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어웨이크닝! 예술의 낮과 밤에 일어난 일들
두 번째 프리즈 서울. 모두가 이야기했던 예술가와 떠들썩했던 서울의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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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아시아 섹션 중 화이트 노이즈 갤러리의 박론디 작가 솔로 부스. 9월 6일과 7일, 양일간 박론디는 색색의 미러볼 빛 자취를 그린 종이를 펼치고 자신의 깊고 어두운 소망을 노래했다.
눈부신 백색 조명이 빈 곳 없이 쏟아지는 거대한 컨벤션 홀에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미술 작품이 진열되는 아트 페어의 에너지는 어지럽고 기묘하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정상급 글로벌 갤러리들이 컬렉터와 큐레이터에게 인정받은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할당된 면적의 부스에 나열하는 장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팽팽한 묘미. 바로 다양한 연령대와 국적의 수집가와 딜러, 아트 애호가들이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에 압도돼 몇 시간이고 페어장을 걷게 하는 힘이다. 불황은 아트 마켓도 흔들었고, 지난해 ‘프리즈 서울’을 경험한 갤러리들은 기민하게 태세를 바꾼 듯했다. 수백만 달러의 단일 작품 판매로 기록적인 매출을 올린 지난해에 비해 훨씬 다양한 컬렉터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며, 다량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집계된다.

‘파손되지 않는’ 예술품의 거래 조건을 뒤집어, 지속적으로 변하는 현상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호평받은 유코 모리의 작품 ‘분해’(2023). 생 과일을 나무받침대 위에 정물화처럼 배열하고 과일이 건조되면서 변하는 수분에 따라 생성된 신호가 음조로 변환돼 들린다.
아트 페어는 즉각적으로 상업적 이익을 얻을 뿐 아니라 예술가와 그들의 활동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위축된 거래가 예견된 페어에서도 매혹적인 작품들은 판매와 별개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프리즈 서울에 두 번째로 참가한 쿠리만주토 역시 그런 의미에서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한 갤러리다. 가브리엘 오로스코(Gabriel Orozco)가 캔버스에 템파라와 금박을 사용해 만든 작품, 양혜규가 한지로 완성한 조각, 아드리안 빌라르 로하스의 3D 프린트 유기체를 한 데 모아 애호가들의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현대가 펼친 한국 현대미술의 뿌리도 매혹적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여성 예술가로, 동시대 남성에 비해 많이 조명되지 못했던 이성자의 작품을 선보였다.

프리즈 아시아 섹션의 갤러리 실린더는 유신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며 ‘프리즈 서울 스탠드’ 상을 수상했다.
세계 매출 1위에 빛나는 메가 갤러리 하우저 & 워스는 올해 유족이 보유하고 있던 작품을 모두 뮤지엄에 기증한 이후 시장에서 기록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 작가 필립 거스턴의 작품 ‘CombatⅠ’(1978)을 부스의 중심에 걸었다.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튀어나온 팔과 말굽, 신발 밑창 등을 묘사한 도상학으로 필립 거스턴의 후기 스타일을 보여주는 그림 앞에 관람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프리즈 아시아와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즈로 모두 호명된 작가 우한나.
샌프란시스코의 갤러리 제시카 실버맨(Jessica Silverman)은 미국의 신흥 아티스트인 우디 드 오델로(Woody De Othello)의 전시를 기획해 다수의 작품을 판매하는 데 성공했고, 런던과 뉴욕에 기반을 둔 티모시 테일러 갤러리는 1994년생 사하라 롱지(Sahara Longe)의 작품으로 꾸린 솔로 부스에서 13점을 판매해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하우저 & 워스가 그들의 얼굴로 내세운 필립 거스틴의 작품 ‘Combat 1’(1978).
아크라에 본사를 둔 갤러리1957가 선보인 서아프리카 블루칩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의 작품 ‘White Overgrip’(2023), 데이비드 코던스키가 선보인 메리 웨더포드의 작품도 뜨겁게 호명됐다. 네온 불빛과 추상화를 결합한 메리 웨더포드의 신작은 프리즈 서울의 프리뷰 데이 이후 거의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할당된 면적의 부스를 한껏 비워서 주목받은 갤러리도 있다. 월터 프라이스(Walter Price)가 그린 6×8인치의 작은 작품을 부스의 3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도록 한 줄로 내건 더 모던 인스티튜트. 중앙에 마크 핸드포스(Mark Handforth)의 나무 벤치를 배치해 뒤로 느긋이 기대 앉아 월터의 작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곳은 페어 열기에 취해 장시간 관람하는 아트 러버들에게 안락한 쉼터로 사랑받았다.

갤러리 현대가 선보인 20세기 여성 예술가, 이성자의 작품들.
프리즈 서울만의 프로그램인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는 지난 12년 동안 설립된 10개의 아시아 기반 갤러리가 선정됐는데 그중 가장 젊은 갤러리인 서울의 ‘실린더’는 유신애 작가의 솔로 부스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를 꾸렸다. 유신애는 제단화를 차용한 그림을 포함한 일련의 작품을 커튼 뒤로 드러내며 선보였는데 유수의 큐레이터와 매체의 시선을 사로잡아 프리즈 서울 스탠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뉴요커> 전속 미술평론가로 글을 써온 캘빈 톰킨스는 저서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나의 공동체였던 미술계는 이제 영화, 패션, 텔레비전 그리고 광고를 포함하는 전 세계적 시각문화산업의 일부가 됐다. 이는 미술과 산업을 구분하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용을 했다.”

6x8 인치의 작은 월터 프라이스 작품군을 배치해 여백의 미학을 보여준 더 모던 인스티튜트의 부스.
스위스에서 시작된 아트 바젤, 영국에서 출발한 프리즈와 같은 글로벌 아트 페어야 말로 산업이 된 미술을 한눈에, 가장 가깝게 체감할 수 있는 자리이며 동시에 지금의 아트 신을 가장 집약적으로 반영하는 플랫폼이다. 그중에서도 ‘프리즈’가 런던과 LA, 뉴욕에 이어 서울까지, 개최하는 도시마다 거둔 성공은 지역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탄탄한 관계를 모색한 덕일 것이다.

데이비드 코단스키 부스에서 매진을 기록한 메리 웨더포드의 신작들.
2003년 런던의 리젠트 파크에 천막을 치면서 시작된 프리즈 아트 페어는 1991년 탄생한 동명의 아트 매거진 <프리즈>의 팬덤에 힘입어 탄생했다.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로 이뤄진 팬덤에 응축된 에너지를 기반으로 ‘프리즈’ 아트 페어의 모든 프로젝트는 장기적이고 유기적으로 관리돼 왔다. 프리즈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프리즈 서울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박람회는 지역시장에 투자하고 새로운 관객을 양성할 때 성공할 수 있다. 페어가 열리는 주간, 일명 ‘프리즈 위크’에 열리는 수많은 전시와 오프닝 파티, 스튜디오 방문 프로그램, 강연 프로그램 등은 온종일 돌아다녀도 모두 소화하지 못할 만큼 방대하다.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야간 개장한 국제갤러리는 양혜규 작가의 <동면한옥> 전시와 함께 아니시 카푸어의 신작전 <Anish Kapoor>를 열었다.
게다가 프리즈 위크에 맞춰 보테가 베네타가 리움의 강서경 작가 전시에 협력하고 샤넬이 프리즈를 후원하는 등 패션 브랜드들이 프리즈 이슈와 예술에 긴밀히 접촉하는 욕구는 패션 및 아트 피플의 에너지를 한데 엮는다.

리움과 보테가 베네타가 협업한 강서경 작가의 전시 <버들 북 꾀고리>. 전시의 오프닝을 RM을 비롯한 셀럽부터 재계의 유명 인사까지 다양한 관객이 즐겼다.
프리즈가 주관해 서울의 갤러리들이 주최하는 밤의 잔치 ‘삼청·한남·청담 나이트’는 페어 운영시간이 끝난 뒤에도 미술 이야기를 하며 늦은 밤까지 예술 열기를 이어갔다(매일 펼쳐지는 풍성한 이벤트를 소화해 낸 아트 러버들은 무엇보다 체력 비축에 힘써야 했을 정도다). 프리즈 서울에 대한 가장 대중적 관심은 투자와 판매보다 라이프스타일과 문화적인 측면에 집중돼 있다. 서울이 지닌 특별한 역동성과 풍성한 콘텐츠에 관한 열망은 프리즈의 팬덤과 아이덴티티와 만나 또 어떤 아이디어로 발전될까. 2024년의 떠들썩한 ‘프리즈 서울’이 또 다시 기대된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COURTESY OF BOTTEGA VENETA
- COURTESY OF FRIEZE
- COURTESY OF HAUSER & WIRTH
- COURTESY OF KUKJE GALLERY
- STEFAN ALTENBURGER
- COPYRIGHT OF THE ESTATE OF PHILIP GUSTON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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