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자 없는 남자들>의 회상

오랜만이고도 익숙한 9년만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 7개 이야기의 심장이 동시에 뛰는 책 속 여행. 그리고 월간 윤종신이 음악으로 재해석한 ‘여자 없는 남자들’까지.

프로필 by ELLE 2014.09.04

 

지난달 <엘르> 9월호 북 컬럼에 이 책 <여자 없는 남자들>을 소개하고 싶어 출판사에 여러 번 전화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커버 디자인 완성 전이라 결국 리스트에서 빼야 했는데 며칠 전 드디어 책이 책상 위에 이 소설집이 도착했네요. 이 소설집의 간단한 소개는 지난 번 마감에 풍문을 자료 삼아 써놓고 내보내지 못한 원고로 대체해 봅니다.

 

<여자가 없는 남자들> by 무라카미 하루키

얼마 전 재출간된 <동경기담집>은 곧 출간될 무라카미 하루키 9년 만에 단편집 <여자가 없는 남자들>의 예고 격이었다. 월간 <문예춘추>에 연재한 네 작품과 계간지 <몽키>에 실린 <세헤라자데>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 수록돼 있는 이 책은 여러 가지 단편을 단순히 꿴 책이 아니라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라는 테마를 모티프로 전개되는 연작 단편집이다. 여기서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란 연애 못하는 남자가 아니라 아내를 잃었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잃을 위기에 처한 남자들을 뜻하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키노> 등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서 남자들 각자의 상황을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잘난 체하게 되거나, 변명하게 될 가능성이 커서작품 후기 쓰기를 꺼려했던 하루키가 업무보고적성격을 가득 담아 담백하게 내려쓴 머리말도 인상적이다. 문학동네 펴냄. 양윤옥 옮김.

 

한국어 판본을 받아보니 일본 <문예춘추>에 개재됐을 때 홋카이도의 한 마을 나카톤벳쵸을 비하했다는 논란으로 가상의 지역으로 지명을 바꾸는 해프닝이 벌어졌던 <드라이브 마이 카>를 비롯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여자 없는 남자들> 6,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일본어판과 동일한 라인업이고요.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을 무대로 했지만 케이스는 반대(!)인 작품 <사랑하는 잠자>가 추가돼 총 7편이 수록돼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이 아니라 판본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네요. 아쉬운 건 한국어 판본엔 작가가 업무보고적성격으로 썼다는 일본어판 서문이 실리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그리하여 하루키 선생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단편집 <Men Without Women>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집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 봅니다.

 

 

 

 

 

 

어째서 그런 모티프에 내 창작의식이 붙들려버렸는지(붙들렸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구체적인 사건이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것도 아니고(다행스럽게도), 주위에서 실례를 목격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현재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혹은 완곡한 예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게 그런 구마의식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선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제목은 처음부터 여자 없는 남자들로 정해져 있었고, 중간에 생각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바꿔 말하면 나는 아마도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연스레 바라고 있었던 것이리라.

- 일본어판 서문에서

 

 

 

 

 

 

 

이 주의 밑줄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당신이 아무리 전문적인 가정학 지식을 풍부하게 갖췄다 해도,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시간과 함께 색은 다소 바랠지 모르지만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룩의 자격을 지녔고 때로는 얼룩으로서 공적인 발언권까지 지닐 것이다. 당신은 느리게 색이 바래가는 그 얼룩과 함께, 그 다의적인 윤곽과 함께 생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 <여자 없는 남자들> 중에서

 

 

 

 

 

 

가끔이었을지언정, 찔리는 밑줄

 

 

가후쿠가 보기에,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카쓰키는 분명 후자였다. (중략) 상습적인 술꾼이 대부분 그렇듯이 다카쓰키는 알코올이 들어가자 입이 가벼워졌다. 아마도 말해서는 안 될 것까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해서 말했다.

- <드라이브 마이 카> 중에서

 

 

 

 

 

 

이 주의 덤

 

 

<월간 윤종신>, 매달 받아보고(!) 있나요? 전 월간 윤종신을 통해 음악 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데요.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 치부한 가수의 가창력을 알아채거나 잠시 잊었던 가수의 목소리를 더듬게 되거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배우의 의외의 면면을 발견하거나 혹은 가수 윤종신 씨의 호기로운 비주얼적 변신 등을 음미하는 게 꽤나 즐겁습니다. 부디, 폐간하지 않길 바라요.

 

 

 

 

 

 

 

온라인 편집숍 29cm <월간 윤종신> 팝업스토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온라인 편집숍 29cm에 들렀다가 8 <월간 윤종신>이 앞서 소개한 하루키 선생의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과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영감 받아 동명의 음악(부제는 새벽의 전화’)으로 탄생한 윤종신 편집장의 작업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29cm의 팝업 스토어(www.29cm.co.kr/pt/monthlyyjs/#slide/34), 뮤직비디오만 보려면 여기(www.youtube.com/watch?v=nm-l4PHUHDg)를 눌러 주세요. 뮤직비디오 속엔 소설책뿐 아니라 4 15초경엔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 좋은 배우가 짧지만 임팩트 있게 등장하네요.

 

 

 

 

 

 

 

 

창작에서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보게 되는 것만큼이나 멋진 동기는 없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하루키의 에세이에 공감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제 노래 세계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별 후에 남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감정들을 특별하게 표현을 하셨더라고요. 세월의 흐름에도 절대 무뎌지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감각을 존경합니다.

- 윤종신 컬레버레이션 인터뷰 중 발췌

 

 

 

Credit

  • editor 채은미
  • photo 29cm
  •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