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세상에서 가장 바쁜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비밀 프로젝트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하이메 아욘. 그가 한국에 선보이는 첫 번째 공간 디자인 프로젝트인 ‘모카 가든(MOKA Garden)’. 비밀에 부쳐졌던 환상의 세계에 <엘르>가 첫 발을 디뎠다.

BYELLE2020.10.31
 
하이메 아욘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 모카 가든의 놀이터 ‘모카 플레이’.

하이메 아욘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 모카 가든의 놀이터 ‘모카 플레이’.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스페이스원 3층에 자리 잡은 모카 가든. 유리로 된 큐브 빌딩에서 하이메의 강렬한 그래픽이 눈에 띈다.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스페이스원 3층에 자리 잡은 모카 가든. 유리로 된 큐브 빌딩에서 하이메의 강렬한 그래픽이 눈에 띈다.

스페인 발렌시아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이메 아욘.

스페인 발렌시아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이메 아욘.

놀이터를 구상하며 그린 하이메 아욘의 스케치.

놀이터를 구상하며 그린 하이메 아욘의 스케치.

5년 전 하이메 아욘을 처음 인터뷰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4월 밀란 디자인위크 기간에 가장 많은 프로젝트를 선보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고, 프리츠 한센 쇼룸에서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후 인터뷰를 위해 잠시 마주 앉은 참이었다. 불행히도 인터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고 대화는 자주 끊겼다. “이럴 바엔 우리 그냥 파티를 즐기는 거 어때요? 인터뷰 답변은 나중에 꼭 보내줄게요.” 밀란의 따스한 오후 햇살 속 주황빛 스피리츠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나 또한 이미 진지한 인터뷰에 대한 의지가 희미해졌기 때문에 흔쾌히 그러기로 했다. 전 세계 디자이너와 관계자들이 한 도시에 모여 떠들썩하게 행사를 벌이는, 그야말로 ‘크레이지’한 디자인 주간을 보낸 후 한국에 돌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하이메의 메일이 도착했다. 약속대로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을 보내준 것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편한 방법이라며 기나긴 음성 녹음 파일을 첨부한 채로 말이다. “가족과 집이 있는 발렌시아로 돌아왔어요. 지중해를 품은 이 해안 도시에 도착한 순간 나는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 아니라 인간 하이메 아욘으로서 ‘크레이지 라이프’가 아닌 ‘심플 라이프’를 되찾게 되죠.” 그의 음성 너머엔 새소리와 정겨운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인터뷰 이후에도 밀란에서, 런던에서, 코펜하겐에서, 스톡홀름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마다 그는 매우 바빴고, 언제나 새로운 가구 또는 작품을 선보이고 흥미로운 디자인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하이메 아욘은 세계 각국의 가구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상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아트 퍼니처 전문 갤러리 크레오와 대형 뮤지엄 등에서 자신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특유의 밝고 화려한 캐릭터를 지닌 동시에 매우 럭셔리한 분위기의 호텔과 레스토랑, 숍, 라운지 등의 공간디자인 작업도 여럿 진행했다. 그런 그가 11월, 한국에서는 최초로 작업한 공간 오프닝을 앞두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 있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 내의 문화예술 공간인 ‘모카 가든(MOKA Garden; Hyundai Museum of Kids’ Books and Art Garden)’이 그것이다. 지난 2015년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문을 연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의 두 번째 공간으로, 자연 감성과 가치를 도시에서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가든’을 테마로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한국과 한국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맡으며 굉장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공간에 연출해야 하는 도전 정신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였고, 결과가 훌륭하게 마무리돼 매우 뿌듯하고 설레요. 모카 가든을 찾는 여러분도 깜짝 놀랄 거예요.”
 
라이브러리와 실내 정원 그리고 실내 놀이터, 세 공간으로 구성된 모카 가든의 백미는 바로 디자이너 이름을 그대로 딴 ‘하이메 아욘 가든(Jaime Hayon Garden)’이다. 직사각형의 실내 정원에는 굽이치는 길을 따라 그가 디자인한 7개의 커다란 조각상이 자리하며 가운데에는 분수대도 있다. 하이메의 상상에서 탄생한 이 동물 모양의 조각들은 그가 직접 이름도 붙였다. 소시지를 얹은 듯한 모자를 쓰고 있는 강아지는 ‘Do Good Dog’, 황금빛 귀를 가진 라마는 ‘Proud Llama’, 한 손에 공을 든 원숭이는 ‘Thinking Monkey’, 양쪽에 매우 크고 동그란 귀를 가진 ‘Listener’ 등이다. 이 조각들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일상에 치여 잊고 있던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해 보자고. 그 자연이 어떤 형태인지 관찰해 보자고. 우리의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고, 언제나 웃음과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말자고. 하이메는 정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이름으로 된 정원이라니! 멋지지 않나요? 이 프로젝트는 내 인생에 찾아온 멋진 기회였고, 지금까지 해온 작업 중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라 말하고 싶어요. 디자인을 구상하며 ‘아무도 한 적 없는, 기존의 것과 다른 공간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꿈꾸는 듯한 분수 조각상의 입에서 떨어지는 시적인 물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이 더해져 멋진 하모니를 이룰 겁니다. 이곳의 정체성에 대해 조각 정원인지, 식물을 보며 걷는 곳인지, 커피를 마시면서 사색과 산책을 하는 곳인지 묻는다면 ‘모르겠다’가 대답입니다. 이 전부가 가능한 곳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그때 내 대답은 ‘예스’죠.”
 
‘하이메 아욘 가든’에는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 조각 분수대 외에도 상상 속 동물 조각 작품이 정원과 어우러진다.

‘하이메 아욘 가든’에는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 조각 분수대 외에도 상상 속 동물 조각 작품이 정원과 어우러진다.

발을 내려다보고 있는 ‘Curious Morpho’ 조각상.

발을 내려다보고 있는 ‘Curious Morpho’ 조각상.

자유롭고 컬러플한 요소들이 하이메 아욘의 스타일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유롭고 컬러플한 요소들이 하이메 아욘의 스타일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린이가 마음껏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라이브러리(렌더이미지).

어린이가 마음껏 책을 읽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라이브러리(렌더이미지).

어린이책미술관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하이메는 라이브러리도 디자인했다. 그는 이곳을 작은 미로를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S자 모양으로 뱀이 굽이치는 듯한 모양의 책장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해 어린이들이 책 사이를 유영하며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했다고. 하얀 천장에는 그의 스케치북 드로잉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입체 장식 효과가 인상적이다. 라이브러리에는 큐레이션한 식물 관련 도서 2000여 권이 소장돼 있고, 전시 공간인 ‘아트랩’과 어린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에듀랩’ 공간도 별도로 갖췄다. 라이브러리에서 지식을 얻고 조각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후에는? 신나게 놀 시간이다. 원형극장에서 구조를 따와 중앙 놀이터를 3층 좌석이 빙 두른 형태로 디자인한 ‘MOKA Play’ 놀이터에는 하이메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 벽화로 설치돼 있다. 그는 이 벽화를 구상하며 ‘진화’를 테마로 문명 발전, 인간이 함께 모이고 감성을 교류하면서 탄생하는 이야기들,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긍정적이며 희망찬 감성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이메 특유의 화풍과 디테일 요소가 그대로 반영된 컬러플한 벽화와 파랑, 노랑, 빨강, 초록 네 가지 강렬한 색채 동물 조각들이 놀이기구로 설치돼 있다. 아이들이 올라타고 내려오고 만지며 놀면서 조각적인 면에서도 감흥을 줄 수 있도록 구상한 것이다. “화려한 컬러를 가진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재미있는 모습의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고, 라마에 올라타기도 하고, 거인 조각상의 발에서 시소를 타고, 파란 바닥의 퍼즐을 맞추는 행동을 연출할 거예요. 이는 아이들이 직접 연출하는 플레이(연극)이자 놀이인 ‘플레이그라운드’가 되는 것이죠. 아이들은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기계예요. 어른들은 단순히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를 전달하면 돼요. 내가 전달한 도구가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이 도구로 진짜 놀이를 할 것이고 진짜 놀이란 어른의 상상으로는 알기 어려울 겁니다.”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하이메의 흥미진진한 디자인 스토리를 한국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을 거다. 그 또한 한국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작업이 완성된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세계 곳곳을 누비던 출장도 1년 가까이 멈췄다. 모두에게 닥쳐온 이 시기를 그는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행을 적게 다니지만 규칙적인 라이프 사이클과 건강한 음식을 누리게 됐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됐다고. 모두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늘 스케치북과 수많은 컬러의 펜을 지니고 다니면서 끊임없이 드로잉을 하는 그는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 더 나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천상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다. 마지막으로 이번 모카 가든을 찾는 한국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부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 공간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언제나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자유롭게 즐거움을 느끼고 그 다음에 새로움을 발견하길 바라요. 이 프로젝트는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완성했어요. 매 순간 공간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며 감성적으로 접근했는데, 내가 느낀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마치 판타지 세계의 입구로 들어가게 만드는 충동 같은 것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