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포틀랜드, 남편의 마지막 수집 생활벌써 포틀랜드에서의 생활이 반년이나 되었다. 이젠 이 도시가 여행지 같지도, 낯설지도 않다. 지하 차도에만 내려가도 방향을 잃어버리는 나 같은 방향치도, 포틀랜드 시내 어디에서도 집 방향을 찾을 수 있을 정도가(이제야) 되었다. 동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도 생겼다. 너무 익숙해 한국말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유어 ‘목소리’ 이지 체인지. 아 유 캐치 어 콜드?” 뭐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요상한 말을 구사한 적도 있었다. 착한 그 친구는 한국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웃으며 걱정해 줘 고맙다고 말한다. 이 정도 머무니 이젠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여기가 내 집 같다. 문자로 친구들이 지낼만한지를 물어온다. 포틀랜드에서 살기 좋은지 어떤지를 묻는다. 사실 이제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과 점점 비슷한 생활이 되어가는 중이다. 일하고 운동하고 밥 해먹고 가끔 술 마시는 일상. 친구들과의 수다가 그립고, 물냉면과 엽떡이 먹고 싶다. 김치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걸 빼면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서울에서보다 조금 더 활동적이다.언젠가 떠날 사람이란 마음을 품고 산다는 건 생각보다 애틋하다. 시한부 포틀랜드라는 생각에 조금 더 움직이고 찾아 다닌다. 짠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래서일까? 끝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인 걸까? 남편은 지금이 마지막이 될 거라며 수집활동을(여기에서도) 열심히 하고 계신다. 그렇다. 내 남편은 수집가다. 뭐든 모으는 게 취미다. 덕분에 떠나기 전, 집이 거의 창고처럼 변해있었다. 장난감과 엘피, 책 등을 모았는데 요즘은 테이프와 붐 박스를 모으신다. 붐 박스는 모은다기보다 자꾸 고장 나 어쩔 수 없이 모으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설마 그 카세트 테이프?’하는 사람도 있겠지. 맞다. 음악 테이프. 어릴 적 영어 공부할 때 마지막으로 들었던 음질 ‘구리고’ 잘 늘어나는 그 음악 테이프 말이다. 그런데 이곳 포틀랜드, 중고의 도시다. 그 많은 빈티지 가게 어디에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음반 가게에서는 자기네들이 선별한 음악들을 골라 테이프에 손수 녹음해 팔기도 한다. 좋아하는 갤러리나 ‘힙’한 가게에 가면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고 있다. 어떤 가게에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직원이 “요즘은 다들 테이프로 듣네. 아, 나도 붐 박스를 사야겠지?”하며 되묻기도 했다. 이 모양이니 남편은 더 신이나 테이프를 사 모으신다. 역시 ‘힙’한 포틀랜디안이라며. 여기, 포틀랜드 이상하다. 대체 왜 하필이면 지금 테이프가 ‘힙’한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포틀랜드와 테이프. 어딘가 닮은 데가 있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이상한 수집가인 남편과 사심 가득한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보고자 한다. 카세트 테이프가 ‘힙’하다는 남편, 도대체 왜?!대체 왜 테이프를 모으는가? 왜 테이프가 힙한 걸까? 같은 음악도 매체가 바뀌면 다르게 들린다. 여러 가지를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고 이제 테이프로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사 모으는 음반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테이프로 출시된 적이 없는 것 들이다. 과거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로 출시되었던 음반들은 극히 소수였다. 힙스터들은 모더니스트 예술가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단은 남과 다르게 튀고 싶어 한다. 이젠 디지털 파일음악에 염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엘피로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옛날 엘피판도 거의 다 ‘리 이슈’로 재발매되는 실정이다. 힙스터들은 엘피로 음악을 듣는 게 일반화되니 더 먼 곳으로 간 거라 하겠다. 하지만 이젠 아시다시피 테이프로도 리 이슈가 발매되기 시작했다. 이제 힙스터들은 에잇 트렉으로 갈아탈지도 모른다. 에잇 트렉이 뭔지 모르지? 그런 게 있다.(컥, 진짜 모른다! 나쁜...)포틀랜드 음반가게에는 다 테이프가 있나? 음반가게나 빈티지 가게 말고도 테이프를 파는 곳이 있었나? 거의 모든 음반가게가 테이프를 구비해 놓긴 했다. 하지만 양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가격은 이베이보다 싼 편이지만 대중적인 80년대 팝음악이 대부분이라 별로 들을만한 것은 없다. 빈티지 가게에도 대부분 카세트 코너가 있지만 비슷한 수준이다. 정말 듣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이베이에 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고 배송료도 붙는다. 그래서 서울에서와는 달리 수입 관세는 붙지 않아 그나마 위안이 된다.테이프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 글쎄,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거겠지. 다시 말하지만 엘피판을 듣는다고, 테이프로 듣는다고 음악적인 취향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포틀랜드에서 구한 최고의 테이프는? 실은 좋은 건 이베이에서 다 구하고 있다. 작은 도끼 가게랑 미시시피 판 가게에서 녹음해서 파는 테이프는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라 마음에 든다.마지막 질문이다. 늘어난 테이프와 고장 난 붐박스들이 여기서도 쌓이고 있다. 그런 것들은 어쩔 셈인가? 버릴 건가? 붐 박스는 수리하는 곳을 찾아 맡겨볼 생각이다. 테이프는 사실 대책이 없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 먹듯 테이프도 그런 거다. 우린 받아들여야 한다. (ㅎㅎㅎ) 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