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말하는 사람, 네모난
먹지에 대고 그림을 그리고 단편소설같은 글을 곁들이는 일러스트레이터 네모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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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지난달 <엘르>에 실린 화보 중 하나예요. 바다를 상상하면 즐거워지는 것처럼 <엘르>는 즐겁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 주는 존재죠.
'이런 때에 ‘위기’라니.'
'이런 때에 ‘위기’라니.'
그녀는 집을 나오기 전에 체크하곤 하는 오늘의 ‘단어점’을 의아해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날의 상황과 아침에 펼쳐본 사전 속의 단어들이
꽤 잘 맞곤 했었는데.
몇 년간 계속해오는 남자친구와의 연애도,
어제도 '내일 할 것‘이라며 미뤄놓았던 회사일도,
그렇다고 그제 연락 온 그 남자에게 끌린 것도 아닌데?
이 상황에 위기라니. 하나도 와 닿지가 않았다.
그리곤 문을 딸깍하고 여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고, 아무것도 좋지도 싫지도 않은.
바로 오늘 같은 날이 '위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던 때라.......'
딱히 지금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도 어떠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 지나온 시절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은 왠지 예전처럼 '더 좋은 것'을 향해
살기 보다는 '더 싫은 것'을 피해가며 사는 것이 아닐까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좋은 것'을 향해있지 않으면서, 아침에 단어점이나 치고 있는 지금 이순간이
그녀에게 가장 '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걷고 싶지 않았다. '위기....위기라니...'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시계를 보아버리고 말았다.
'이크 늦겠네.' 그녀는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위기 따위는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위기 따위를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금 위기가 아닐까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며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아 오늘 그냥 낮은 굽을 신을걸... 하는 생각을 하던 중에
집 앞 정류장에 바다사진이 크게 프린트된 광고판이 보였다.
그녀는 학창시절의 E를 떠올렸다.
문득, 학창시절 E가 바닷가가 크게 프린트된 사진 앞에서
진짜 바닷가에 온 것 같다며 즐거워하던 일이 생각났다.
늘 환하게 웃고, 여유롭던. 꿈같던 그녀를 떠올렸다.
'바다에 가야겠다'
E의 단어점엔 '위기'같은 카드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별다를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자세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E의 여유들을. 웃음들을 떠올렸다.
숨을 크게 쉬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위기'점이 나올 때마다. 광고판 앞에 한참 서 있곤 했다.
그건 마치 바다로 향하는 설레임을 사는. 그런 기분이었다.
‘꽃은 싫지만 당신이 사오는 꽃은 좋아해’.
‘오늘은 정말 최악이야’.
혁오밴드의 앨범 <22> 아트워크. ‘스물두 살은 아주 푸른 색’이라는 오혁의 말에 영감을 받아 그렸다.
NEMONAN
판화를 전공한 네모난은 먹지를 대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며 단편소설 같은 글도 쓴다. 그 글이 읽힐지 아닐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림이 이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판화를 전공했다던데 판화 작업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요. 대신 작업 과정이 긴 판화보다 느낌을 바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드로잉에 매력을 느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도 겸하고 있죠.
마음에 드는 <엘르> 화보에 먹지를 대고 선을 그렸다고 했어요 먹지는 제게 중요한 요소예요. 종이에 펜으로 직접 그리는 일반적인 드로잉과는 달리 먹지를 거치면서 직접적이지도 간접적이지도 않게 애매해지는 느낌이 매력적이죠. 먹지를 대고 그리는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하고요.
실제로 그린 그림마다 단편소설처럼 ‘이야기’를 지어서 곁들이잖아요 미술을 하기 전에는 소설가가 꿈이기도 했어요. 제가 그림과 함께 지어낸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구전처럼 전해져 계속 살아남아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야기는 읽지 않고 그림만 본다면요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림에 담는 게 중요하죠. 스타일이나 특이한 색감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데 사람들이 그 ‘무엇’을 보고 저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왜 ‘네모난’인가요 사각 턱이에요. 초등학생 때부터 별명이 ‘네모’였어요. 지금은 ‘예술계의 공무원’이라는 별명도 있어요. 매일 아침 9시에 작업실에 나가 오후 5시까지 출근하듯이 그림을 그리거든요. 매일 그림을 그리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느려도 천천히, 꾸준히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Credit
- CONTRIBUTING EDITOR 김은희
- DIGITAL DESIGNER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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