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사도 된다는 확신 #비움라이프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의 저자이자 유튜브 채널 '단순한 진심'을 운영하고 있는 최현우, 류하윤 부부의 미니멀라이프 일대기.

프로필 by ELLE 2023.10.08
ⓒ Febiyan

ⓒ Febiyan

노르웨이 시골의 고요한 오두막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까지 네 곳의 겨울 나라에서 90일간의 여름날을 보내고 있다. 긴 여행을 위한 배낭에는 꼭 필요한 물건으로만 채워야 했다. 카메라와 세 개의 렌즈, 캠코더, 쌍안경은 부피도 많이 차지하고 무겁지만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중요한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 반면 옷은 최소한으로 챙겼다. 1인당 반팔 두 개, 바지 두 개, 긴팔 셔츠 하나, 경량 패딩 하나 그리고 보온 내의와 우의가 전부다. 딱 필요한 것만 넣고, 빼야 할 것을 덜어내다 보니 우리 일상과 닮은 거북이 등딱지 같은 배낭이 탄생했다. 우리의 미니멀 라이프는 4년 전 ‘어떤 물건을 비워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을 품은 물건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고, 물건이 어디에 얼마큼 있는지 모를 정도에 이르렀다. 먹구름이 하늘에 드리운 것처럼 수많은 물건이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무거워진 삶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두 가지였다. 돈을 더 많이 벌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물건을 비워내 삶을 가볍게 만들거나. 지금보다 더 많이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비움을 선택했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비워내다 보니 넓게 살 수 있었다. 더 큰 집에 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과도하게 일하는 대신 산에 가고, 숲에 가고, 바다로 떠나는 시간이 늘어났다. 작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집에 들일 물건의 우선순위를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발견하고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비워내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이 찾아왔다. ‘어떤 물건으로 채우면 좋을까?’ 물건을 적게 가지고 살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이 마음에 쏙 드는 게 중요했다. 여름에 입는 반팔 티셔츠는 두 벌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만듦새가 아쉽다면 분명 또 다른 티셔츠를 사고 싶어질 거다. 운동화나 배낭처럼 매일 쓰는 물건은 더욱 그랬다. 물건을 살 때마다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다양한 브랜드의 여러 제품을 살피며 하나씩 비교하고 있다. 지난한 과정 끝에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발견한다면 다행이지만 품질과 디자인, 가격까지 만족시키는 물건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좋은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 때 구매한다’는 결심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노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골라야 할까 싶다가도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찾으면 비슷한 물건을 만나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흘에 한 번씩 새로운 숙소에서 짐을 푸는 일을 반복하면서 배낭이 작은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진 물건이 적으면 이사가 쉽게 느껴지는 것처럼 숙소를 자주 옮기는 것조차 많이 버겁지 않다. 집에 있는 물건보다 훨씬 적은 양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지만, 우리의 오늘은 충분히 풍요롭다.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물건을 어떻게 정리하고, 빠진 물건이 있는지 살피고 결정하는 데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거북이 등딱지 배낭이 결코 가뿐한 무게는 아니지만, 배낭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은 꽤 가뿐하다. 덕분에 자연과 디자인, 건축, 예술을 찾아다니며 부지런히 걷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몰랐다. 가진 물건이 좀 더 줄어든다면 지루해질줄 알았는데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다. 적은 것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최현우 · 류하윤
유튜브 채널 ‘단순한 진심’을 운영하고 있는 부부. 손으로 노트를 만드는 일을 8년째 이어오며, 지금보다 나은 삶의 가능성을 찾아 여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책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를 썼다.

Credit

  • 에디터 김초혜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