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세상을 좀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면 된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가구를 만드는 남자, 하이메 아욘이 서울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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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행복이 깃든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하이메 아욘(Jaime Hayon). 2011년부터 북유럽 가구를 대표하는 프리츠 한센과 손잡고 ‘환상의 호흡’을 발휘하고 있는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밀라노 디자인 빌리지의 논현동 쇼룸, 프리츠 한센의 가구들로 꾸며진 2층 공간에서 하이메 아욘과 <엘르> 코리아의 설레는 독대가 이뤄졌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챕터원에서 구입한 작은 선물을 전하자 그는 기쁜 표정으로 포장 상자를 가리키며 “내가 좋아하는 블루!”라고 외쳤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옷차림 역시 조금씩 다른 채도를 지닌 블루 컬러의 셔츠와 재킷, 양말을 매치했다. 핑크빛 소파에 몸을 기댄 그는 동화 속 마법사 같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된 순간 열정이 넘치는 워커홀릭이자 치밀한 프로의 모습이 보였다.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의 머릿속에 백만 가지 상상이 스쳐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선물이 맘에 드나. 하회마을에서 수제로 만든 수수빗자루다 숙녀에게 받는 선물은 언제나 기분 좋다(웃음). 새로운 물건을 집에 들이려면 아내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데, 이건 분명히 통과할 거다!
옛 SAS 로열 호텔이었던 코펜하겐의 레디슨 블루 로열 호텔 506호 얘기부터 시작하자. 아르네 야콥슨이 디자인한 아이코닉한 호텔의 한 개 룸을 새롭게 꾸몄다. 디자이너로서 탐낼 만한 프로젝트였을 것 같은데 프리츠 한센이 이전에 여러 디자이너에게 제안했지만 맘에 드는 아이디어가 없었다고 하더라. 그중에는 아르네 야콥슨의 열혈 팬을 자청한 이들도 있었다 하고. 솔직히 말해 나는 아르네 야콥슨의 팬은 아니었다. 그가 역사에 남을 중요한 가구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존경하는 마음과 팬이 되는 것은 다르니까. 참고로 나는 요제프 호프만(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의 팬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을 때, 더없이 행복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아르네 야콥슨이 빚어낸 공간과 가구들이 당신의 디자인과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다 아르네 야콥슨이 설계한 공간은 아주 독특하다. SAS 로열 호텔의 창문은 일반 호텔들처럼 크지 않다. 그는 사람의 시야와 빛의 각도 등을 고려해 좁고 긴 파노라마 창문을 만들었다. 천정에는 이렇다 할 조명 장치도 없다. 호텔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낮과 밤에 어떤 종류의 빛이 들어올지 아주 궁금했다. 창문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가구의 높이도 중요했다. 만일 르 코르뷔지에의 ‘LC1 체어’를 둔다면 너무 낮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어울려 보이도록’ 완성된 것 같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그 방에 투숙할 수 있겠냐고 묻는데, 현재는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하더라.
1인용 암체어 ‘로(Ro)’는 아르네 야콥슨의 ‘에그 체어’만큼이나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 같다. 모던하고 개성 있으면서도 클래식한 우아함을 지녔다 로 체어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인터넷을 통해 멋진 사진들을 많이 봤다. 어제는 인스타그램에서 한 모델이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 사진을 봤는데, 아주 근사했다. 로 체어에 앉아 있는 아기나 동물 사진들도 많더라. (휴대폰을 꺼내서 로 체어를 검색하더니) 이것 보라,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프리츠 한센 제품 중에 이름난 디자이너 체어는 많지만, 테이블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는데 드디어 당신의 ‘아날로그(Analog) 테이블’이 탄생했다. 의자를 디자인할 때와 달리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지금 여기 아날로그 테이블에 여섯 명의 사람이 앉아 있지 않나. 어떤 위치에서도 전체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편안하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네모난 식탁이라면 몸을 돌려야 했을 거다. 이 테이블의 상판은 매우 독특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녔다. 동그라미를 길게 늘어뜨린 형태로 원형 식탁의 기능성은 살리면서 공간을 덜 차지하게 만들어졌다. 너그럽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초대하는 테이블이다. 격식 있는 저녁 모임이든 사무실이든 어떤 장소나 상황에도 어울릴 만하다. 함께 두면 좋을 다이닝 체어도 구상하고 있으니 기대하길.
1 어느 시선에서나 아름다운 곡선을 감상할 수 있는 파븐 소파. 파븐(Favn)은 덴마크어로 ‘포옹’을 뜻한다.  
2 사각형, 원형, 타원형의 특징을 모아 새로운 형태로 디자인한 ‘아날로그 테이블’.
3 하이메 아욘이 아르네 야콥슨의 ‘드롭 체어’와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들로 꾸민 레디슨 블루 로열 호텔 506호.
아르네 야콥슨의 뒤를 이어 프리츠 한센의 차세대 간판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프리츠 한센과의 호흡은 어떤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새로운 회사와 일할 때면 그 회사의 DNA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처음 프리츠 한센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정교한 작업에 감명받았다. ‘파븐(Favn) 소파’를 선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14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할지도 모를 만큼 꼼꼼하게 디테일을 검토한 덕분에 어떤 각도에서 봐도 아름다운 가구가 완성됐다. 요즘 가구 시장을 둘러보면 확신 없이 내놓은 제품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직접 목재를 자르고 셰이핑하고, 만져보고, 앉아보고, 사방에서 바라보고,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확인한다.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그렇게 수개월간 실험을 계속하는데, 놀랍게도 누구도 말리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최고의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공동 목표가 있을 뿐이다.
당신이 만든 의자와 소파들은 사람들의 편안한 휴식을 돕는다. 하이메 아욘에게 최고의 휴식이란 집에 머무르는 시간들.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 아니겠나. 사실 가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 좋은 와인 그리고 음악이 있으면 된다. ‘정신적인 휴식’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바쁘고 분주할 때 더 기분이 좋다. 아무 일도 안 하면 과연 편안할까? 글쎄, 나는 그렇지 않더라.
두 명의 자녀가 있다고 들었다. 당신처럼 창조적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법이 있을까 아이들은 아이답게 꿈꿔야 한다. 부모로서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남과 다르거나 평범하지 않은 것들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가르쳐줄 수 있겠지. 창조의 즐거움은 숲을 뛰놀고 농담을 나누고 보물찾기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 속에서 자연스레 깨닫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즐기도록 하는 거다.
이야기하면서 계속 종이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고 있더라. 평소 작업을 위한 스케치도 손으로 하는지 그렇다. 모두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니까. 나는 ‘노 테크(No Tech)’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다. 두고 보라, 지금은 사람들이 어딜 가나 와이파이에 매달려 ‘연결’되고 싶어 하지만, 나중에는 모든 연결을 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될 거다. 아날로그 하이메!
Credit
- editor 김아름
- photo 김상곤
- design 최인아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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