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바넴' 속 그 집, 누가 디자인했을까? #디아이콘즈
루카 구아다니노가 스크린 너머로 빚어낸 꿈의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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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세트장 전경. 소박한 이탈리아 시골에 있는 카페 전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를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알제리언 어머니와 시칠리언 아버지를 둔 그는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태어나 에티오피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루카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던 순간을 이야기하며 당시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도시 풍경을 떠올렸다. 파시스트적이면서도 모던한 면모를 동시에 지닌 건물 사이에서 그는 공간과 빛, 야생의 환경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주인공 가족이 머문 시골집 속 응접실. 루카 구아다니노는 본인 소유의 오브제까지 동원해 세트 디자인을 도왔다.
틸다 스윈턴이 열연한 <아이 엠 러브>의 빌라 네키(Villa Necchi), <비거 스플래쉬>의 배경인 시칠리아 화산섬 판텔레리(Pantelleria),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의 소박한 이탈리아 시골 마을과 오래된 집까지. 그의 영화를 보면 스토리뿐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미장센에 열광하게 된다. 그는 프로덕션 팀과 긴밀하게 협업해 원하는 공간 분위기를 최대한 깊고 정확하게 구현한다. 얼마 전 촬영을 마친 <퀴어 Queer>에서는 세트 디자이너 스테파노 바이지(Stefano Baisi)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다채로운 질감의 석재를 만나볼 수 있는 로마의 산 로렌조 이솝 매장. 고대 건축물의 물질성을 반영하기 위해 거친 돌과 매끈한 대리석을 활용해 디자인했다.
2017년 루카는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Studio Luca Guadagnino)를 열었다. 공간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온 그였기에 놀랄 만한 행보는 아니었다. “어떤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루카 구아다니노가 드러낸 포부다. 그가 영화와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는 비결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영역을 잘 분리하는 데 있다. “되도록이면 영화와 인테리어를 떨어뜨려 생각하려고 해요. 제가 추구하는 걸 표현한다는 점에서 목적은 같지만 하나는 상상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공간을 다루기 때문이죠.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 영화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집니다.”

리뎀션 뉴욕(Redemption NYC)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 1970년대 프랑스 남부에서 앨범을 녹음하던 롤링 스톤스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아 로큰롤 스타일을 우아하게 풀어냈다.
밀란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루카는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함께 주거 및 상업공간, 가구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육스(Yoox) 설립자 페데리코 마르체티(Federico Marchetti)의 아파트, 이솝(Ae-sop) 산 로렌조와 피카딜리 아케이드, 펜디(Fendi)의 런웨이 디자인도 그의 스튜디오를 통해 탄생했다. “기하학적 패턴과 다양한 컬러, 장인 기술, 디테일에 관심이 많아요. 무엇보다 제가 만드는 공간에는 저와 클라이언트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공간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있도록 합니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꿈을 품고 있는지 귀 기울이고, 공간이 놓일 동네와 지역을 충분히 리서치하죠. 모든 장소는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져야 하니까요.”

베니스에서 열린 디자인 페어 ‘노마드’에서 브랜드 데다르(Dedar)의 방을 디자인했다.
그는 공간을 다룰 때 특정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 프로젝트 뒤에 철저히 은둔하는 편이다. “디자이너로서 저만의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아요. 다만 각각의 프로젝트가 지닌 질문에 집중하죠.” 그는 2022년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Accanto al Fuoco/By the Fire>라는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대칭과 비대칭이 공존하는 거실에 직접 디자인한 커피 테이블과 폰타나아르테(FontanaArte)와 협업한 프레네지(Frenesi) 조명을 여러 빈티지 가구와 큐레이션해 첫 선을 보였는데, 이를 계기로 더 다양한 브랜드와 가구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고 한다.

2022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전시 <Accanto al Fuoco/By the Fire>.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가 디자인한 램프와 커피 테이블 등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자리.
끊임없이 꿈과 이상을 좇는 루카 구아다니노는 진정한 아티스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촬영이 없거나 여행 중이 아니라면 그는 이탈리아 북부 피에몽(Piemont) 지방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간다. 직접 수집한 굴리엘모 울리히(Guglielmo Ulrich)의 작품과 지오 폰티(Gio Ponti)의 작은 화병을 때때로 들여다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갖고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꿈꾸며.




Credit
-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이지은
- COURTESY OF LUCA GUADAGNINO
- 아트 디자이너 김려은
- 디지털 디자이너 장정원
엘르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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