걸까? 분명 가족이 모두 함께 인데도, 서울에서 우린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 같았다. 살아왔던 고향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니니 한 발짝 떨어진 느낌이었다. 혹시 그토록 원하던 진짜 이방인이 된 걸까? 어쩐지 소속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집만한 곳이 없다서울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더 바빴으며 더 어수선했다. 어쩌면 서울은 그대로인데 나 자신이 바뀐 걸지 모르다. 포틀랜드에서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없이 느긋하게 생활했던 것 같다.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포틀랜드와 가까워진 우린, 나름의 한적한 포틀랜드 생활에 젖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니 물론 즐거웠다. 어떤 걸 먹어도 맛있고 누구와 만나도 대화가 잘 통했다. 하루 여섯 끼를 먹고 몸무게는 2kg이나 불었다. 서울에서의 2주는 생각과는 달랐다. 마치 빨리 돌리기 버튼이 눌린 채 생활하고 온 기분이다. 2주가 훅하고 스쳐 지나갔다. 포틀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편안한 기분이 드는 내가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포틀랜드에 도착해 우거진 나무들과 사람 드문 거리,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내가 조금 낯설었다.요즘 포틀랜드는 완연한 가을에 우기다. 낙엽색이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매일매일 끊임없이 오는 비 때문에 눈에 띄게 나무들이 앙상해지는 중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일 년을 보내고 있으니, 이제 몇 달간 내리는 비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 비가 온다고 할 일을 미루거나, 비가 온다고 갈 곳을 안 갈 수는 없다. 비가 오면 가야지 하고 미뤄두었던 몇몇 실내 놀이터들이 있다. 아트 뮤지엄이나 장난감 박물관! 실내에 있는 좋은 이 장소들을 비 오면 가려고 날 좋은 여름부터 차곡차곡 미뤄두고 있었다.사실 늘 집 떠난 기분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서울을 여행으로 다녀오니 비로소 여기가 우리 집으로 느껴진다. ‘어느 곳에서든 살다 보면 내 집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이젠 정말로 어디에 있던지 아무렇지 않을 것만 같다. 진짜 방랑자가 된 기분이다. 고양이와 우리 식구 모두가 함께라면 어디든 집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포틀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편안한 기분이 들고 있는 내가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늘 집 떠난 기분으로 살고 있었는데, 막상 집이라고 생각하던 서울을 내 집 없이 다녀오니 비로소 여기가 집처럼 느껴진다. ‘잠깐 머무르는 곳도 집이 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이젠 어디서 살아도 아무렇지 않을 것만 같다.   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